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2 16:52최종 업데이트 22.09.02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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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님이는 마치 행복을 인간으로 형상화해놓은 것 같다. ⓒ 게티이미지뱅크


"누군가의 아기를 갖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화가 났다. 그 사람의 아기는 그 사람이 가지라고 하라." - 에리카 종, <비행공포>

"고모는 남자예요?" 옷이며 장난감, 이불과 식기까지 핑크색으로 통일하고 공주가 되는 게 소원인 조카가 물었다. 대답이 궁금해서 건넨 질문이 아니다. 일전에도 몇 번이나 답을 알려주었으니까. 나는 아이를 넌지시 보다가 작정하고 물었다. 


"너 왜 자꾸 고모더러 남자냐고 물어?"
"음…. 모습이 남자 같아요."
"그럼 어떤 모습이 여자 같은데?"
"저요!"
"너?"
"예쁜 치마를 엄청 좋아하고 음, 드레스를 좋아하고 음, 짧은 치마도 좋아해요!"


다섯 살 아이와 대화할 때는 인내심을 넉넉하게 준비해야 한다. 나는 한 번 더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세상에 여러 모습의 여자가 있고 고모처럼 머리가 짧고 바지만 입는 여자도 있단다. 아이의 표정으로 봐서는 두어 달 내로 똑같은 질문을 또 할 것 같다. 

이 귀여운 생명체의 이름은 양해님(가명)이다. 어느새 여자와 남자, 공주와 왕자를 알고 숫자와 한글을 읽지만 나에게는 기록적인 한파와 함께 세상에 왔던 아기일 뿐이다. 해님이는 꼭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장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처럼 쌍꺼풀 없이 커다란 눈, 바람에 날리는 부드러운 머리칼을 지녔고 다부진 몸은 고고학자가 쓸 법한 모자를 쓰고 씩씩하게 길을 나설 것 같이 생겼다.

먹는 걸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는데 특히 내가 만든 파스타를 싹싹 먹어 치우고 닭고기는 연골 부위까지 야무지게 씹어먹는다. 마치 행복을 인간으로 형상화해놓은 것 같은 해님이를 볼 때 내 마음은 뜨거워지고 사랑이 차오른다. 

슬프게도 이 사랑은 외사랑이다. 해님이에게는 가장 절대적인 존재인 엄마가 있고 아빠, 오빠, 유치원 선생님과 친구들, 사촌들이 있다. 나는 고작 혼자 살고 볼 때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차림새로 나타나서 파스타를 만들어주는 사람일 뿐이다. 만날 때마다 플라스틱 귀걸이와 리본을 걸어줘야 겨우 여자처럼 보이는.

온기

우리의 애정 불균형을 떠올리기만 해도 박탈감이 드는 걸 보면 나는 정말 해님이를 사랑하나 보다. 왜? 나에게 아이가 없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라서? 제인 구달이 침팬지의 사회성 실험에서 얻은 결과에 따르면 새끼가 없는 암컷 침팬지는 새끼를 키우는 동료의 주변을 빙빙 돈다. 그러다가 어미를 대신해서 새끼를 안아보고 돌볼 기회가 생기면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고 한다. 내가 바로 그 꼴이 아닌가?

만약 내가 남자였더라도 그 귀여운 얼굴이 너무 보고 싶어서 사진과 영상을 꺼내 보고 잘 익은 수박을 먹기 좋게 잘라서 집으로 가져다주는 그런 수고를 자처했을까. 해님이가 알면 놀랄 정도로 나의 내면은 여자의 성향이라고 규정된 것으로 가득하다. 

우선 나는 냉정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냉정한 여자를 본 적이 없다. 나를 포함해서 내가 아는 여자들은 전부, 누군가에 쏟아야 할 온기를 어쩌지 못해서 곤란해한다. 그 대상이 남자나 아이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함께 사는 동물을 보면 털에 윤이 나도록(그래서 나도 개나 고양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먹이고 사랑으로 돌본다. 식물도 종류를 불문하고 어찌나 크고 탐스럽게 키워내는지! 그러므로 나는 세상이 팬데믹이나 기후 위기 때문에 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자들 마음의 온기가 완전히 꺼지는 날, 그날이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다. 

심지어 몇 달 전에 있었던 페미니즘 학회에서도 여성들이 발산하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이 주장하는 공정성 담론과 다양한 젠더 이슈에 관해서 토론하는 자리에 발표자로 참여했는데 그 현장은 기대와 달리 너무 따뜻했다.

갈수록 경쟁만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이탈된 구성원들은 어떻게 돌봐야 하느냐는 한 발표자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돌봄 따위는 필요하지 않으니 당장에 때려치워야 한다는 게 아니다. 다만 페미니즘을 논하는 자리에서도 왜 하필 돌봄인가? (나의 견해와 다르지만 페미니스트야말로 돌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젊은 남자들이 기득권을 꿰차고도 '능력에 따른 차별은 정당하다'고 외치는 모습과 사뭇 대조적이다. 나는 주어진 특권도 모자라서 더 갖지 못해서 안달인 일부 남자들에 화가 난 페미니스트들이 모여서 이들에게 어떻게 대응할지 공모라도 꾸밀 줄 알았다.  

딜레마
 

마음에 남아도는 이 온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 게티뱅크이미지


온기, 우리의 마음에 남아도는 이 온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온기를 전량 나에게 소비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좋아 보이는, 맛있는, 편안한 것은 전부 나에게, 과도한 감정이입도 금지. 관계는 개나 주라지, 오직 나에게만 봉사했다.

노력의 결과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도 그러한 노력이 '나에게 아무도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전량 소진되지 못한 온기가 어딘가 남아서 그 몫을 차지할 대상의 자리는 여전히 비어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돌봄은 싫다. 누군가 집에서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오직 나를 돌보고 더 크게 키워보고 싶다. 가장 순도 높은 사랑, 무한정의 기회를 나에게 주고 온전하게 믿어주고 싶다. 아마도 나는 누군가 필요하다는 사실과 견고한 자기애의 딜레마, 그 간격을 영원히 좁히지 못할 것이다.

해님아, 고모는 어려서 충분하지 못했던 사랑을 어떻게든 벌충해볼 생각뿐이었고 자라서는 그걸 줄만 한 남자가 어딘가에 있다고 믿었어. 남자가 생기면 가족을 나 몰라라 하고 남자와 헤어지면 가족에게 돌아갔지. 남자와 가족 사이를 탁구공처럼 오가다가 이제는 영원히 태어나지 않을 아이를 너한테서 유추하는 걸까? 아무튼 너를 제일 사랑해. 고모가 해님이를 키울까?

해님이는 변덕스러운 어른의 결정으로 인해 생뚱하게 고모 손에 길러질까 봐 두려운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싫어요!'라고 힘주어 대답했다.

"하긴, 고모도 너 못 키워."
"설쳐서?"
"아니, 고모는 안 설치는 애도 못 키워."
"남편이 없어서?"
"그게 아니라, 그냥 고모는 아무도 못 키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너의 표정.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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