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16 19:40최종 업데이트 22.07.16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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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커피의 전성시대를 의미하는 커피 제1의 물결을 잠재운 것은 스타벅스의 출현이었다. 스타벅스는 1971년 3월 30일에 샌프란시스코대학(University of San Francisco)의 동창생이었던 제리 볼드윈(Jerry Baldwin)과 고든 바우커(Gordon Bowker) 그리고 바우커의 친구였던 제브 시글(Zev Siegl)이 창립했다.

제리 볼드윈은 샌프란시스코 출신으로 지역에 있는 샌프란시스코대학에 입학하였고, 고든 바우커는 워싱턴주 출신으로 시애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샌프란시스코대학에 진학함으로써 둘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제브 시글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출신으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와 교육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친구 사이였던 바우커와 시글이 대학 졸업 기념으로 동부와 유럽 여행을 기획했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볼드윈이 여행에 합류한 것이 이들을 동업자로 만든 출발이었다.

이들은 여행 후 바우커의 고향인 시애틀에 자리를 잡았다. 볼드윈은 영어, 시글은 역사 교사가 되었고, 바우커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을 결합시킨 것은 커피였다.

'저급' 커피와 다른 커피

이들이 시애틀에 스타벅스를 열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샌프란시스코 버클리에 있던 로스팅 회사 피츠(Peet's Coffee and Tea)의 영향이었다. 네덜란드 이민자 알프레드 피트(Alfred Peet)가 1966년에 세운 이 회사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최상급의 생두만을 엄선한 후 강하게 로스팅하여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회사로 출발하여 지역 내에서 큰 명성을 얻었다.

대형 커피 기업들이 생산하여 유통업체를 통해 공급하는 상품 커피에 익숙해 있던 미국의 소비자들, 특히 젊은 소비자들에게 피츠는 큰 인기를 얻으며 성장을 거듭하였다. 이로 인해 피츠는 지금도 미국에서 '미식가 커피'(Gourmet Coffee)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스타벅스는 이 회사에서 제공하는 원두를 받아서 사업을 시작함으로써 출발이 순조로웠다.

피츠 커피가 성공을 거두게 된 또 하나의 배경에는 새로 등장한 개념인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의 영향도 있었다. 1974년에 에마 크누첸(Ema Knutsen)이 <티 앤 커피 트레이드 저널>(Tea & Coffee Trade Journal)에 기고한 글에서 처음 사용한 이 용어는 "최상의 향미를 지닌 커피"(beans of the best flavor)를 표현하는 용어로 등장하였다. 생산지나 품종 그리고 등급 수준과 무관하게 상업적으로 거래되는 저급 커피를 상징하는 용어인 상품 커피(commodity coffee)와 차별화된 커피를 말한다.

1982년에는 미국 스페셜티 커피협회(SCAA)가 그리고 1988년에는 유럽 스페셜티 커피협회(SCAE)가 출범하였다. 스페셜티 커피는 이들 협회에서 정한 엄격한 기준에 의한 심사에서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받는 커피 생두에 부여되는 명예로운 명칭이 되었다. 두 협회는 이후 통합되어 스페셜티 커피협회(SCA)라는 이름으로 커피 고급화에 기여하여 왔다.

이런 개념의 등장과 유행으로 기존 상품 커피와 다른 커피를 공급하는 피츠나 스타벅스의 인지도가 급속히 확산할 수 있었다.

하워드 슐츠, 커피 역사의 새로운 신화

1982년에 스타벅스를 방문하였던 텀블러(커피 용기) 세일즈맨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이 회사의 판매와 마케팅 담당자로 합류하였다. 슐츠는 1983년에 이탈리아 밀라노 일대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탈리아식 커피 바(coffee bar) 문화와 카페라테라는 음료를 접하였다.

귀국한 슐츠는 스타벅스를 통해 이탈리아식 커피 바 문화, 에스프레소, 멋진 바리스타 그리고 우유를 이용해 만든 새로운 커피 음료들을 미국에 도입하고자 하였지만 스타벅스 설립자들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다방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미국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소는 집이나 직장이지 이탈리아의 커피 바와 같은 제3의 장소는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나름 미국의 전통을 지키자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스타벅스를 떠난 슐츠는 1986년 4월 시애틀 다운타운에 '일 지오날레'(Il Gionale)라는 카페를 설립하였다. 카페 운영을 시작한 이듬해 1987년에 피츠의 매각 소식이 전해졌고, 스타벅스 창립자 중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볼드윈이 피츠를 인수하면서 스타벅스를 떠날 결심을 하였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 슐츠였다. 1987년 3월 슐츠는 필요한 자금 380만 달러를 확보해 스타벅스를 인수하였다. 자신이 만든 일 지오날레라는 이름을 포기하고 스타벅스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렇게 스타벅스를 인수한 슐츠에 의해 세계 커피 역사의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스타벅스의 커피 맛은 사실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맛을 내세워 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는 어려웠다. 투자가 필요했던 인수 첫해부터 손실이 생겼고, 첫 수익이 났던 것은 3년이 지난 1990년이었다.

