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05 07:33최종 업데이트 21.04.05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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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퇴출된 약 메디아토르 1995년 시판되어 당뇨병 치료제 겸 식욕억제제로 널리 사용되어 온 이 약은 프랑스에서만 2천 명 가량의 사망자를 낸 끝에 2009년에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 France 24 영상 캡쳐

 
프랑스 고등법원은 지난 3월 29일, 부작용으로 1500~2100명을 사망케 한 당뇨병 약 메디아토르(Mediator)의 판매 중단을 지연해 수백 명의 추가 사망자를 초래한 책임을 물어 프랑스 국립의약품건강제품안전청(ANSM)에 유죄를 선고하고 30만 3000유로(약 4억 235만 원)의 벌금을 명했다. 법원은 ANSM이 의약품계의 보안관 역할을 유기하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과 상해에 가담했다고 판단했다.

메디아토르를 제조한 제약회사 세르비에(Servier)에 대해서도 벌금 270만 유로(약 35억 8천만 원)와 배상금 1억 8천만 유로(약 2430억 원)를 명했다. 이 회사는 가중된 사기 행각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이 같은 판결을 받았다. 


세르비에 간부 직원들의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회사의 2인자인 장 필립 세타자크만 징역 4년에 집행유예, 벌금 9만 유로(약 1억 2천만 원)를 선고받았을 뿐이다. 회사 대표이자 설립자인 자크 세르비에는 2014년 사망했다.

당뇨병 치료제로 출시된 이 약은 식욕억제제로도 광범위하게 사용됐으며, 심장과 폐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해왔다. 1995년 판매가 시작된 후 심장판막 기능 저하로 3100~4200명이 입원했고, 1700~2350명이 심장판막 교체 수술을 받았으며, 1500~2100명이 사망해 2009년 11월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이에 대한 프랑스 재판은 2020년 4월에 끝날 것으로 예정됐으나 코로나19로 지연돼 지난 3월에야 종료됐다. 그 사이 2020년 건강보험공단은 세르비에사에 4억 5천만 유로(약 6075억 원)의 배상액을 청구했으며, 2019년 4월 일부 피해자들에 대한 합의금 1억 1500만 유로(약 1550억원)가 지급되기도 했다.

한 의사의 끈질긴 문제제기 

29일 재판 결과는 한 의사의 끈질긴 투쟁의 결과물이다. 항구도시 브레스트(Brest)의 폐질환 전문의 이렌 프라숑(Irene Frachon)은 자신의 환자 중 폐동맥 고혈압을 앓고 있는 이들이 메디아토르를 복용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심장병 전문의와 폐질환 전문의를 통해 메디아토르 피해 환자 사례들을 수집해 2000년대 초부터 이 문제를 공론화하려고 노력했다. 과학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보건 당국에 수차례 메일을 보냈으나 그때마다 보건당국은 묵묵부답이었다. 그와 주변 몇몇 의사들의 줄기찬 노력 끝에 2009년에서야 보건당국은 문제를 인정하고 메디아토르를 시장에서 퇴출시켰다.

그러나 그것으로 싸움을 끝낼 수는 없었다. 그는 피해 규모를 정확히 집계하고, 피해자 보상은 물론, 위험한 약을 만들어 팔아온 제약회사와 그것을 승인하고 피해를 묵인해온 보건당국을 단죄하고자 했다. 그렇게 시작된 투쟁이 10년을 넘겼다.

2010년엔 <150mg의 메디아토르, 얼마의 죽음을 초래했나?>라는 책을 써서 대중에게 문제를 알리려고 했으나 오히려 제약사가 그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1년 만에 재판은 그의 승리로 끝났다. 2015년 세르비에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민사재판이 있었으나 6500명의 피해자와 376명의 변호사가 참여하는 대형 형사소송은 2019년에 가서야 시작됐다.

약의 문제를 폭로하려는 용기 있는 의사는 적었고, 제약사를 보호하고 사건을 축소하려는 제약업계와 의학계의 노력은 조직적이었다. 이 명백한 죄에 대한 사법 판결을 얻기까지 이토록 긴 시간이 걸린 이유다.

