21.02.03 11:37최종 업데이트 21.02.0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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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은 1일 성명을 내고 "'선거 사기'(election fraud)에 대응하여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등) 정부 인사들을 구금을 했다"며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 최고사령관인 민 아웅 흘라잉에게 권력을 이양한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 ⓒ 연합뉴스/EPA

 
작년 11월 총선을 계기로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던 미얀마(버마)에서 결국 쿠데타가 발생했다. 지난 1일 민 아웅 흘라잉 국방군 최고사령관이 문민정부를 전복하고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을 연금했다.

11월 8일 선거는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압승으로 끝났다. 헌법 규정에 의해 군부에 할당된 166석을 포함한 상·하원 664석 중에서 NLD가 59.6%인 396석을 획득했다.


군부 출신들로 구성된 제1야당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양원 합계 3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군부에 할당된 166석을 합해도, 군부 진영의 전체 의석은 199석(30.0%)밖에 안 된다. 선거 3일 전인 11월 5일 국방부가 연방정부의 선거관리가 불공정하다며 위압적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유권자들의 의사결정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미얀마 군부의 선거 불복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차원이 달랐다. 유권자 명부가 실제와 다르다는 이유로 공권력까지 동원해 불복 의사를 표명했다. 1월 27일 자 <아에프페>(AFP)·<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1월 26일에는 군 대변인인 조 민 툰 소장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헌법과 현행법에 따라 조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쿠데타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라고 답변했다. 헌법과 현행법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해놓고, 쿠데타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모순된 발언을 남긴 것이다. 반군 대변인이나 할 수 있는 이 같은 발언이 정부군 대변인에게서 나왔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역모죄'로 처벌되고도 남았을 일이다.

그런데 군부의 선거 참패나 선거부정 의혹이 이번 쿠데타의 유일한 동기는 아니다. 그것에 대한 불만이 명분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오로지 그것 때문에 생긴 일은 아니다.

"위험한 침묵"

2015년 11월 8일 총선에서 NLD가 얻은 의석은 합계 390석, USDP가 얻은 의석은 합계 41석이었다. USDP 의석과 군부 의석을 합치면 207석이다. 이것이 2020년에는 199석으로 감소했다. 판세를 변화시킬 정도의 의석 감소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에 군부가 거사를 벌인 데는 민 아웅 흘라잉을 비롯한 군부 지도부의 이해관계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민 아웅 흘라잉은 미얀마가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정부를 세운 지 8년 뒤인 1956년 7월 3일 출생했다. 국립대학인 양곤대 법대를 졸업하고 국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군인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승진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의 승진은 조용하고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53세 때인 2009년에는 중장 계급으로 제2특수부대 사령관이 되고 2010년에는 합동참모본부장이 되고 2011년 3월에는 국방군 최고사령관이 됐다.

최고사령관이 된 2011년은 미얀마 바로 옆 인도 서쪽의 북아프리카·중동에서 민주화운동인 재스민혁명(아랍의 봄)이 한창일 때였다. 이때 미얀마군의 정점에 선 그는 5년 뒤 새로운 5년 임기를 맞게 됐고, 2016년 집권한 NLD 및 아웅산 수치와 협조하면서 군부의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65세가 되는 금년은 그의 정치 인생에서 위기라면 위기일 수 있는 시점이다. 그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나는 해이자 정년퇴임으로 군대를 떠나는 해이기 때문이다.

국립대 법대와 사관학교에 이어 장교의 삶으로 이어지는 안정된 코스를 밟으며,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관료제 기구나 다름없는 군대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는 군대 바깥이 도전으로 가득 찬 곳일 수도 있다. 관료제 조직 내에서 지위를 획득하는 데 익숙한 그가 군대 바깥의 새로운 세계에서 지금의 위상을 유지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일 수도 있다.

게다가 예비역들의 정당인 USDP는 말이 제1야당이지 집권당인 NLD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USDP 의석은 집권당 의석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그가 퇴역을 두려워할 만한 요인이 됐을 수도 있다.

1960년대 및 70년대의 한국 정치군인들은 현역으로 있을 때보다 집권당이나 정부로 갈 때에 더 큰 권력에 접근할 수 있었다. 지금의 미얀마에서는 정반대다. 문민정부가 이끄는 지금 상황에서는, 정치군인이 군복을 벗으면 전혀 새로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이런 처지에 놓인 민 아웅 흘라잉과 그 측근들이 현재의 위상을 유지하는 길은 조 민 툰 소장이 언급한 '헌법과 현행법' 안에서는 찾기 힘든 것이었을 수도 있다.

