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17 07:06최종 업데이트 21.05.17 07:06
  • 본문듣기
팬데믹 전선이 빠르게 격리에서 백신으로 이동하고 있다. 백신 접종이 눈에 띄는 방역 효과를 가져온다는 확신을 가진 각국 정부는 백신 물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대부분의 언론과 여론 역시 이러한 흐름에 동조하며 최대한 많은 양의 백신을 최대한 빨리 확보하는 것을 위기 극복의 최대 관건으로 삼고 있다.

이에 따라 격리와 마스크 착용을 비롯한 생활 방역은 자칫 소홀해질 위험이 높아졌다. 실제 하계 휴가철을 앞둔 북반구 지역 다수의 정부, 지자체는 마스크착용 의무화 조치를 조금씩 해제하고 있다. 대규모 공연과 좁은 간격의 음식점 영업도 단계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했다.


경제 회복의 명분을 들지만 이러한 완화 조치에 대해 방역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백신 접종을 늘리면서도 생활 방역을 당분간 유지해야 위기 극복에 효과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백신의 효능에 대한 맹신은 방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옳은 판단도 전후 사정과 맥락 없이 획일화시킬 경우 효과가 반감되거나 역행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백신을 둘러싼 한 논쟁도 마찬가지다. '백신이 최고'라는 대전제만 남기고 다른 목소리에 귀를 닫아 버리면 옳은 전제도 거짓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잘못된 허상을 만드는 이 백신지상주의는 '백신 지식재산권' 문제와 관련이 된다.

미국이 약소국들의 수호천사?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 지지" 밝히는 바이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경제 부양을 위한 '미국 구조계획' 이행 상황에 대한 연설 후 취재진과 문답을 나누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자신과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를 지지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yes)"고 말했다. 2021.5.5 ⓒ 연합뉴스

 
지난 5일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제약회사의 특허권을 한시적으로 포기하게 하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 발언은 대통령 참모진을 통해서도 확인됐고 곧 전 세계로 타전됐다. 미국이 제약회사가 아닌 가난한 나라의 편에 선다는 메시지를 주기에 충분한 선언이었다.

가뭄의 단비와 같은 이 발표 이후 백신 확보가 여의치 않던 국가들은 두 손 들고 일제히 반겼고 세계보건기구(WHO)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응의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던 백신 특허권 중단 계획은 독일의 반대라는 복병을 만났다. 제약회사들의 반발도 뒤따랐다. 미국이 약소국들의 수호천사로 거듭나는 만큼 독일이 글로벌 제약회사의 변호국으로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모든 문제를 백신으로 풀게 만들려는 일부 국가들의 그릇된 태도에서 나온 결과들이다. 사실 아직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지 않은 국가의 (전체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백신이 덜 시급한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들은 그들의 리듬대로 차근차근 백신을 확보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최대 백신 생산국인 미국은 자국에서 생산된 백신을 단 1회분도 수출하지 않았다. 백신 제조사들의 공급 물량이 아직 부족한데다 그나마 시장에 나온 물량들마저 일부 국가들의 싹쓸이 대상이 돼버렸다. 이렇게 공급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아직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국가들은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위기의식은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에 대한 위기의식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이다. 이 불안한 미래에 대한 근심은 사실상 백신이 부족하지 않은 나라들에게 가상 세계를 향한 공포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공포는 자신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백신의 최대 생산국, 최대 소비국들로 인해 만들어진 공포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독일의 백신을 둘러싼 이슈 선점은 앞으로도 백신을 확보해야 한다는 불안감 속으로 이들 덜 시급한 국가들을 묶어 놓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들 국가들은 만약 특허권이 풀리면 최대한 많은 지역에서, 가능하다면 자국의 공장에서, 최대한 많은 백신의 생산을 바라게 될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해결될까?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화이자·모더나는 어떻게 투톱이 됐나

우선 미국이 제안한 특허권 해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치 않다. 백신을 생산한다는 것은 단순히 소재들을 모아 제조하는 것뿐 아니라 백신 제조에 쓰이는 고도의 핵심 기술과 그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핵심 물질들의 생산까지 필요로 한다.

특히 미국이 개발한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전령 리보핵산(mRNA)에 관여하는 식이다. 영국이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와 중국의 시노팜, 러시아의 스푸트니크V 등과 다른 방식의 항바이러스 체계다. 전령 리보핵산 기술은 다른 백신 체계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화이자와 모더나의 고유 방식이다. 그리고 높은 기술력과 복잡한 보관, 운반 조건, 비싼 가격을 특징으로 한다.
 

화이자 백신 ⓒ 이희훈

 
그런데 미국, 그리고 역시 화이자와 모더나의 주요 생산국인 유럽연합 국가들은 꾸준히 화이자와 모더나를 제외한 다른 백신들의 단점을 크게 부각시켜왔다. 백신의 효능과 비교해 무시해도 좋을 수준의 부작용을 확대해 공포를 유발하며 사실상 백신 시장에서 화이자-모더나 투톱의 지위를 만들어왔다. 아스트라제네카를 적극 홍보하고 있는 영국이 대표적 방역 성공 국가로 거듭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 특허를 포기한다고 하면 과연 미국의 백신 제약회사들이 전령 리보핵산 기술까지 특허를 포기하고 다른 나라로 기술 이전이 되도록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회의적 전망을 할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 정부가 백신 특허를 제거한다 해도 다른 나라에서 화이자, 모더나 식의 백신을 제작하려면 핵심기술은 여전히 미국의 독점적 제약회사로부터 사들여야 한다는 결론이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요리법만 공유를 할 뿐 그 요리에 들어가는 핵심 소스는 공개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환상의 맛을 자랑하는 곰국의 조리법을 공개한들 그 소스 제조법을 모른다면 여전히 독점적 갑을 관계는 깨지지 않는다. 이처럼, 전령 리보핵산 기술로 백신 시장에서 투톱체제를 공고히 한 화이자와 모더나의 독점적 위치는 특허를 제거한 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될 것이라는 얘기다.