판결 후, 이렌 프라숑은 마침내 정의가 바로 선 것에 안도를 표했다.
 
"10년 전부터 나는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이제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세르비에사는 한결같이 그 무수한 죽음에 자신들은 아무 책임이 없고, 무죄라고 주장해왔다. 그들이 기만을 가중해온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 판결의 핵심이다. 또한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가 인정돼 보상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도 기쁘다. 그러나 이들이 치러야 하는 죗값은 저지른 죄에 비해 너무도 가볍다."
- 3월 30일 <르몽드> 인터뷰 중
 

이렌 프라숑(Irene Frachon) 프랑스의 폐질환 전문의로, 메디아토르라는 약이 가진 치명적 부작용을 처음 발견하고, 판매를 중지시키며, 피해자들이 보상받기까지, 10여년간 최전선에서 싸워온 전사이기도 하다. ⓒ 위키피디아

 
제약사의 협박

메디아토르 사건이 본격적으로 세간에 회자되던 2010년 12월 23일,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1996년 3월 미국 세르비에사 대표가 미국 내 판매를 맡은 회사에 메디아토르 승인 관련 연구원들에 대한 협박 계획을 지시한 비밀 팩스 문서를 입수해 공개했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당시 책임 연구를 맡았던 아벤암 교수는 누군가 보낸 관을 받았고, 프랑스의약국 고위관리는 전화로 살해 협박을 받았으며, 관련 사건을 취재한 기자는 사립탐정에게 협박당했고, 미국 메디아토르 피해자를 위해 일하던 변호사는 학교에 가고 있는 어린 딸의 사진을 받았다.

제약회사는 마피아 조직을 방불케 하는 방식으로 과학자와 관료, 언론, 법조인 모두에게 압력을 행사하며 프랑스와 미국에서 허가를 받아냈다.

사건을 맡은 변호사 중 한 명인 샤를 조셉-우당은 필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메디아토르를 14년간 팔아온 세르비에사는 이를 통해 4억 유로(약 5400억 원)의 수익을 챙겼습니다. 그들이 취한 이득에 비하면 이들이 재판에 참여한 6500명의 피해자들에게 줘야 하는 보상금 1억 8천만 유로는 턱없이 적죠. 세르비에사는 결국 남는 장사를 한 거니까요. 적어도 이들이 메디아토르를 팔아서 거둔 수익 전액을 몰수해 피해자들에게 줘야 마땅합니다.

이 판결은 세르비에사는 물론이고 다른 제약회사들의 관행에 의미 있는 경종을 울릴 수 없어요. 그들은 이 판결을 보며 얼마든지 같은 짓을 해도 좋다는 사인을 받겠죠. 기업은 오로지 이윤을 가지고 판단하니까요. 이들에게 부과된 벌금 270만 유로도 지나치게 가볍습니다. 현재 세르비에사의 1일 매출액은 1천만 유로예요."

대체 왜 이토록 적은 벌금이 부과되었는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행법상 피해보상액에 대해서는 한계를 두지 않으나, 기업과 정부가 저지른 소위 화이트 칼라 집단의 불법 행위에 대한 벌금에는 상한선이 있어요. 결국 법 자체가 이러한 현실을 단죄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거죠. 화이트 칼라의 범죄가 지속될 수 있게 만들어진 법적 환경이라는 게 맞겠네요."

그들의 범죄를 멈춰 세울 수 있을까

수천 명의 생명을 앗아간 제약회사는 벌금을 물지언정 오늘도 영업을 지속한다. 이것은 단지 세르비에사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까지 대형 스캔들을 일으켰던 제약회사들이 공통으로 누려온 특권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백신으로 유명한 화이자는 2009년 벡스트라(Bextra) 등 4개 약품 허위광고로 23억 달러(현재 환율 기준으로 2조 5937억 원)의 벌금형을 받았고, 스위스 노바티스도 2015년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3억 9천만 달러(약 4400억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미국의 머크사는 1999년 바이옥스라는 관절염 진통제를 출시해 약 6만명의 사망자를 내고 2004년 퇴출 당했지만, 59억 5천 달러(배상금 50억 달러, 벌금 9억 5천 달러, 약 6조 7천억)로 사건을 마무리했으며, 국내에도 들어와 있는 자궁경부암 백신 가다실(gardasil)을 만들어 전 세계에서 판매중이다. 