미국 시각으로 1일 자 <뉴욕타임스>는 퇴역 장교들의 말을 인용해 아웅산 수치가 적어도 1년간 민 아웅 흘라잉을 비롯한 군부 지도자들과 의사소통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정치가 매우 사적으로 움직이는 국가에서 위험한 침묵이었다"라고 신문은 말한다. 문민정부와의 의사소통 부족도 민 아웅 흘라잉의 불안감을 증폭하는 요인이 됐을 수 있다.

이번 쿠데타는 군부 지도자의 불안감이 군사정변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미얀마 군부가 아직은 강력하며 미얀마 민주화가 아직은 취약하다는 점을 반영한다. 아웅산 수치로 상징되는 미얀마 민주화운동이 2016년 문민정권 수립이라는 성과로 연결되긴 했지만, 국회 의석 4분의 1을 군부에 할당해야 할 뿐 아니라 문민정권이 군부 쿠데타 가능성에 노출돼 있을 정도로 미얀마 민주화가 아직은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군사정권의 '과잉 대표'

하지만, 지금의 미얀마 군부가 가진 힘은 과거에 비해 결코 강하지 않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정치적 역량이 1970년대 한국 독재정권보다 낮다고 볼 만한 이유가 있다.

1972~1979년에 박정희 유신정권이 임의로 임명할 수 있는 국회의원은 전체 의원의 3분의 1이었다. 이 3분의 1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을 뽑는 유권자 투표에서 공화당이 차지한 의석은 1973년에 146석 중 73석(50.0%), 1978년에 154석 중 68석(44.2%)이었다.

자동으로 가져간 3분의 1을 합하면, 박 정권의 전체 의석은 1973년 146석(66.7%), 1978년 145석(62.8%)이었다. 득표율이 50%였던 해에 의석의 66.7%를 점하고, 득표율이 44.2%였던 해에 의석의 62.8%를 점하는 '과잉 대표' 양상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미얀마 군부는 전체 의석의 4분의 1인 166석을 자동으로 가져가는 상태에서, 2015년에는 나머지 498석 중 41석(8.2%)을 차지했다. 여기에 166석을 더해 전체 664석의 31.2%를 차지했다. 2020년에는 498석 중 33석(6.6%)을 차지했다. 166석을 더해 전체의 30.0%를 차지했다.

군부의 득표력은 실제로는 8.2%나 6.6%에 그쳤다. 그런데도 전체 의석 중 31.2%나 30.0%가 그들에게 돌아갔다. 이 같은 과잉 대표는 군부가 헌법상의 프리미엄을 정치 현실에서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민 진영의 불만이 향후 더 거세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 독재정권의 과잉대표는 1973년에 16.7%, 1978년에 18.6%로 나타났다. 미얀마 군부의 경우에는 2015년 23.0%, 2020년 23.4%였다. 과잉 대표의 격차가 1970년대 한국보다 더 크다는 사실은 지금의 미얀마 군사정권이 박 정권보다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득표율과 의석수는 다른 나라에서도 어느 정도는 불일치하지만, 군부정권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거센 곳에서는 두 수치의 차이가 민중의 행동을 촉발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1948년 이후의 미얀마 역대 정권들은 영국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정신을 계승해 국제관계에서 비동맹 노선을 견지하며 미국 및 서유럽과 거리를 유지해왔다. 미얀마 군사정권 역시 그런 저항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미얀마 군사정권은 그 같은 저항정신 못지않게 중요한 민주적 정당성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이것이 미국과 서유럽의 비판을 초래하는 원인이 됐다. 또 식민지배 당시 영국의 지원을 받아 미얀마족을 억압하는 데 가담한 로힝야족에 대한 감정을 순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그들을 학살하는 반인권 범죄를 저질렀다. 이런 상태에서 이번에 문민정권을 전복하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중국과의 관계가 견고한 데다가 인접국인 태국·캄보디아·필리핀이 이번 쿠데타에 대해 중립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미얀마 군사정권이 미국과 서유럽의 공세를 어느 정도는 견뎌낼 수 있다. 하지만 민주적 정당성을 잃은 데다가 반인권 범죄까지 저질러 세계 시민들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으므로, 미얀마 군부정권이 한층 더한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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