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09 14:51최종 업데이트 22.06.0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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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지방선거 참패 후 닫혀있는 더불어민주당 여의도 당사 사무실. ⓒ 공동취재사진

 
지방선거를 앞두고 소상공인 손실보전금 800만 원을 받아든 지인이 물었다.

"아니, 윤석열 정부가 이렇게 쉽게 푸는 걸 문재인 정부는 왜 못 한 거지?"
"그러게."



지인은 민주당의 오랜 지지자다. 당연히(?)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싫어한다. 그런 그의 입에서 처음으로 그쪽에 우호적인 말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 생각보다 괜찮은데. 옳고 그른 걸 떠나 일단 실행력이 있잖아. 자신감이 넘쳐 보여. 근데 민주당은 고민하고 걱정하고 눈치 보느라 못해."

코로나 손실보전 또는 손실보상은 옛 여권의 히든카드여야 마땅했다. 잘만 하면 기울어진 대선 판도를 뒤집을 수도 있는.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그 절호의 기회를 제 발로 차버렸다. 보편복지라는 진보 이념에 얽매여 전 국민 용돈(재난지원금)으로 생색내고, 나랏빚 타령하는 관료들에게 휘둘리면서 찔끔찔끔 방역지원금으로 눙칠 때 이미 정권은 넘어갔다.

장기간 영업 손실을 감수하고 정부 방역지침에 따른 영세 자영업자들이 죽어나가는데 '엄중하게' 재정건전성을 논하는 모습은 놀랍고 신기했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그것도 엉터리 숫자놀음으로. 그 와중에 신기루 같은 대통령 지지율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참으로 한가하고 어처구니없는 행태였다.

민주당, 딱 망하는 집안 꼴

대선을 석 달 앞둔 지난해 12월 민주당에서 '조국의 강'을 언급할 때 나는 칼럼을 통해 '한심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조국의 강'을 건넌다고? 한심하다 http://omn.kr/1wd7i) 부동산과 코로나 대책으로 민심을 추슬러야 할 시점에 중도층에 구애해보겠다고 별 효과도 없으면서 지지층 상처나 헤집는 발언을 선거 전략이라고 내놓다니. 수동적이고 자학적인 민주당의 고질적 병폐를 여실히 드러낸 사례였다.

그런 패배주의적 행태는 대선이 끝난 뒤에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힘겹게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갈등과 분열의 온상이었다. 정체성도 분명하지 않고 지향점도 모호했다. 쇄신을 얘기했지만, 알맹이가 없었다. 대안도 없이 세대교체를 거론하고 '개딸' 논쟁을 벌였다. 리더십 부재가 근본적 문제점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6·1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기로 했다"고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지방선거 참패 후 쏟아진 사과와 반성과 책임 공방. 익숙한 풍경이다. 밖으로는 국민에게 사죄하면서도 안으로는 계파 간 총질에 바쁘다. 정치적/계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패인을 달리 꼽는다. 이래서 졌다, 저래서 졌다... 딱 망하는 집안 꼴이다.

그런데 좀 우스꽝스럽지 않나?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패배였는데, 뭘 그리 야단법석인지. 심하게 말하면, 패배가 목표인 정당처럼 행동하지 않았나? 몇 가지 악재가 겹친 것도 불운이지만.

사과와 저자세로 동정을 구하는 읍소 전략은 그 진정성을 떠나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았다. 표심을 움직이기는커녕 역효과를 냈다. 산토끼는 외면하고 집토끼는 숨어버렸다.

'졌잘싸' 프레임의 함정

거대 야당이 끊임없이 자신을 비하하고 자학하는 모습은 딱하고 비참했다. 사과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사과 자체를 전략으로 삼은 듯한 순진한 또는 어리석은 태도를 지적하는 것이다. 거기서 나아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럴 의지도 역량도 없었다.

국민 신뢰를 잃은 민주당은 죽어야 산다. 민주당이 개혁 대상으로 삼은 검찰이 환골탈태해야 하는 것처럼. 그 점에서 대선에 이은 지방선거 패배가 약이 될 거라는 긍정적 시각도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지방선거에서 크게 진 것이 외려 잘된 일이라고 여긴다. 총선을 기사회생의 발판으로 삼아 다음 대선에서 이기면 된다는 논리다.

