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09 19:16최종 업데이트 21.12.0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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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강을 건넌다'는 것은 목숨 걸 만한 결단을 뜻한다. 기원전 49년 로마 원로원의 무장해제 요구를 거부한 채 루비콘 강을 건넌 카이사르가 그랬고, 1388년 위화도에서 말머리를 돌려 압록강을 건넌 이성계가 그랬다. 1961년 해병대와 공수단을 이끌고 한강 다리를 넘은 박정희도 빼놓을 수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조국 사태에 대해 '진지한 사과'를 한 이후 "조국의 강을 건넌다"는 말이 회자했다. 이 후보 발언은 12월 2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나왔다.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여전히 우리 당이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고 비판받는 문제의 근원 중 하나"라며 "아주 낮은 자세로 진지하게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에 앞서 이 후보 측근이라는 검사 출신 조응천 의원은 CBS 라디오에 나와 "우리한테 주어진 과제 중에 큰 것은 결국 '조국의 강'을 확실히 건넜느냐"라고 말한 바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일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패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콧방귀와 생뚱 사이

이 후보의 조국 사과 발언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4일 전북 김제에서 국민반상회 행사 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이 잘못됐다고 하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6일 MBC '뉴스외전'에 출연해서는 "그런 사람 임명한 것도 민주당 정권이고, 수사 대상이 돼 꼬투리 잡힌 것도 민주당 정권인데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는 건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층 자세를 낮췄다.


이 후보의 발언은 최근 민주당 지도부 기류와 맞닿아 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지난 6월 "국민과 청년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사과드린다"며 "조국 전 장관의 법률적 문제와는 별개로 자녀 입시 관련 문제는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보고 반성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 후보 발언을 두고 언론에서는 중도 확장용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중도층 표심을 잡으려는 선거 전략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이 후보의 '조국 승부수'가 통할지는 의문이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물론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니 말이다. 어차피 보수층은 아무리 사과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지지층에게는 생뚱맞은 소리로 들린다. 그렇다면 중도층은? 상황이 다급하니 저런다고 생각할 텐데, 과연 그 진정성을 알아줄까?

이 후보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만, 순서와 방식이 틀렸다. 조국 사태의 본질은 검찰권 남용이다. 스타검사 출신으로 국민의힘 대선주자로 나섰던 홍준표 의원도 인정했다시피 과잉수사의 전형이다. 수사 의도부터 수사 방식, 수사 과정, 수사 결과에 이르기까지 비판받을 점이 차고 넘친다. 굳이 조국 사태를 사과한다면, 검찰에 대한 비판이 그 두 배로 따라붙어야 한다. 그래야 비례와 균형이 맞는다.

죄가 아닌 사람을 겨냥해 마녀사냥처럼 우표수집처럼 진행된 먼지떨이 수사는 사법 선진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절제되지 않는 수사권은 인권 침해를 넘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조국을 3번 때린다면 검찰은 7번 때려야 한다. 그게 조국 사태에 대한 올바른 관전평이다. 죄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찾아내고 만들어낸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쪽에서 안 나오면 저쪽을 파헤쳐 어떻게든 옭아매는 방식, 특수부 수사의 부끄러운 전통이다. 사회정의에 이바지했던 검찰의 순기능과 별개로.

혼란과 분열의 1차 책임자는 검찰, 2차는 언론이다. '사모펀드'와 '표창장'에 꽂혀 마녀사냥 분위기를 조성한 일부 몰상식한 지식인들의 과오도 작지 않다. '화살촉'이 따로 없다. 장관 부인의 부도덕성에 그토록 분개했던 이들이 대선후보 부인의 갖가지 비리 의혹에 대해 그 절반이라도 비판했던가? 수사와 기소로 밝혀지지 않았으니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검찰 수사가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인가? 일반인의 평범한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편파적 사고를 한다면 자신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더는 공개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최대 수혜자는 윤석열

이제 와서 새삼 조국 부부의 잘잘못이나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따지는 건 소모적이다. 다만, 이 후보의 조국 사과 발언은 몇 가지 관점에서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조국 사태는 수사와 기소로 일단락됐다. 비록 대법원 판결이 남았지만, 재판 절차도 마무리 단계다. 법적 방어권과 별개로 조 전 장관은 여러 차례 사과했다.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그 사과의 의미가 뭔지 안다. 진보 명망가의 '내로남불'에 대한 사과다. 타인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 관대한 이중성에 대한 사과다.

1,2심 판결을 다 인정한다 해도, 문재인 정부의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 대부분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 개인 비리다. 혹시 대통령이나 여당이 수사를 막거나 방해했던가? 검찰은 대통령 인사권과 입법부 검증 절차를 무력화하면서까지 원 없이 수사했다. '주범'인 부인은 구속됐고, 남편은 장관에 임명된 지 한 달 만에 물러났다. 대통령도 사실상 사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피해자'로 둔갑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 국회사진취재단

 
여권 정치인들과 강성 지지자들이 조국을 옹호했다고 비판하는데, 비록 지나친 면도 있지만 수사 방식과 수사 결과를 보면 이해될 면도 있지 않나? 수사 초기 난무했던 중대 혐의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수사 착수 명분이자 핵심 의혹인 사모펀드 혐의마저 과장되거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남은 건 수상/체험/봉사활동 등 관행적인 스펙(비교과 활동) 부풀리기였다.

