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23 15:02최종 업데이트 21.09.23 15:03

넷플릭스 드라마 넷플릭스 드라마 ⓒ Netflix

  
2016년 초, 육군 6사단 GP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전방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그에 따른 대북 확성기 방송의 재개로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 있던 상황이었다. 병사들은 엄동설한의 산중에서 하루 평균 5시간의 쪽잠을 2, 3시간 씩 찢어 자며 근무하고 있었다. 극한의 상황이 이어지던 차, 한 병사가 초소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부대로 달려 온 병사의 부모님은 아들을 잘 챙겨달라고 밥을 사줬던 선임병들을 붙들고 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이 그 선임병들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피해자는 두 달 간 세 명의 선임병들로부터 폭행, 가혹행위, 모욕, 성적 괴롭힘을 겪었다. 5시간 남짓한 취침 시간엔 선임이 떠넘긴 경계 근무를 서러 다시 철책으로 나갔다. 잠깐 쉬는 시간엔 선임들이 때리고 괴롭혔다.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가족에 대한 성희롱까지 있었다. 선임들의 빨래도 모두 피해자의 몫이었다. 후임병들의 증언에 따르면 피해자는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전쟁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맨날 북한 쪽 봐야 뭐하나. 뒤를 돌아 여길 보면 진짜 전쟁터가 있는데."

군인권센터에서 상근 활동을 시작하고 처음 지원했던 사건, 육군 6사단 GP 박 일병 사망 사건이다.
  
유가족의 연락을 처음 받은 건, 가해자들에 대한 1심 판결이 내려진 뒤였다. 놀랍게도 군사법원은 가해자 3명 모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때만 해도 군사법원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문제가 많고, 솜방망이 처벌이 자주 내려진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상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황당한 마음으로 유가족으로부터 판결문과 공소장을 받아보았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군검사의 공소장과 군사법원의 판결문 어디에도 피해자 박 일병이 사망한 사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결문 말미에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으로 "유가족과 합의가 되지 않은 점"이 유일하게 누군가 죽은 걸 유추해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박 일병 외에도 피해자가 여럿이었기 때문에 누구의 유가족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판결문을 읽어보면 그냥 단순 폭행, 모욕 사건쯤으로 알았을 것이다.

군판사는 판결문에서 집행유예의 이유로 '피고인의 전과가 없고, 징계처분을 받은 전력이 없고, 수십장의 반성문을 자필로 작성하여 제출하였고, 범행을 인정하였고, 연령, 성행, 가정환경 등의 정상을 고려'했다고 하였다. 단순 폭행 사건이라면 이렇게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리고 괴롭힌 것과, 그로 인해 죽게 만든 건 다른 일이다. 법의 판단도 달라야 한다. 하지만 기막히게도 군검사도, 군판사도 모두 사건과 사망의 인과관계를 외면했다.

그리고 해를 거듭해 여러 사건을 접하면서, 이것이 특이한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똑같은 상황은 2013년 육군 15사단에서 벌어진 여군 대위 성추행 사망 사건에서도 있었다. 이 사건 1심에서도 성추행 가해자는 같은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았다. 2014년 윤 일병 사망 사건에선 아예 폭행으로 쇼크사한 피해자를 두고 헌병은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죽었다'며 살인 사건을 폭행치사 사건으로 둔갑시켜버렸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게 만든 사람은 없는 이상한 사건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숱한 죽음들도 이렇게 얼렁뚱땅 지워졌다.

드라마 <D.P>가 뜨거운 감자다. 현실이냐 아니냐를 둔 논박이 이어진다. 국방부장관까지 가세했다. 물론 드라마는 현실과 같을 수 없다. 정말 현실 그대로 드라마를 만들면 그게 시청자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겠는가. 드라마를 넘어서는 상식 밖의 세상이 철책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손과 발은 소위 '군사법체계'로 불리는 군사법원과 군검찰, 군사경찰이었다.

