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25 13:33최종 업데이트 22.08.2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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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소식을 보내오는 시민기자들과 함께 '2022 글로벌 리포트 : 불타는 지구... 이상기후 현장을 보다'를 내보냅니다. 폭염, 폭설, 산불, 홍수와 같은 각종 이상기후 현상과 현지인들의 반응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이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응, 전문가들의 진단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얼마나 달콤한 더위인가!"

수년 전, 섭씨 영상 40도를 훌쩍 넘어선 멕시코 북부 도시 몬테레이(Monterrey)에서 택시기사로부터 들은 말이다. 사람의 체온을 훌쩍 넘어선 더위를 두고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없는 택시 안에서 불평하는 나에게 돌아온 말이었다. 처음엔 내가 더위를 먹어 헛소리를 들은 줄 알았다. 아니, 영상 40도의 끈적거리는 더위 앞에 '달콤한'이라는 수식어라니.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그 뒷말을 듣고 나서야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어 문법 상 모든 수식어는 뒤쪽으로 오는 법칙에 따라 '달콤한 더위' 뒤에 이어진 말은 '맥주를 마시기에'라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섭씨 영상 40도를 넘어서지만 맥주를 마시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던 것이다. 이런 날일수록 맥주는 한없이 달아진다는 것이었다.
 

멕시코 여느 가게들에서 맥주를 시원하게 보관하는 방법. 맥주 위에 얼음을 가득 부어 냉장 효과를 대신한다. ⓒ 림수진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더운 날씨에도 어김없이 작동하는 멕시코 사람들 특유의 무한긍정이 조금은 얄밉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 이후 덥다 싶으면 택시기사로부터 들었던 '달콤한 더위'라는 말이 주문처럼 살아나 나를 위로해줬다. 물론, 얼음에 쟁여진 맥주와 함께 말이다.

맥주 생산 중단

다행히, 멕시코는 맥주가 맛있는 나라다. 세계에서 맥주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전 세계 맥주 시장의 30%를 점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에까지 투명한 병에 담긴 황금색 '코로나 맥주'가 닿을 수 있었으리라. 라임 혹은 레몬을 곁들이고 굵은 소금 한 꼬집을 뿌려 마시는 멕시코인들의 습관까지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유행을 타기도 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가장 강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는 맥주가 바로, 멕시코의 코로나 맥주다.
 

멕시코는 맥주가 맛있는 나라다. 라임 혹은 레몬을 곁들이고 굵은 소금 한 꼬집을 뿌려 마시는 멕시코인들의 습관까지 우리나라에 전파되어 유행을 타기도 했다. ⓒ 림수진

 

멕시코 사람들의 맥주 사랑은 지극하다. 물론, 멕시코를 대표하는 술 떼낄라(Tequila)가 있긴 하지만 성공적인 해외 마케팅에 힘입어 정작 멕시코 내에서는 서민들의 접근이 어려운 술이 되어버렸다. 포도주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맥주라면 계층과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라도 접근이 쉽다. 맥주 역시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저렴한 것은 355ml 한 병 당 약 500원 미만으로도 구할 수 있다. 그나마 이런 맥주가 있어 힘든 일에 지친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서민들이 잠깐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우스갯소리이겠으나, 멕시코 사람들의 행복 지수가 높이 나오는 이유가 당장 손에 맥주 한 병 들고 있다면 그것 자체로 행복이기 때문이란다. 일리가 있다.


그런데 최근, 서민들의 술 맥주 생산에 큰 지각변동이 발생하고 있다. 멕시코 맥주 생산의 메카인 북부 도시 몬테레이에서 더 이상 맥주 생산을 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가고 있다. 지난 7월 대통령이 생산중단을 권고하였고, 멕시코 맥주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모델로 그룹(Grupo Modelo, 코로나 맥주를 생산하는 기업이다)과 하이네켄 콰우테모크 목테수마(Heineken Cuauhtémoc Moctezuma) 두 회사가 이를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충격적인 뉴스였다. 130년 이상 멕시코의 대표적인 맥주 생산 기지였던 몬테레이에서 더 이상 맥주가 생산되지 않을 것이라니,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멕시코 맥주 생산의 대표 주자인 두 개 기업이 맥주의 상징 도시인 몬테레이에서 더 이상 맥주를 생산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자 불과 2년 전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시기 맥주 생산이 중단되면서 파생된 혼란이 다시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일기도 했다. (관련기사 : 화장지는 됐고, 맥주를 달라 http://omn.kr/1nxno).
 