한 가족과 일가친척을 샅샅이 털면서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은 수사의 성과치고는 빈약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모든 죄는 걸린 죄'라지만, 정치인이든 공직자든 서민이든 누구라도 그런 식으로 발가벗겨지는 수사를 당해서는 안 된다. 이 후보의 사과 발언은 자칫 무도한 검찰 수사를 정당화하거나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검찰개혁을 외쳤던 수많은 촛불시민을 모독할 우려가 있다. 얻는 표보다 잃는 표가 많을 수 있다. 반대편으로 돌아서지는 않을지 몰라도, 상실감에 기권할 수도 있다. 이쪽저쪽 꼴 보기 싫다며.

민주당이 사과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대선공약인 수사/기소 분리를 실현하지 못해 검찰개혁을 완성하지 못한 것도 그중 하나다. 정권 초기 개혁 대상인 검찰을 적폐 청산 도구로 활용하는 바람에 검찰개혁 본질이 왜곡되고 변질했다. 정치검찰과 표적수사 논란의 진원지인 특수부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체제에서 축소되기는커녕 확대됐다. 검경 수사권을 조정한다면서도 '6대 범죄'라는 주요 영역 수사권을 검찰에 남겨둔 기형적인 제도가 탄생했다. 그 바람에 경찰과 검찰, 공수처에 고소‧고발이 중첩되고 수사영역이 뒤엉키는 혼선이 빚어졌다. 개혁 당위성에만 집착하고 현장의 혼란과 부작용을 방치한 무책임한 행정이었다. 검찰개혁 추진자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실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강력한 검찰주의자인 윤석열을 총장에 앉힌 것은 검찰개혁에 역행하는 인사 참사였다. 같은 편으로 여긴 오만과 오판 탓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그에게 검찰 인사의 백지수표를 끊어줬다는 점이다. 과거 그와 수사를 같이했던 수십 명의 특수부 검사가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의 요직을 차지했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한 사람의 인맥이 그토록 완벽하게 검찰을 장악한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제왕적 총장이었다.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제기하자 여당 의원들은 필사적으로 감쌌다. 윤 전 서장이 최근 한 사업가로부터 세무조사와 관련해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윤우진-윤석열 커넥션 의혹이 재조명되는 것에 대해 민주당은 사과해야 한다.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이 부동산 사업 인허가 로비 명목으로 뒷돈 1억원을 챙긴 혐의로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민주당이 정작 사과·반성해야 할 것들

검찰개혁 외에도 여권이 사과하고 반성해야 할 것은 많다. 고집과 소신은 다르다. 실물경제와 시장원리에 밝지 못한 강단학자 또는 운동권 출신 정책 입안자들이 '진보적 이념'과 설익은 정책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임으로써 많은 국민을 고통스럽게 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실책을 업그레이드했다는 점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서민을 위한 정당이 맞는지 한숨이 나올 뿐이다.

탈원전을 하겠다는 건지 안 하겠다는 건지도 헷갈린다. 남북 평화구도 정착은 지상과제지만, 북한 눈치 보기는 안쓰러울 정도다. '실용'보다 '감동'을 중시하는 인사를 하다 보니 심심찮게 자격 미달 논란이 일었다. '이벤트 정치'라는 일부의 비판에 일리가 없지 않다. 그 점에서 이재명 후보가 실용 면모를 보이는 것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코로나 대응도 초기에는 잘하는 듯싶더니 대선을 의식해서인지 원칙과 기준이 무너진다. 학교만 하더라도 전면등교라는 장관의 원칙론에 얽매인 결과 교실 확진자 속출과 그에 따른 피검사자 및 수동감시자 확산과 수업 파행, 부분적인 비대면 수업 전환 등 뒤죽박죽이다. 무증상인데도 음성 판정 받은 지 며칠 만에 또 검사 통지가 날아온다. 누구 말대로 이러다 온 국민이 코 뚫리겠다. 기말시험이 연기되면서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 괴롭다. 한마디로 아수라장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24일 서울시 영등포구 당사에서 열린 민생·개혁입법 추진 간담회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로서 지금까지 우리의 민첩하지 못함을, 국민들의 아픈 마음을 더 예민하게, 더 신속하게 책임지지 못한 점을 사과드린다"며 "완전히 다른, 새로운 민주당으로 거듭나겠다는 의미로 사죄의 절을 드리겠다"고 했다. ⓒ 유튜브 이재명TV 갈무리

 
코로나 피해자 보상/지원 대책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중소 상인과 영세 자영업자들이 죽어 나가는데 '전 국민 용돈'과 나랏빚 타령만 하다 실기했다. 오히려 도박판에서 판돈 올리듯 '50조 선별 지원'을 내지른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 같다. 그 당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100조 기금'을 주장했다. 코로나 민생 이슈를 선점한 셈이다.

이런 절박한 논의 앞에 뜬금없이 '조국의 강을 건넌다'는 발상은 얼마나 한가로운가. 선거 전략이라면 더욱 한심하다. 목숨 건 결단도 아니거니와 구차하고 없어 보인다. 그거 표 안 된다. 표가 되는 건 부동산과 코로나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꼭 해야 할 개혁은 마무리해야 한다. 그게 책임 있는 집권여당의 자세 아닐까? 민심이 돌아선 데는 힘을 실어줬는데도 제대로 개혁하지 못하고 몸 사리고 무능함만 드러낸 것에 대한 실망감도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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