1991년에 주위 사람들의 비웃음을 견디며 더운 로스앤젤레스에 뜨거운 커피를 파는 매장을 연 과감한 결정을 계기로 스타벅스의 명성은 미국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1991년 말에 매장 수가 100개를 넘겼고, 1992년 6월에는 주당 17달러의 공모가로 기업 공개를 단행하였으며, 시가 총액이 2억 7300만 달러에 달하게 되었다. 3개월 후에 주가는 33달러를 넘었고 기업 가치는 4억 2000만 달러로 상승했다. 5년 전 인수할 당시 비용의 110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스타벅스 ⓒ pixabay

 
1993년에는 주위의 우려 속에 워싱턴 DC에 매장을 열어 동부 지역 문화와도 성공적으로 결합하였다. 이를 지켜본 잡지 <포춘>(Fortune)은 커버스토리에 슐츠를 실었고, "스타벅스는 커피를 갈아 황금을 만든다"(Howard Schultz's Starbucks grinds coffee into gold)라고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확장을 거듭한 스타벅스는 1996년에 매장 수 1천 개를 돌파하였다. 이해에 연 해외 첫 매장이 바로 도쿄 스타벅스였다.

스타벅스는 이미 1996년 8월 일본에 이어 1999년 1월 중국 베이징에 1호점을 열어 동양인의 입맛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일본에서는 시작과 함께 성공적인 신화를 쓰기 시작했지만 중국의 초기 성장은 일본에 비해 더디기만 했다. 그러던 차에 스타벅스는 1999년 7월 27일, 서울의 이화여자대학교 앞에 한국 1호점을 열었다. 당시 스타벅스는 전 세계 12개 국가에 2300여 개 매장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스타벅스는 등장과 함께 성공 신화를 쓰기 시작하였다. 스타벅스의 등장은 한국인의 커피 취향뿐 아니라 문화 자체에도 적지 않은 파동을 일으켰다. 음식물을 들고 걸어 다니거나, 음료를 마시며 거리를 걷는 것을 천박하게 여겼던 문화에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는 거리를 걸으며 커피를 마시는 것이 젊음의 상징, 하나의 유행으로 등장하였다. 특히 스타벅스 로고가 새겨진 컵이나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은 첨단 유행이었다. 낯설던 테이크아웃 문화를 친숙하게 만든 것이다.

두 번의 모험

스타벅스는 예술적으로 볶은 최상의 커피를 마신다는 심미적 감성 그리고 공정무역을 통한 커피를 마심으로써 커피 생산자를 도울 수 있다는 윤리적 의식, 재생 펄프로 만든 컵을 사용함으로써 환경 보호 운동에 동참한다는 사회적 책임감 등의 요소들을 적절하게 내세움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데 성공하였다.

스타벅스를 팔고 피츠 커피를 운영하던 볼드윈은 2000년경 커피 업계를 떠나 아내와 함께 와인 사업을 시작하였다.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볼드윈과 마찬가지로 교사 출신이었던 시글은 커피 업계를 떠나 세계를 무대로 기업 운영 컨설팅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광고 카피라이터 출신 바우커는 2008년까지 피츠 커피의 이사회 멤버로 활동한 후 은퇴하였다.

이들 세 명의 친구들이 커피라는 바다에 던진 작은 돌이 잔물결을 일으켰고, 그들의 사업을 이어받은 하워드 슐츠는 잔물결에 모험이라는 큰 돌을 던져 엄청난 파도를 만들었다.

스타벅스가 출발과 함께 성공 신화를 쓴 것은 아니었다. 두 번의 모험이 있었다. 하나는 미국 전통과 충돌하는 이탈리아식 카페 문화를 받아들이는 모험이었고, 다른 하나는 더운 땅 로스앤젤레스에서 뜨거운 커피를 파는 모험이었다. 지금은 상식이 한 세대 전에는 모험이었다. 용기 있는 사람에게 모험과 상식은 결코 멀지 않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Mark Pendergrast, Uncommon Grounds: The History of Coffee and How it Transformed our World. New York: Basic Books, 2010.
주홍식, 《스타벅스, 공간을 팝니다》, 알에이치코리아, 2017.
Parker, Scott F·Michael W. Austin(2011). 김병순 옮김,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 따비, 2015.
이길상,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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