제약회사들의 문제를 오래 취재해온 프랑스 저널리스트 마리-모니끄 로뱅(Marie-Monique Robin)은 대형 제약회사들에 정기적으로 떨어지는 벌금형은 "사업상 정기적으로 지출하게 되는 공식 비용에 불과하다"라고 자신의 저서 <에코사이드>에서 토로한 바 있다.

그나마 ANSM에 대해 살인에 가담한 책임을 물은 것은 이번 판결의 큰 성과라고 샤를 조셉-우당 변호사는 말한다. 이 같은 제약회사의 범죄가 보건당국의 적극적 협력 없이 이뤄지기 힘듦에도 그간 대부분의 판결은 제약회사에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이 판결에 대한 여론은 매섭다. 제약회사의 범죄는 보건행정 당국의 협력과 방조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보건행정 당국에 대한 30만 유로의 벌금으로 이 일이 중단될 이유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벌금도 세금으로 낼 텐데, 국가기관의 잘못을 왜 세금 털어 납부하느냐는 지적이다.

ANSM은 현 코로나19 정국에서 백신의 안전성을 판단하고 부작용 사례를 집계하는 일도 하고 있다. 때문에 SNS 일각에서는 이렇게 범죄에 가담한 보건당국을 우리가 어떻게 신뢰할 수 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메디아토르 스캔들이 마침내 수면 위로 떠올라 프랑스 언론을 뜨겁게 장식하던 무렵(2009-2010)은 신종플루 팬데믹이 지구촌에 상륙한 때이기도 하다. 당시 신종플루 치료제나 백신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무시, 무관심에 메디아토르 사건이 톡톡히 기여했다. 이번 재판에서 검사가 지적한 것처럼 "세르비에사의 태도는 제약업계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불신을 부추겼다".
 

책 <유익하거나, 무익하거나, 위험한 4000천개의 약> 2012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2016 개정 보증판이 나오며 수십 만 부가 팔렸던 시판되는 약들에 대한 가이드북이다. 이 책은 시판되는 약 중 35%만이 존재 이유가 있는 쓸모있는 약이며 5%는 당장 퇴출되어야 할 위험한 약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 아마존 사이트 캡쳐

 
2012년, 두 명의 의사(베르나르 드브레, 필립 에방)가 공저로 내놓은 <유익하거나, 무익하거나, 위험한 4천개의 약>은 이러한 불신의 근거를 실증적으로 제시했다. 두 의사는 이 책에서 시판중인 약의 35%는 무용하며, 25%는 상당한 부작용이 있고, 5%는 당장 퇴출되어야 할 위험한 약이라 경고했다. 이들에 따르면, 시판중인 약 중 35%만이 충분한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러나 시판중인 4000개의 약 중 75%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며 "이중 연간 100~150억 유로(13.5~20조 원)가 문제가 있거나 쓸모 없는 약에 들어가 무의미하게 버려지며(즉 제약회사의 손에 들어간다) 연간 10만 건 이상의 심각한 질환과 3만 명의 사망자들이 이 약들로 인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이 책은 발간 2개월 만에 20만 권이 팔리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2016년에는 200개의 약을 추가한 개정증보판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이후에도 제약회사들의 비행을 사회에 폭로하는 저서들을 수차례 내왔고, 메디아토르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비판적 입장을 제시해왔다.

메디아토르에 대한 형사 재판은 종결되었으나 현재 진행 중인 몇 가지 민사재판을 통해 세르비에는 또 다른 죗값을 계속 치르게 될 것이라고 변호인단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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