투명한 병에 황금빛으로 담긴 코로나 맥주. 세계 어디서나 인기가 좋다. 물론, 멕시코에서도 가격이 저렴한 축에 들어 인기가 좋은 편이다. 레몬 혹은 라임을 곁들이고 굵은 소금 몇 알갱이를 넣어 마시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시기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판매가 급감하였다. ⓒ 코로나맥주 페이스북

 
이를 의식하여 정부는 연일 시민들을 상대로 친절한 설명을 덧붙인다. 맥주 생산 기지를 이전할 뿐, 맥주 생산을 중단하진 않겠다는 내용이다. 지난주에도 대통령은 정례기자회견 자리에서 몬테레이에서 중단된 맥주 생산은 멕시코의 남동부 지역으로 이전해 계속될 것이며 정부는 이에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하면서 맥주 파동을 염려하는 국민들을 달랬다.

'물맛이 좋아야 술 맛이 좋다'는 통설은 이곳 멕시코에서도 통하는 말이다. 맥주도 그렇고 코카콜라도 그렇고,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이 두 가지가 유난히 맛있는 이유는 공장이 들어선 곳의 물맛이 좋기 때문이라고, 멕시코 사람들은 굳건히 믿고 있다. 심지어 오래전 미국으로 간 멕시코인들이 맥주와 콜라를 사러 멕시코로 내려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 공장을 이전하겠다 하니, 그것도 갑작스레 그러겠다 하니, 사람들 마음이 심란할 수밖에 없다. 일부 가게에선 벌써 맥주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먹을 물도 없다

130년 이상 맥주 생산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던 몬테레이에서 맥주 생산이 중단되는데 따른 혼란이 충분히 예상됨에도 생산이 전면 중단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물 부족'이다. 멕시코 최대 공업도시인 몬테레이가 지난 6월부터 극심한 물 부족을 겪고 있고, 당분간 해결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서 결국 맥주와 청량음료 생산 중단 조치가 나온 것이다.
 

몬테레이와 주변 도시들에 생활 용수를 공급해주던 Cerro Prieto 댐은 계속된 가뭄으로 저수율이 2%로 내려갔다. ⓒ Reforma 뉴스


상황은 심각하다. 검색 창에 몬테레이 도시 이름과 가뭄이란 말을 조합하여 넣으면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 저수지 바닥, 그 바닥에 주저앉은 배, 마른 풀숲 한 복판에 있는 수상가옥, 급수차에 온갖 통을 들고 몰려든 사람들, 문 닫힌 학교 등의 이미지가 올라온다. 사나흘에 한 번씩 들어오던 물은 제한급수의 간격을 점점 넓히다가 급기야 일주일에 한 번, 혹은 기약 없는 안녕을 고하고 말았다.

주 정부는 지난 7월 중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상수원이 소진되어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의 '제로의 날'을 선포했다. 몬테레이와 주변 권역의 5백만 인구가 쓰고 마시는 상수원이 바닥을 드러냈다. 주변에 세 개의 댐이 있지만 각각 저수율이 5% 미만으로 더 이상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부자들이야 각 가정에 어떻게든 물 저장탱크를 갖추고 그 곳을 통해 자체 급수하며 버티고 있지만, 서민들은 섭씨 영상 40도를 넘어서는 폭염 속에 제한 급수를 견디고 있다. 그야말로 가혹한 삶의 연속이다. 차라리 홍수가 나더라도 허리케인이 한 번 와줬으면 하는 바람까지 간절하다. 정부 역시 허리케인이 아니고서는 당장 해결 방법 없음을 시인했다.
 

