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9 16:46최종 업데이트 22.08.2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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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는 인간을 16개의 유형으로 분류한다. ⓒ 위키커먼스

 

MBTI에 과몰입한 사람들이 있다. 내 주변에도 몇 명쯤 있는데, 얼마 전 그중 한 명과 밥을 먹었다. 그는 요즘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린다면서 기름지지 않고 가벼운 식사를 하자고 했다. 샐러드바에 가서 앉았다. "양배추가 위 건강에 좋다고 하니 양배추를 자주 먹으면 소화불량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더니 그는 자기가 'I' 성향이어서 늘 소심하고 마음속에 맺힌 것이 많아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것이라고 했다. 'I' 성향이라는 게 뭔지 잠시 고민했지만 그러려니 넘어갔다. I 성향은 양배추를 못 먹는 것일까.


식사를 마칠 즈음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를 찾아보려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낮선 동네라 검색을 하지 않으면 더운 날씨에 길바닥을 헤매게 될 것 같으니 목적지를 정하고 움직이자고 했다. 그는 "넌 너무 J라서 그렇게 일일이 다 찾아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난 그저 땀을 남들보다 많이 흘리는 뚱땡이일 뿐인데.

차를 마시면서 그는 계속 소화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그밖에도 최근 거북목 증후군에 시달린다고 했고 면역력이 떨어졌는지 자주 감기에 걸린다고도 했다.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는 건강 이야기로 흘러갔다. 난 어릴 적부터 다니던 한의원에 지금도 다니는데 어릴 때부터 만나 내 몸과 생활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이 내 건강을 챙겨주셔서 참 좋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버튼은 그 다음 나온 그의 말이 눌렀다. "한의학은 사실 미신에 더 가깝지 않나?" I라서 소화불량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J라서 카페를 검색한다고 말하는 너에게 한의학이 미신이라는 소리를 듣다니.

MBTI가 싫어요

MBTI는 미국의 작가 캐서린 브릭스와 그녀의 딸 이사벨 마이어스가 1944년에 함께 만든 행동유형 검사로 인간을 16개의 유형으로 분류한다. 마이어스와 브릭스의 이름을 따서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Type Indicator, MBTI)다. 그러니까 MBTI는 해방도 되기 전인 20세기 중반에 살았던 비전문가들의 경험적 추론으로 만들어진 검사다. 당연히 상담과 치료의 영역은 물론이고 심리학과 정신분석학계 어디에서도 인정받는 이론과 검사가 아니다. 학계의 이론이 아니다보니 만들어진 당시에 비해 발전하거나 보정된 지점도 없다(사실 이론적 보정이 가해지면 MBTI의 거의 유일한 장점인 '간단함'이 사라진다).   
 

캐서린 브릭스와 이사벨 마이어스의 이름을 따서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Type Indicator, MBTI)로 불린다. ⓒ 위키커먼스

 
한국에는 90년대를 즈음하여 들어왔다. 주로 진로상담이나 경영컨설팅 같은 분야에서 사용했다. "너는 이런 사람이니 이런 직업을 갖는 게 좋겠어." "당신의 성격은 이러하니 어떤 경영을 하는 게 좋겠어요". (고등학생 때, 학교의 진로상담실에서 MBTI 검사를 했고 그 검사가 나에게 추천해준 직업은 '간호사'였다. 도대체 내 MBTI는 무엇이었던 걸까.) MBTI는 이후 한국에서 '꽤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인식되는' 검사로 자리 잡았다.(신뢰도가 정말로 높은 것이 아니다, 신뢰도가 높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 즈음의 한국사회는 바빴다. 사회는 조금씩 복잡해졌고 그에 정확히 반비례하여 관계는 파편화됐다. 서로 맞부딪히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서로를 파악하던 '공동체'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사회는 서로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라고, 맞춤의 '서비스'를 하라고 요구했다. 생산과 소비, 판매와 구매 모든 것이 다 다양해지고 파편화됐다. 우리는 예전보다 서로를 더 정확히 알아야 했지만 예전처럼 서로를 알기 위해 노력할 시간이 사라졌다. MBTI는 그 틈새에 자리 잡았다.

"10분만에 당신이 누군지 설명해 줄게"

다른 심리검사들도 많았지만 MBTI만큼 빠르고 간단하진 않았다.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심리검사는 인간의 성격을 유형화하지 않는다. 고작 16개라는 점이 MBTI의 수많은 우스꽝스러움 중 대표적인 것이지만, 유형이 160개여도 인간의 심리를 유형화해 편견을 조장하는 것을 제대로 된 심리학이라고 볼 수 없다.) 쉽고 간편하게 당신과 나의 성격을 검사하고 짝을 맞춰주고 적당한 직업이나 취향이나 당신이 걸릴 질병까지(!) 알려주는 검사라니.

