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03 11:44최종 업데이트 21.04.0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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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 운하 ⓒ 위키커먼스

 
인류가 수상교통수단을 고안해 낸 이래 용적능력만큼은 지금까지 땅 위의 어떤 운반 도구도 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속도의 단점을 제외하면 운송수단으로서 선박의 기능은 그만큼 탁월하다. 그래서 고대부터 하천은 지금의 고속도로와 같은 물류망 역할을 했고, 강대국들은 땅을 갈라서라도 물길을 냈다.

기원전 4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인들도 인공 수로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보여주듯, 물의 경영은 문명의 필수 요건 중 하나다. 특히 용수(用水) 기능이 아닌 교통수단으로의 운하는 공사 규모가 일반 수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에 역사상 당대의 최강 정치세력들만 겨우 엄두를 냈다.


중국의 남북을 잇는 대운하는 수(隋)나라부터 명(明)나라에 이르기까지 무려 800여 년에 걸쳐 완성됐다. 수나라 몰락의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무리한 운하 공사였을 만큼 강대국들마저 운하 건설 이후 국가 재정이 휘청거리는 경우들도 있다.

재정적 위험을 감수하고도 운하를 건설하려는 이유는 당연히 완공 후의 경제적 수익이나 그 밖의 이득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물을 갈라 만든 육로보다 땅을 갈라 만든 수로가 투자비용도 크지만 그만큼 수익 비용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운하 공사는 이처럼 과거부터 강력한 정치집단들의 상징적이면서 모험적인 국가사업이었고, 흔히 국운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물며 하천이 아닌 바다를 잇는 운하의 경우라면 차원은 또 달라진다. 그런 천문학적 비용에도 불구하고 바다 운하를 건설하는 이유 역시 뒤따르는 수익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하의 건설과 운용, 소유권 등을 둘러싸고 국가 간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내가 소유할 수 없다면 남도 못 갖게' 하려는 갖은 음모가 벌어지기까지 한다.

지금까지 바다를 잇는 운하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의 파나마 운하, 두 곳이다. 그런데 이 두 나라가 직접 운하를 만든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바다 운하를 건설했다면 당대 최강의 국가다. 하지만 이집트나 파나마는 최강으로 불릴 만큼의 재정을 가진 것은 아니다. 심지어 파나마는 운하 건설 이후 탄생한 국가다.

역사를 바꾼 수에즈 운하

이집트 북쪽 지중해와 동쪽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 첫 건설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부터 이집트의 토목 기술과 수학 지식은 최고 수준이었지만 당시의 기술로 현재의 위치에 운하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홍해를 접하는 수에즈에서 아메르 호수까지는 지금과 같은 수로지만 그 북쪽은 직접 지중해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나일강 하류의 삼각지를 이루는 지류 가운데 가장 오른쪽 지류와 연결됐다. 바다와 바다가 직접 연결된 것이 아니라 하천이 매개가 되어 연결된 셈이었다. 첫 삽은 이집트에서 떴지만 이집트를 점령한 페르시아가 완공했다.

지금의 수에즈 운하는 1805년, 당시까지 이집트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사실상 독립한 무함마드 알리의 지배하에 시작됐다. 오스만의 세력권에서 벗어난 이집트는 나폴레옹 3세 당시의 프랑스와 우호관계를 맺었고 프랑스는 아프리카 남단까지 돌지 않고도 아시아로 향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에즈 운하를 구상, 실현하게 된다.

프랑스 정부는 직접 돈을 투자하지 않고 절반이 조금 넘는 부분을 프랑스 민간 자본으로,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부분을 이집트 정부가 부담하도록 해 지배권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완공 2년 만에 벌어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재정부담을 이유로 사실상 운하의 운영에서 손을 떼게 된다.

프랑스가 손을 떼자 난감해진 이집트 정부는 자신들이 보유하던 주식을 모두 시장에 내놓았고, 그것을 매입한 것은 다름 아닌 영국이었다. 전쟁 패배의 여파로 프랑스는 큰 해외 재산을 잃은 셈이고 어부지리로 수에즈 운하의 대주주가 된 영국은 아시아로 향하는 뱃길이 더욱 빨라져 해가 지지 않는 세계정복 무대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수에즈 운하 ⓒ U.S. National Archives

 
만약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지 않았다면, 또는 운하의 지배권을 영국이 소유하지 않았다면, 오늘날까지 아시아 여러 나라의 국경지역에 남아 있는 영국 지배의 흔적들이 지금과 같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물론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대한 영국의 지배는 운하가 완성되기 조금 이전에 시작됐다. 하지만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향하는 여정이 지배 기간 동안 계속 됐다면 이들의 지배력이 역사 속의 현실과 같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러시아의 경우를 보면 더욱 그렇다.

얼핏 러시아와 일본이 이웃국가로 생각될 수 있지만 그건 지금의 생각이다. 과거 시베리아가 지금처럼 개발되지 않았을 때, (물론 지금도 개발이라는 말이 어색하지만) 당시의 러시아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국가일 뿐, 주력 육군이 극동지역까지 오려면 수 주일이 소요됐다. 그리고 극동지역에는 10만여 병사만 있었고 이는 일본의 25만에 비하면 절대 열세였다.