민주당의 희망고문에 질린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지 모르겠지만, 좌절보다는 희망이 낫다는 점에서 냉소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점이 있다. 대선 패배 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프레임으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문제점을 냉철히 짚지 못한 채 패인을 외부에서 찾는 잘못을 되풀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낙관론의 함정이다.

반성을 강조한 쪽도, 쇄신에 방점을 찍은 쪽도, 세대론을 주장한 쪽도 저마다 일리가 있다. 선명성을 내세운 쪽과 중도 통합을 지향한 쪽을 극단적 대립관계로 볼 필요도 없다. 절충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진정성만 있다면 화합과 통합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어떠한 경우든 민주당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좌파 성향이 있지만, 진보정당은 아니다. 진보를 지향하는 보수정당이다. 급진적 진보 이념보다는 합리적 개혁이 어울리는 정당이다. 핵심 지지층은 진보 성향이 강하지만, 중도층을 포함한 일반 지지층은 온건한 개혁을 선호한다.

'노예도덕'에서 벗어나야

관건은 개혁의 지속성과 실천력이다. 견제와 균형, 공정과 분배, 복지와 인권, 약자와 소수자, 연대와 공존, 환경과 생명을 중시하는 진보적 이념이 국민 삶의 질적 향상과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실력으로 입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의 진보를 믿는 국민이 굳이 민주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문재인 정부는 그 점에서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성과도 있었지만, 오판과 실책도 많았다. 특히 연이은 부동산 정책 실패는 진보 정권의 역량에 근본적인 회의감을 갖게 했다. 정치개혁 실종과 인사 실패는 보수정권과의 차별성을 희석했다. 언론개혁과 검찰개혁 실패는 전통적 지지자들에게 좌절감을 안겼다.

왜 그럴까? 첫째, 실력과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둘째, 보수언론을 비롯한 개혁 반대 세력의 저항을 돌파할 배짱이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 일관성과 실천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넷째, 내로남불과 자아도취에 빠졌기 때문이다. 다섯째, 진보 기득권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거듭나려면 먼저 전투력부터 회복해야 한다. 명색이 거대 야당이고 다수당인데 자신감이 너무 없어 보인다. 반성과 사과도 한두 번이지, 자주 하면 진정성도 떨어지고 효과도 약해진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친 뒤 나오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시대정신은 도덕보다 능력을 원한다. 진보 진영 인사들의 잇따른 비리와 추문은 도덕이 진보의 영역이라는 고전적 믿음을 무너뜨렸다. 국민 신뢰를 되찾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실력과 정책 대결에서 여당보다 낫다는 점을 보여주면 된다.

우리 사회의 진보에 필요하고 국민에게 이로운 일이라고 판단하면 좌고우면 말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보수언론이 주도하는 여론 눈치 보지 말고 지지층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공과는 선거로 평가받으면 된다. 실체가 불분명한 역풍 걱정하다가 실기한 적이 한두 번인가?

대선 때부터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민주당 행태를 보면,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말한 '노예도덕'을 떠올리게 한다. 니체에 따르면, 노예도덕의 가치 기준은 선과 악이다. 노예도덕에 빠진 자들은 늘 악한 존재를 설정하고 자신들을 선한 존재이자 피해자로 규정한다. 자학하고 핍박받는 데 익숙하다. 반면 주인도덕은 엘리트주의를 내세우면서 사람을 위대한(고귀한) 존재와 열등한 존재로 나눈다.

니체가 노예도덕을 언급한 것은 자신이 경멸하는 기독교인을 비판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맥락도 다르고 적절한 비유도 아닐 수 있다. 주인도덕은 오늘날 민주주의 가치와 배치된다. 다만 노예도덕의 어떤 속성이 민주당의 패배주의적 행태와 비슷해 보이기에 하는 말이다.

니체의 개념을 약간 비튼다면, 지금 민주당에 가장 필요한 것은 노예도덕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당당하게 호소하라. 우리는 이러이러한 정책으로 진보적 가치를 구현해 국민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겠다고. 검찰공화국을 견제할 수 있게 힘을 실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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