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25 18:13최종 업데이트 21.02.2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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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에 사는 한 남성이 프로판 탱크를 채우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는 탱크를 채우기 위해 얼어 붙은 비 속에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했다. ⓒ 연합뉴스

[기사 수정 : 27일 오전 10시 30분]

"30시간 만에 전기는 들어왔는데 천정 파이프가 터져 버렸네요."
"댈러스인데요, 전기 없이 영하 18도 추위를 버텼어요. 욕이 절로 나오더군요."
"여기 휴스턴도 3일간 전기가 안 들어왔습니다. 이불 뒤집어쓰고 살아났네요."
"온 가족이 차에서 히터 켜고 며칠을 떨었더니 지금 온몸이 아파요..."


인터넷 사이트와 SNS에 올라온 지옥 같았던 지난 며칠간의 사연들이다. 전쟁통이 이랬을까 싶게 고생담을 늘어놓은 이들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주라는 남부 텍사스 주민들이다. 그나마 수도가 나오고 전기가 들어와서 가능해진 분노다. 아직 이런 하소연조차 사치인 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화재로 숨진 3형제, 동사한 어린이 

휴스턴에 사는 엄마와 아기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난방이 꺼지자 차 안에 들어가 몸을 녹이다 발생한 사고였다. 오스틴에선 화재로 두 사람이 사망했다. 단전된 집안에서 난방을 위해 불을 피우다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 중이다. 동사한 70대 남성이 발견된 곳은 샌안토니오다. 산소 호흡기에 필요한 전기를 찾기 위해 운전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지난 며칠간 텍사스에선 안타까운 죽음이 많았다.

지난 16일 새벽 휴스턴 외곽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새벽 2시에 신고를 받고 달려온 소방관은 5살, 8살, 11살 어린이와 할머니가 숨졌다고 발표했다. 1층에서 자던 엄마는 살았지만 2층 침실에 있던 세 아이와 할머니는 사망했다.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뛰쳐나오라고 소리쳤어요. 너무 어두웠고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만 들렸어요."

얼굴 곳곳에 화상 흔적이 남아 있는 엄마는 하루아침에 세 아이와 친정어머니를 잃었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했다. 소방당국은 히터가 나오지 않자 난방을 위해 피운 벽난로로 인한 화재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월요일은 이 소년이 태어나 처음으로 눈을 본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화요일에 사망했습니다."

텍사스 몽고메리 카운티, 가난한 모빌홈에 사는 엄마 핸드폰 속엔 생애 첫눈을 보고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여느 11살 남자아이와 똑같이 눈 속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이다. 그 날 이 가족이 사는 모빌 하우스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3살 남동생과 잠을 자던 소년은 다음 날(16일) 숨진 채 발견된다.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이었다. 

"업체는 최소 1주일 전부터 악천후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전기 회사는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동주택에 사는 소년의 엄마를 대신해 텍사스 전력운영사 ERCOT와 전기공급사 엔터지(Entergy)에 문제를 제기한 변호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ERCOT는 텍사스 에너지 생산의 약 90%를 관장하는 곳인데, 이들의 안이한 판단으로 인재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변호사는 한정된 전력에 대해 우선 공급 지역을 선정할 때 추위에 취약한 이들이 사는 지역의 전원을 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휴스턴 시내 텅 빈 사무실 건물들에는 전기가 들어왔지만 소년의 집처럼 가난한 이들이 살고 있는 이동 주택지역은 방치됐다.

"텍사스는 그동안 중동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에너지 자립 주라고 자랑했지요. 그런데 휴스턴 주민들은 그 전기가 없어 집에서 죽었습니다."

변호사 말처럼 <에이비시(ABC)> 뉴스는 이번 한파로 인한 단전·단수 사태로 텍사스 주에서만 69명이 사망하고, 약 18조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텍사스주 휴스턴시에 있는 고압 송전탑. 이상 한파로 텍사스에서는 석탄, 천연가스,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이 중지돼 정전 사태가 빚어졌다. 2021.2.21 ⓒ 연합뉴스


텍사스 지역의 이상 한파는 한 주 전부터 감지됐다. 지난 2월 11일, 북 텍사스 주 포트워스 하이웨이에선 130중 대형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목요일 아침 6시 경에 발생한 이 사고의 피해자들은 이른 출근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과 화물차 운전자, 공사장 인부 같은 이들이었다. 급작스런 기온 저하로 고속도로가 빙판길이 돼 발생한 사고였다. 지금까지 최소 6명이 사망하고 60여 명이 부상당했다.

사막기후인 텍사스에선 전무했던 빙판길 사고가 발생했으나 어느 누구도 대책 마련에 나서거나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 주 후 더 거대한 재해가 닥쳤고, 더 많은 사람이 죽고 천문학적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텍사스 버리고 도피한 정치인들

"어... 크루즈 상원위원이네. 칸쿤에 가는 모양인데. 아니 텍사스 수백만 가정이 단전으로 난리가 난 이때??!!" 

텍사스에 몰아친 한파로 200만 가구에 전기가 끊기고 수도가 끊겼던 17일 밤, 후안이란 남자가 자신의 트위터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두툼한 캐리어를 끌고 마스크를 쓴 채 탑승을 위해 서 있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의 모습이었다. 몇 시간 후 애슐리란 이름의 여성이 다른 사진 두 장을 올린다. 