해군 전력의 상황은 더했다. 러시아 해군의 주력 함대가 일본으로 오려면 북쪽 발트해에서 대서양을 지나, 또는 남쪽 흑해에서 지중해를 거쳐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 필리핀을 지나 일본까지 와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북극해는 얼음 때문에 짧은 거리에도 불구하고 이용할 수 없는 바다였다.

그렇게 수개월이 걸리는 여정을 지나 일본에 도달하면 아무리 젊은 장정들이라도 전쟁은커녕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만약 러시아 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었다면 전쟁의 양상이 적어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억측만은 아니다.

러시아 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후술하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쓰시마 앞바다에 도착한 러시아 함대는 당시까지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전이라는 세계의 관심 속에서 일본 함대에 대패하고 만다. 이렇게 일방적 일본의 승리로 끝난 쓰시마 해전의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포츠머스 조약으로 이어져 조선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이 인정되는 결과를 빚는다.

이처럼 수에즈 운하의 존재는 역사의 여러 장면을 바꾸었거나 바꿀 수도 있었고, 실제 여러 민족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했다. 운하가 개통된 지 87년이 지난 1956년, 민족주의 열기로 가득 찬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전격 선언했고, 당연히 크게 반발한 영국은 프랑스와 이스라엘을 끌어들여 이집트를 향한 일방적 전쟁을 선포했다. 이것이 2차 중동전쟁이다.

여기서도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이집트가 다시 운하의 운영권을 빼앗기는 결과이겠지만 역사는 눈앞의 판단과 다르게 흐를 때가 많다. 객관적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비록 전쟁에서는 졌지만 수에즈 운하의 지배권을 지킬 수 있었다. 러시아의 뒤를 이은 소련이 이번에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이집트를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전을 원하지 않는 미국이 우방국 영국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운하의 지배권은 건드리지 못하게 했고, 예상 밖의 결과를 얻은 이집트는 이후 중동의 강자로 인식되는 계기가 된다. 반대로 전쟁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압력으로 본래의 목적을 얻지 못한 영국은 세계 최강의 지위를 미국에 넘겨준 사실을 잔인하게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선박 좌초 사건이 남긴 것

그 밖에도 수에즈 운하의 출현이 바꾼 역사는 수없이 많다. 기술의 발달로 인한 패러다임의 전환도 이유가 되지만 수에즈 운하의 존재는 기존의 범선이 급속히 퇴조하고 증기선이 대세가 되는 계기도 만들었다. 바람을 이용해 시원하게 달리는 대서양과 달리 잔잔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려면 범선으로는 아무래도 힘들다.

운하의 폭과 수심이 제한되다 보니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려면 배의 건조도 '수에즈 사이즈'에 맞춰야 한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수에즈막스(Suezmax)다. 짐을 가득 채운 상태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13~15만 톤급의 선박이다. 그 외에도 선박을 수용할 수 있는 운하, 항구의 기준에 따라 케이프 사이즈(Cape Size), 파나막스(Panamax) 등으로 선박의 크기를 분류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러시아 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지 못한 것은 당시의 수에즈 운하 규격을 러시아 함대가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육지전에서 아무리 훌륭한 전차가 있어도 길이 제한되면 진군할 수 없듯이. 이처럼 이동 수단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는 이동 수단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이 된다.

지난 3월 23일 말레이시아를 출발해 네덜란드로 향하던 일본 쇼에이기선 소유의 대만 에버그린 해운 소속 에버기븐(Ever Given) 함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수에즈 운하 수로 중간에 좌초했다. 수에즈막스 기준에는 통과했으나 길이가 운하의 폭보다 긴 선박이 비스듬히 선 채 운하를 완전히 막아 서 버린 것.
 

수에즈 운하 수로 중간에 좌초한 에버기븐(Ever Given) 함. ⓒ MaxarTechnologies twitter

 
사고 발생 7일 만에 배를 다시 부양시키고 운하는 재개됐지만 하루 50대의 선박이 통과하는 수에즈 운하의 양쪽 끝에서 운영이 재개될 때까지 수백 대의 선박이 줄을 서 기다리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기다리다 못해 남아공화국 밑으로 우회하는 선박도 나왔다.
 

(이스말리아 EPA=연합뉴스) 수에즈운하의 지중해 방면 입구인 이집트의 이스말리아 외곽 해상에 25일(현지시간) 많은 상선이 항해를 중단하고 대기하는 모습. ⓒ 연합뉴스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엔 피해 규모가 천문학적이다. 이번 사고로 전 세계 해운업계가 입은 피해는 하루당 10조 2천억 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피해규모가 큰 만큼 법정으로 이어질 책임 공방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안보 차원의 잠재적 위험이 그대로 노출됐다. 그 점에서는 차라리 이번 사고가 예방을 생각하게 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주요 유통망이 이 한 곳으로 집중된다는 점도 새삼 우려스럽다.

부산에서 유럽까지 연결하는 유라시아 철도가 연결된다면 비용, 시간, 환경 등 여러 차원에서 해양 운송에 크게 의존하는 지금의 운송 산업 생태계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글머리에서 최고의 용적량 등 선박의 유용성을 이야기했지만, 최고의 공해를 유발하는 운송수단 또한 선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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