군사법체계 개혁은 30년이 묵은 논의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논의의 핵심은 달라지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핵심은 3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휘관의 지휘권으로부터 수사와 재판이 독립시키는 일, 군사법체계 개혁은 매번의 고비마다 뒷걸음질치고, 주저앉았다. 장성들의 반대가 극심했기 때문이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때때로 군 수뇌부에게 북한보다 싫은 적은 아마 군사법원을 없애자는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만큼 군은 총력을 다해 군사법체계를 지켜왔다. 지휘권과 기강 확립을 위해 지휘관이 사법권과 수사권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면서.
  
군사법원과 군 수사기관, 정말 필요할까?

군사법체계가 지휘권과 기강 확립에 필요한 장치라는 군의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지휘권은 법령에 따라 지휘관에게 부여된 권한이다. 「군형법」 만을 살펴봐도 지휘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이 상세히 나열되어 있는 편이다. 상관 면전 모욕, 상관 공연 모욕, 상관 명예훼손, 상관 폭행, 협박, 상해 및 살해, 항명, 제지 불복종, 명령 위반, 명령 거짓 전달, 출병 거부, 근무 기피 목적 사술 등이 그러하다. 지휘권의 확립은 이러한 법률의 적용이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통해 이루어 질 때 가능한 것이다. 지휘관이 법원을 직접 지휘, 감독하며 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지휘권을 세워주는 것이 아니다.

군 기강 확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군의 기강을 해치는 일은 법령에 따라 규정된다. 그런데 모든 법률 위반은 범법자의 신분에 관계없이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통해 의율된다. 따라서 군기 확립은 군인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행위 양태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잘 갖추어 둠으로써 이룰 수 있는 목표인 것이지, 군인만을 관할하는 법원의 유무와는 유의한 관계가 없다.

일각에서는 군사법원이 폐지되거나, 평시 군사법원을 운영하지 않을 경우 관할권을 이양 받은 일반 법원이 작전 상황을 파악해야하거나, 판단에 있어 군사 전문성이 요구되는 군사범죄 재판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러한 주장은 실제 군사법원에 매년 접수되는 사건의 수를 분석해 타당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아래의 분석에서는 「군형법」 상 제15장 강간과 추행의 죄를 제외한 범죄, 「군사기밀보호법」 등 군사안보에 관한 여타 법률이 의율하는 범죄를 군사범죄로, 살인, 과실치사, 절도·강도, 사기·공갈, 횡령·배임, 뇌물, 풍속 등의 「형법」 주요범죄로, 「형법」 상 성범죄, 「군형법」 상 성범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상 성범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상 성범죄,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상 성범죄를 성범죄로, 「형법」 상 폭행 등의 죄를 폭력범죄, 교통 관련 법률 상 범죄를 교통범죄로, 그 밖의 범죄를 기타범죄로 분류하였다.
 

군사법원 1심 법원이 다루는 연간 접수 사건은 2019년 기준 총 2,839건이고, 군사범죄는 이 중 약 8% 정도다. ⓒ 김형남

  
군사법원 1심 법원이 다루는 연간 접수 사건은 2019년 기준 총 2839건이고, 군사범죄는 이 중 약 8% 정도다. 92%는 형법주요범죄, 성범죄, 폭력범죄, 교통범죄 등 비군사범죄다. 종래에 제기되어 온 바와 같이 순정군사범죄로 인하여 평시에도 군사법원 조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마찬가지로 군사법원에 기소되어 접수 된 사건의 수로 미루어 볼 때 사건 수사를 맡은 군사경찰, 수사·기소를 맡은 군검찰도 실제 다루는 사건도 대부분 일반 범죄이고, 순정군사범죄의 수는 얼마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순정군사범죄로 인하여 평시에도 군수사기관 조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군사법개혁을 가로 막는 이들

이 지리하고 오랜 논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국회에 제출한 개헌안에 평시 군사법원을 폐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놀란 국방부는 2심 고등군사법원만 폐지하고 1심 보통군사법원을 유지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은 20대 국회에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줄기찬 반대에 부딪혀 법제사법위원회를 넘지 못하다 그만 임기만료 폐기가 되고 말았다.