오랜 시간 제한급수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이동식 급수차가 도착하자 각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물통을 들고 급수차 주변으로 줄을 서고 있다. 일부 마을에서는 제한급수에 화가 난 주민들이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 El Pais 뉴스

 
물 부족은 겨우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에서 벗어나 정상화를 향해가는 학교 교육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화장실에서 쓸 수 있는 물이 사라지자 그나마 화장실을 쓸 수 있는 주변 학교로 학생들을 분산하다 그 마저 한계에 달한 듯하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등교 시 각자 1리터의 생활용수를 들고 올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 또한 제한급수가 이어지면서 한계에 닿았고, 결국 수많은 학교들이 여름방학을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곧 개학이 다가오고 있지만, 여전히 뾰족한 수가 없으니 교육 당국은 다시 비대면 수업으로의 회귀를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가뭄, 산불의 악순환... 두려운 변화

작금, 이 고통의 이유는 분명하다. '기후위기'다. 수년 간 강수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라니냐(La Niña)' 현상이 3년 이상 멕시코 북부 지역에 영향을 미치면서 가뭄이 가속화되었다. 산불도 잦아졌다.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정부와 여론은 재난을 선포했다. 그리고 그 근간에 '기후위기'가 있음을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어디 멕시코뿐이겠는가. 지구 전체가 기후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 어찌 보면 정부 입장에선 가장 안전하고 쉬운 결론일 것이다.

그럼에도 유독 몬테레이라는 도시와 그 권역에 가뭄 피해가 극대화되고 있는 상황 앞에 기후위기 너머의 또 다른 이유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 지역은 지난 20년간 인구가 50% 이상 증가했고 대규모 산업 시설들이 빠른 속도로 집중되었다. 한국 국적의 자동차 산업 시설도 이곳에 터를 잡았으니 제법 규모가 큰 한인 타운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도시 성장은 물 소비와 항상 축을 함께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 이 도시가 직면한 어려움의 이유를 온전히 기후위기로만 돌리기엔 염치가 없다.
 

Cerro Prieto 댐 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채 드러나 있다. 그 위에 놓인 온도계는 물이 말라버린 댐 바닥의 기온이 섭씨 영상 50도를 훌쩍 넘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 Reforma 뉴스

 
'물 부족'을 둘러싼 반갑지 않은 변화들이 비단 대규모 도시나 산업단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온전히 농업에 기반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마을도 이미 오래 전부터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우리 마을은 건기와 우기가 매우 뚜렷하게 나뉘는 곳이다. 두 계절이 일 년의 절반씩을 차지하기에 우기에 충분한 물을 저장해 둬야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를 견딜 수 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우기의 시작이 점점 늦어진다. 마을 모두의 걱정이다.
  
대략 6월경 비가 내리면 메말랐던 대지가 온통 초록으로 변하고 마른 풀만 먹던 소와 말과 양들이 이제 막 돋아나는 연한 풀을 먹으면서 건기보다 훨씬 많은 우유를 내준다. 그러면 마을 치즈가게들은 넘쳐나는 우유와 치즈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격세일을 시작하는데, 올핸 6월까지도 건기의 막바지가 이어지면서 우유를 내어주는 짐승들과 치즈를 먹어야 하는 마을 사람들이 같이 힘든 시절을 보냈다.

서서히 다가오지만, 분명 두려운 변화다. 마을을 둘러 싼 사탕수수 밭들도 오직 천수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강수량에 따라 작황에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마을 사람들이 비를 '금'에 비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활용수도 마을 공동 관정에서 하루걸러 한 번씩, 그것도 한 번에 약 두 시간 정도 내려주는 물을 받아쓰는데 혹여 올해 비가 적으면 내년 물 사정이 어려워질까 걱정이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늦게 시작된 우기임에도 꾸준히 비가 내려준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세상은 다시 초록으로 돌아왔다. 소들은 살을 찌우며 우유를 내줄 것이고, 사탕수수는 쑥쑥 자랄 것이고, 옥수수는 연하게 영글어 갈 것이다. 비가 곧 생명이고 돈이다.
 

반년 이상 비가 내리지 않는 건기를 지나 우기가 시작되면 이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생기를 얻는다. 말과 소와 양은 매일 신선한 풀을 먹고 풍성한 우유를 내어준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도 우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 림수진

 
이른 아침 길에서 만나는 마을 사람들은 항상 간 밤 내린 비에 대한 감사로 인사를 대신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 비 어땠어요?" 매일 내리는 비지만, 소중하고 자세하게 서로의 감흥을 묻는다. 비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밴 습관적 의례다. 부디, 이 마음의 감사가 오래도록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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