어쩌면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심리 테스트를 해서라도 당신과 나를 알고 싶다'는 것 보다는 '당신과 나를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다'는 것이었을 수 있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취향을 지녔는지, 어떻게 말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성찰하지 않아도 십분 만에 내가 누군지를 말해주는 것이 중요했을 수 있겠다.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지'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결정됐으니 그저 난 그를 따르면 되는 것, 그게 중요했던 것일 수 있다. 당신이 누구인지, 나와 무엇이 다르고 또 무엇이 비슷한지, 우린 어떤 대화를 할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노래를 들을지 일일이 알아가고 관찰하기보다는 당신의 유형을 알고 내가 거기에 맞춰 행동해주는 것, 그것을 배려라고 부르는 것, 그리고 서로의 유형을 '합의'한 우리는 그 합의를 깨지 않기 위해서만 조심하면 되는 것. 그게 중요했던 것일 수 있다.

그렇게 16개의 성격과 16개의 성격이 만나 이뤄지는 관계의 유형은 이제 고작 256개(16의 제곱)이다. 얼마나 간편한가. 이 바쁘고 복잡한 세상을 고작 256개의 관계로 정리할 수 있다니. 또 얼마나 적절한가. 혈액형은 고작 4개라 너무 단순해 보였는데 16개쯤은 돼야 적당히 많은 것들을 다 파악할 수 있어 보이니까.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MBTI는 그저 현상이다

사실 MBTI는 현상이다. 맥락을 거세하고 드러난 표면만을 인식하려는 태도. 규정을 통해 사유를 중단하려는 태도, 더 복잡하고 더 다양한 것들에 대한 이해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태도의 사회가 만들어낸 현상. 그것이 왜 문제냐면, 그런 태도가 우리사회를 더 깊은 오해에 빠트리기 때문이다. 'I라서 소화불량에 걸렸다'고 여기는 오해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심각한 오해.

얼마 전 신림동의 반지하에서 수해로 사망한 일가족에 대한 기사에 "너네가 대통령 잘못 뽑은 탓"이라는 댓글이 달린 것을 봤다. "오세훈이 서울시장이 되자마자 수해가 났다, 역시 오세이돈"이라고 하는 댓글도 있었다. 마치 I이기 때문에 소화불량에 걸렸다고 하는 말처럼 모든 것을 그저 어떤 규정으로만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

화제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직장에서의 성차별 문제를 다루자 '페미 묻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드라마의 작가가 청소년 학습공간인 '하자센터' 출신임을 들먹이면서 '좌빨 페미'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러면서 극중 인물의 주소가 '한남동'인 것 역시 작가가 페미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들이민다. ('한남'은 한국남성의 준말이다. 주로 여성혐오적 태도를 보이는 한국남성에 대한 멸칭으로 사용된다.) '하자센터 나왔으면 좌빨 페미'라는 규정에 대한 합의를 강요하는 것일까. 넌 J라서 카페도 일일이 검색해서 간다고 말하는 것처럼.  
 

16개의 성격과 16개의 성격이 만나 이뤄지는 관계의 유형은 이제 고작 256개(16의 제곱)이다. 이 바쁘고 복잡한 세상을 고작 256개의 관계로 정리할 수 있다니. ⓒ 위키커먼스

 
MBTI,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사람을 유형화하고 규정하고 단정 짓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지만 동시에 당연히도 편리하고 만족스러운 작업이다. 사실 언제나 일일이 타인을 관찰하고 자기를 성찰하고 관계의 작용을 고민하고 오류를 수정하면서 살아가는 일이란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가. 이렇게 바쁜 시절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렇게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일일이 맥락을 파악하고 사유하는 것은 또 얼마나 답답하고 어려운 일일까. 당장 내일 회사에서 받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그럴 때 MBTI식의 사고는 매우 유용하다. 모든 것을 규정해주고 그 틀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 '규정'은 내가 사고를 멈춰도 되는 근거가 돼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MBTI식의 사고는 위로일 수도 있다. 사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분노와 증오와 혐오의 대상을 찍어주는, 혹은 사랑하거나 집착할 대상을 꼽아주는 어떤 규정이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이게 다 페미년들 때문이지', '한국사람이라면 일단 토트넘 응원합시다' 같은 것. 화를 내고 사랑할 대상이 명확하다면 그 대상을 찾느라, 정말 그게 내 분노와 애정의 방향이 맞는지 또 고뇌하고 고심하느라 고통 받을 시간을 단축시켜 줄 테니까. MBTI는 정말이지 이 고단하고 복잡한 세상에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단순화되고 수동적이지만 편리하고 편안한 사고의 전제는 말했듯 '합의'다. 우리가 서로를 단순하게, 우리가 함께 사는 세계를 납작하게 인식하는 것을 서로가 용인해주자는 합의. 생각해 볼 것은 그 지점이다. 그 납작한 세계로의 이행에 대한 합의가 누르는 것은 무엇일까. 켜켜이 쌓이고 쌓은 사연과 관계, 그렇게 만들어진 맥락과 역사 같은 것들을 다 납작하게 눌러버린 채 그저 합의된 어떤 규정만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편리한 태도가 만들어낼 것은 무엇일까.

사실 싫은 것은 MBTI가 아니다. MBTI야 단순하고 편리한 도구인데. 오히려 싫은 것은 이 복잡하고 어렵고 난해한 사람과 세계를 끊임없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쩌나, 싫어도 살아야 하는데. 납작하게 눌리지 않으려면, 내가 고작 16분의 1이 아니라 오롯이 고유한 나로 있으려면, 당신과 나의 관계가 고작 256분의 1이 아니라 매순간 변화하고 발전하는 관계로 남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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