만약 미국이 전령 리보핵산 기술까지 전 세계 제약회사들과 공유하겠다고 선언한다면 (사실 기술력 차이로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기꺼이 이 글은 오류를 인정하고 기쁜 마음으로 사과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미국 정부의 선의를 믿지 않았던 것까지 사과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진정한 공공재로서의 백신이 탄생하는 것이고 모든 나라가 부족함 없는 백신 보유국이 될 것이다.

요리법과 핵심 소스... 독일의 반론

순식간에 '자본의 앞잡이'가 돼버린 독일 정부가 주장하는 것도 그 대목이다. 미국은 특허권을 풀기에 앞서 우선 수출금지부터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허를 포기한다 해도 기술력 차이로 화이자와 모더나 방식의 질 좋은 백신 생산은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결국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제약 회사들이 특허권 보호를 받으며 질 좋은 백신을 생산해 가능한 모든 나라에 수출을 해야 한다는 것이 독일 정부의 주장이다.

물론 전령 리보핵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독일의 숨은 의도가 안 보이는 것은 아니다. 독일은 유럽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그리고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전령 리보핵산 방식의 백신을 생산할 능력이 있는 나라다. 실제 독일은 화이자와 모더나에 이어 세 번째로 전령 리보핵산 방식 백신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특허를 포기하라니 미국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겠는가.

사실 독일 정부의 특허권 유지 주장은 가장 고전적 이유에서 기인한다. 특허를 보유해야 더 독점적 생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 편의상 '화이자'라고 부르는 코로나19 백신 'BNT162b2'는  미국의 제약회사 화이자(Pfizer)와 독일의 생명공학 기업 바이오앤택(BioNTech)의 합작 백신이다. 독일 역시 미국처럼 핵심 전령 리보핵산 방식 백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백신 라이벌 국가간 경쟁 차원에서도 독일은 미국과 다른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은 월등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서서히 잠식해 가는 백신 시장에 화이자-모더나류 백신의 우월적 지위를 고착시키려는 전략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트럼프 시대와 차별화된 '도덕성 회복'이라는 명분도 얻으려 한다. 반면 독일은 혹여 특허 해제로 전령 리보핵산 핵심 기술이 중국이나 러시아로 흘러 들어갈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지적재산 보호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흔들릴 경우 핵심 기술의 유출이 더 용이해질 가능성을 경계한다.

그러나 독일 정부의 주장이 독일의 유일한 목소리는 아니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공공재에 독점적 특허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미국이 특허권 보장에 유럽보다 더 민감하다. 현재 독일은 언론을 중심으로 백신 지식재산권을 두고 활발한 토론 중이다.

독일은 지금 논쟁중
 

특허 보장을 주장하는 FAZ 기사 "피, 땀 그리고 특허". ⓒ FAZ

 
'많은 시간과 자본과 노력을 투자해 성과를 낸 것에 대해서 보상을 해야 한다'는 특허 옹호론자들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들 제약사들의 연구에 필요한 비용에는 개인 투자자들뿐 아니라 정부의 투자 즉 시민들의 세금이 상당 부분 들어가 있다는 반박이다.

이들 제약회사들이 공공재 생산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정부의 보조, 즉 국민 세금의 보조는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다. 물론 관여된 기업과 과학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해야겠지만, 독점적 지위 부여는 공공재 생산과 그 사용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조금 다른 류의 반론도 있다. 이것은 국가적 배타성과 관련이 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의약품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어쨌든 자신들의 세금으로 만들어낸 백신인데, 그것을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무상 원조를 해가면서 자신들은 2, 3주 더 기다릴 용의가 과연 독일인들에게 있겠느냐"(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자이퉁, FAZ 5월 10일자)는 것이다.

사실 이 논리에 상당 부분의 독일 국민들이 설득되는 분위기다. '우리의 세금으로 개발한 것을 왜 남의 나라 복지에 활용하는가'라는 논리다. 이 주장은 정치적 성향과도 관계가 있다. 민족적 배타성에 기댄 주장이기 때문이다.

반면 역시 상당 부분의 독일 국민들은 더 보편적 가치에 대한 배려를 추구하는 정치성향을 보인다. 이들은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 전 세계 주요 기술과 자본을 다수 소유하고 있는 시대에 지나친 배타적 세금 귀속 관계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배타적 특허 소유는 자본주의 논리 차원에서도 불공평하다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글로벌 제약회사는 이미 수십 년간 공적자금을 통해 성장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앞에서 특허 주장은 '합법적 대량 살상'이라고까지 (타게스 알게마이너 자이퉁, TAZ 4월 7일자) 주장한다.
 

특허 철폐를 주장하는 TAZ 기사 "특허라는 이름의 대량 살상". ⓒ TAZ

 
이처럼 독일 내부에서도 공공재 특허권 이슈를 놓고 활발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기왕 배타적 세금 논리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생각해보자. 자신들의 '피와 땀 그리고 특허'(앞서 언급한 FAZ 기사의 제목)를 소중히 여긴다면 역시 자신들의 피와 땀으로 이룬 많은 것을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에게 착취당한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보상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공공재에 대한 지나친 독점적 소유권 주장 못지않게 공론장에서의 지나친 배타적 주장도 공공 사회를 해치는 요소가 된다. 충분한 논의 과정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충분한 논의에 대한 신뢰는 바로 인간의 이성과 집단지성에 대한 신뢰이기 때문이다. 독일 사회의 활발한 논쟁을 건설적으로 바라봐야 할 이유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10만인클럽후원하기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