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9 10:55최종 업데이트 22.09.1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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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유럽은 건물 난방에 가스 보일러(가령 영국의 경우 가정의 86%가 가스 보일러 사용)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가스 가격이 상승하면 연료 연동제로 인해 전기 가격의 상승도 불가피하게 된다.

영국의 에너지규제기관(OFGEM)은 전력 시장이 민간에 개방된 이후 전기의 소비자 가격의 급작스런 상승이 없도록 규제하는 곳인데 이번에 에너지 비용 상한선을 연간 700 파운드로 인상했다. 가스 가격이 상승하는 것이 멈추지 않을 경우 10월에 다시 2800 파운드까지 인상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고 있다.


이는 겨울철 난방비로 한 달에 백 만 원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현재 에너지 빈곤 가구 수가 약 650만 가구인데 에너지 가격 인상 이후엔 1200만 가구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재난적인 에너지 비용 상승은 유럽 각국의 경제에도 인플레이션 압력을 크게 주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률을 맥주 한 잔 값에 적용한다면 500cc 한 잔에 4만 원이 될 수도 있을 정도다.

경제적으로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 유럽의 각국 정부는 다양한 방안을 준비 중에 있다. 프랑스는 독일에 자신들의 가스를 공급하는 방안을 냈다. 최근 취임한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는 1호 정책으로 가계 에너지 요금의 동결을 추진한다. 당장 영국의 에너지 요금 상한이 다음 달 80% 인상될 예정인 가운데 요금을 현 수준으로 묶어 가계 부담을 덜어준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143조 원의 국고(영국 국내 총생산 GDP의 5%에 해당)가 투입되고 이 정부 차입금은 10~15년에 걸쳐 세금으로 회수할 계획을 내놓고 있다. 이런 재난적 에너지 위기의 원인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우크라이나 군인과 소방관들이 14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파괴된 건물을 수색하고 있다. 2022.3.14 ⓒ AP=연합뉴스

 
전쟁 이전부터 오르던 가스 가격

최근 러시아의 가스 공급 회사인 가즈프롬이 유럽에 가스 공급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천연가스 가격은 국제거래가 생긴 이후 역대 최고치를 갱신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의 가스 가격 상승은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정치 무기화한 이유 때문인 것으로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 주도로 서구 국가들이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했고 이에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고 에너지를 무기화 한 푸틴의 러시아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논리가 된다.

만일 푸틴만이 이 모든 일의 원인이라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패퇴시키거나 러시아와 평화협정을 맺어 전쟁을 종식하고 서구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풀린다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말로 그럴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날(2022년 2월 24일) 이전의 유럽의 가스 가격 상황을 살펴보자.

아래 [그림 1]을 보면 지난 5년간 유럽 천연가스 도매 가격의 추이를 볼 수 있다. 세 번의 가격 피크가 있었는데 처음의 것은 2021년 12월 22일에 나타난 것으로 1년 전 대비 가격이 10배로 치솟았다. 이때의 가격 급등 현상은 에너지 역사에서 일종의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으로 충격적인 사건으로 여긴다.

2022년 1월 28일 유럽안보연구소가 '유럽 에너지 위기의 수수께끼(Europe's Energy Criris Conundrum)'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 가스 가격의 급등은 1) 2020년 말부터의 혹한기 겨울 2) 코로나19 격리 해제 후 빠른 소비 증가 3) 2021년 여름 바람이 적게 불면서 풍력 발전량이 줄고 이를 보조한 가스 발전 운전량 증가로 가스 비축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 이전인 2021년 10월 31일 세계경제 포럼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칼럼이 게재된 바있다(5 things you should know about Europe's energy crisis, https://www.weforum.org/agenda/2021/10/5-facts-europe-energy-crisis/).
 

[그림1] 유럽의 천연가스 5년간 가격 추이 (출처: Trading economics EU Natural gas, https://tradingeconomics.com/commodity/eu-natural-gas) ⓒ EU Natural gas

 
 

에너지 공급 경색의 요소들: 유럽 에너지 위기의 수수께끼 (출처: EUROPE'S ENERGY CRISIS CONUNDRUM-Origins, impact and way forward, https://www.iss.europa.eu/content/europes-energy-crisis-conundrum) ⓒ www.iss.europa.eu

 
그동안 천연가스는 에너지 분야에서 '넘버3' 같은 존재였다. 석탄의 시대, 석유의 시대를 거치면서 천연가스는 보조 에너지원으로 그 역할을 해왔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2021년 이전까지 오랜 기간 낮은 가격으로 안정적으로 공급되어 왔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그동안 주로 건물 난방용으로 사용되면서 각국 국민의 겨울을 충실히 책임지는 연료였다.