​​"이 사진들 여기 올린다. 그는 유나이티드 항공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에 있다가 방금 칸쿤 비행기에 탑승했어."
 

테드 크루즈 미 텍사스 상원의원의 멕시코 칸쿤 여행 사진을 올린 트위터 계정 갈무리. ⓒ 뉴욕포스트 트위터

 
​​애슐리는 마스크를 벗은, 확실한 상원의원 사진 두 장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 출국을 크로스 체크해줬다. 다른 누군가는 들떠 있는 상원의원의 아내 모습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기자들이 미처 이 '특종'을 확인하지 못한 사이, 상원의원은 무사히 멕시코 칸쿤에 도착해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다음 날 아침, <폭스뉴스> 기자가 공화당 소식통을 인용해 이 사실을 처음 보도하자 사태는 급반전된다.

"동료 폴 스타인 하우저는 텍사스에 눈 폭풍과 정전이 몰아친 와중에 공화당 상원의원인 테드 크루즈가 칸쿤으로 여행했다고 확인했다."

​폭스 기자의 트윗 이후 각 언론사는 관련 특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에이비시> 방송은 텍사스 비상사태 와중에 상원의원 가족의 휴가 에스코트를 위해 휴스턴 경찰관이 동원됐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에드워드 러셀 기자는 상원의원 가족의 6박 7일 칸쿤 일정을 보도했다. <폴리티코(Politico)>는 여론이 싸늘해지자 급변경된 크루즈 일행의 비행스케줄을 알아내 기자들이 공항에서 상원의원을 맞이할 수 있게 했다.

<시엔엔(​CNN)>은 크루즈 의원의 해명을 소개했다. 

"나는 단지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내 딸들이 자연재해로 학교에 안 간다며 친구들과 여행을 가자고 했습니다. 나는 데려다만 주고 오려고 했습니다."

딸 때문이었다는 그의 변명은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더 많은 언론들에 의해 곧 깨졌다.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의 결정이었다는 증거로 상원의원 아내가 친구들에게 보낸 단톡방 문자메시지를 공개한 것. 그녀는 단톡방에서 집이 너무 춥다며 자신들과 한 주간 칸쿤에 함께 갈 일행을 찾았다. 공유한 호텔과 비행일정은 텍사스가 눈 폭풍에 휩싸인 뒤 급히 잡은 일정이었다.

여기에 그의 집 주변을 촬영한 기자의 카메라에 찍힌 푸들 사진도 기름을 부었다. 난방도 안 되는 집에 추위에 약한 애완견을 그대로 두고 온 가족이 일주일간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잘못된 전기 시스템으로 인한 단전·단수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와중에 칸쿤으로 떠난 상원의원 소식을 본 텍사스 주민들은 분노했다. 100년 만이라는 텍사스 비상사태를 긴급뉴스로 다루던 언론도 같은 마음이었다. 테드 크루즈의 행동과 거짓 해명들은 텍사스 당국의 무능과 무책임, 무공감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케이스로 다뤄졌다. 

이밖에 공화당 소속의 텍사스 주 하원의원 게리 게이츠도 크루즈 의원과 같은 날인 17일, 자신의 전용기로 플로리다 주에 머문 것이 드러났다. ​텍사스 검찰총장 켄 팩스턴도 주 상원의원인 부인과 같은 기간 유타 주 여행을 떠난 것이 드러나 비난을 받는 중이다. 

​​뼈 있는 조롱들

21일 테드 크루즈 집 앞에선 멕시코 전통 의상에 솜브레로를 쓴 마리아치 밴드가 연주를 펼쳤다. 텍사스 주민들은 상원의원이 돌아온 날부터 그의 집 앞에서 모여 '사퇴'를 외치며 음악에 맞춰 피켓을 흔들었다. 마리아치 밴드를 구성한 텍사스 주민 브라이언은 설명했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서둘러 집에 오느라 놓친 멕시코 휴가가 너무 안쓰러워서요."

이번 칸쿤 휴가 건으로 테드 크루즈가 즐겨 입는 옷이 되어버린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도 뼈 있는 트윗을 날렸다.

"고마워요, 테드 쿠르즈. 100% 재활용으로 옷을 만드는 우리는 구입금액의 1%를 지구환경을 위해 기부하는 회사랍니다. 당신과 우리와 맞지 않는다면 우린 언제든 환불해 줄 용의가 있다는 걸 알려드립니다."

사람들은 작년 말 파타고니아 반바지 태그에 인쇄된 문구를 기억해냈다. "Vote the Assholes Out"(개자식을 몰아내기 위해 투표하자)라는 내용이었다. 이 태그가 이슈화되자 파타고니아 대변인은 <시엔엔>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는 기후 변화 거부자들과 오랫동안 맞서왔습니다. 기후 위기를 부정하거나 조롱하면서 과학을 무시하는 어느 당 출신 정치인을 지칭한 문구, 맞습니다."

2021년 2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석유와 천연가스의 도시 텍사스가 얼어붙었다. 이번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언제라도, 더 끔찍하게 발생할 것이다. 영화 <투모로우>는 지금 현재진행형이다. 

* 당초 테드 크루즈 의원이 2016년 9월 8일 트윗했다는 내용은 미국 언론들의 팩트 체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기에 본문에서 해당 부분을 삭제했습니다. 독자여러분께 혼란을 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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