21대 국회가 출범하고 국방부는 다시 2심 고등군사법원 폐지 법안을 제출했다. 1심 법원과 수사기관만 남길 수 있다면 2심 법원 정도는 내어줘도 된다는 것이 군의 판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방위원장인 민주당 민홍철 의원도 똑같은 내용의 법안을 자구 몇 개 바꾸어서 제출했다. 민 의원은 고등군사법원장 출신의 예비역 법무관이다.

그리고 2021년, 공군에서 성추행 피해 여군이 사망했다. 군 수사기관의 조직적인 사건 은폐, 무마 시도, 여기에 더해지는 전관예우 의혹까지. 피해자를 구제해야 할 수사기관이 거꾸로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국회는 또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쏟아냈다. 평시 군사법원 폐지, 비군사범죄 민간 이관, 2심 군사법원 폐지 등 법안마다 개혁의 수위가 다 다른 것이 2014년 상황과 판박이였다. 다만 국방부가 2심 군사법원 폐지 정도까지는 양보(?)할 마음을 먹었다는 점이 조금 달랐다.

국방부는 평시 군사법체계를 폐지하자는 권은희 의원안이나 비군사범죄를 다 민간으로 이관시키자는 김진표 의원안이 힘을 얻을까봐 전전긍긍했다. 군이 관할하고 있는 범죄의 95% 이상이 비군사범죄라 김진표 의원안은 사실상 평시 폐지의 효과를 낳는다.

당초 국회에서는 여당을 중심으로 '비군사범죄 민간 이관안'(김진표 의원안)으로 논의를 정리하려 한다는 소문이 국회 안팎을 오가고 있었다. 국방부에도 비상이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장관은 8월 22일에 부랴부랴 각 군 참모총장을 다 소환하여 관련 회의를 열었다. 작전 상황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휴일인 일요일에 장관이 긴급회의까지 소집하다니. 군사법체계 개혁이 국방부에 얼마나 민감한 이슈였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8월 23일 국회 법사위 소위가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여러 의원들은 비군사범죄를 민간으로 모두 이관하는 데 공감하고 있었다고 한다. 법원행정처와 법무부도 이견이 없었다. 국방부만 반대할 뿐이었다. 국방부는 이 날 회의에서 전 날 장관과 참모총장이 모여 만든 타협안을 내놨다. 성범죄, 피해자가 사망한 범죄, 군인이 입대하기 전에 저지른 범죄만 민간으로 이관하고 나머지 사건은 그대로 군에서 처리하겠다는 안이었다.

여러 의원들은 국방부가 갖고 온 타협안에 비판적 태도를 보였고, 국방부는 이렇게까지 군사법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변변한 설명도 해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의원들은 돌연 국방부 안으로 타협하고 회의를 마쳤다. 그렇게 지난 8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누더기가 된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번에도 개혁은 반걸음에 그쳤다. 국방부 추산에 따르면 법 개정으로 민간에 이관될 범죄는 전체 사건의 30% 정도로 추산된다.

반쪽짜리 개혁

이번엔 성폭력 범죄로 사람이 죽어서 성범죄 사건 관할을 민간으로 이관한다 치자. 그럼 나중에 구타로 사람이 죽으면 그때 가서 구타 사건 관할을 민간으로 이관할 생각인가? 군이 성폭력 범죄, 사망사건만 유독 불공정하게 수사해온 것도 아니고, 군사법체계의 근원적 문제가 일부 범죄 사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원칙을 잃은 개정 과정에서 애초 군사법체계 개혁을 하기로 한 계기와 취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군사법원법 개정 과정은 군 수뇌부의 기득권 보위 투쟁이요, 군법무관들의 밥그릇 투쟁이었다. 전자는 '지휘권 보장' 논리로, 후자는 '전시 군사법체계를 운영하려면 평시에 조직 체계가 갖추어져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치환되었다. 그 밖엔 국방부가 내민 논거가 없다.

타협에도 원칙과 방향이란 것이 있다. 정치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시민이 바라는 속도보다 더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하다 보면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말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한 사람 죽으면 이만큼, 또 한 사람 죽으면 이만큼. 그럼 누가 또 죽으면 그때 가서 뭘 또 손 볼 생각인가. 2014년, 2021년, 그리고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죽음에 빚지고 살아야 하는가.
덧붙이는 글 필자는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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