재생에너지가 친환경 에너지 공급원의 주인공으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천연가스는 이 주인공의 부족한 부문인 공급의 간헐성 등을 채워줄 조연으로 캐스팅 되었다. 그러나 불규칙한 기후조건(풍속의 저하), 석탄발전소 폐쇄, 원자력 발전의 패쇄 및 건설 지연 등으로 이 가스 발전은 오히려 주 발전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예를 들면 2022년 9월 12일 오전 1시(런던 시각) 현재 영국의 가스 발전은 전체 발전의 48.5%를 담당한다(출처: 영국 National Grid 실시간 발전 현황, https://grid.iamkate.com). 같은 시간 풍력 발전은 42.9%인데 영국은 유럽에서도 풍력 자원이 가장 풍부한 지역으로 해상과 육상 풍력 발전소 설치 용량이 큰 국가 중 하나다. 풍력 발전량이 증가하면 할수록 비례하여 가스 발전의 공급량은 증가해 왔다.
 

영국의 연료별 발전 비율 추이(2009-2019년) (출처: Dr. Grant Wison, University of Birmingham, https://theconversation.com/britains-electricity-since-2010-wind-surges-to-second-place-coal-collapses-and-fossil-fuel-use-nearly-halves-129346) ⓒ Dr. Grant Wison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천연가스 연료 전력 발전 비율은 1990년대 10%대에서 2020년 29.5%로 성장했다. 석탄 발전을 대체할 재생에너지 발전에 투자가 진행된 후 실제 발전 비율에서 넘버 3로 인식되었던 가스 발전이 영국에서 넘버1이 되었고 OECD 국가 평균으로도 유사한 추이가 나타난다. 재생에너지의 설치 용량이 성장하는 것은 사실이며 그와 함께 발전 비율이 함께 증가하는 것은 천연가스 발전이다.

전략적 에너지 자원으로 등극

풍력발전 설치 용량 증가에 따라 가스 발전량도 늘었는데 가스발전이 애초 풍력발전의 보조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로부터 싸고 안정적으로 가스를 받는 인프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가스는 유럽 천연가스 수입의 41%를 차지하면서 그린 에너지 인프라로서 지배적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유럽은 여름의 저풍속 기후 조건, 코로나 이후의 수요 증가, 가스 저장고의 낮은 비축률 등이 겹치면서 러시아 가스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유럽은 다양한 공급선을 구축하지 못한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고 스스로 그런 상황에 불안해 하고 있었다.

러시아 가스 공급 회사 가즈프롬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경제제재에도 정상적으로 거래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유럽은 거의 독점적 공급자로서 러시아의 가스 의존성에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유럽의 러시아 가스 의존성과 가스 가격 폭등은 러시아에 유리한 경제적 정치적 환경을 만들어줬다. 그래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데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가스 가격의 상승이 전쟁을 일으키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 된 측면과 전쟁으로 인해 가스 가격이 더 상승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 측면이 있다. 분명한 것은 천연가스는 글로벌 한 범위에서 석유와 같은 전략적 에너지 자원으로 등극했다는 것이다. 유럽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 정책에서 주력 에너지원이 천연가스가 됐다. 따라서 현재의 천연가스 공급 경색 문제는 전쟁 등에 의한 예외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유럽 에너지 인프라 상의 구조 문제가 드러난 것으로 봐야 한다.

한국의 경우 지난 5년간 진행된 에너지 전환 정책에서 탈원전이라는 깃발을 올렸으나 재생에너지보다는 가스 발전 및 천연가스 개질형 수소연료전지 발전 산업이 성장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전기위원회에 의하면 2021년 6월 기준 사업을 개시한 3MW 초과 연료전지 사업자는 27개소이며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후 사업을 준비 중인 나머지 사업자는 5208MW 규모에 총 169개소였다.

천연가스 잠재적 수요는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게다가 한국의 겨울은 유럽보다 더욱 춥다. 이러한 조건에서 한국은 어떠한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편(http://omn.kr/20r92)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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