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23 18:50최종 업데이트 22.10.2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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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의 인공 섬 데지마에 자리 잡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 위키미디어 공용


일본에 커피를 전한 것은 나가사키의 인공 섬 데지마에 1638년부터 자리 잡고 유럽 및 일본과의 무역을 독점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였다. 이들과의 무역에 관여했던 일본인 몇 명이 커피를 마셔보았다는 기록을 남겼지만 대부분 마시기가 매우 역겨웠다는 기록이었다. 차 문화에 익숙한 일본인들에게 초기의 커피는 매력적인 음료가 아니었다.

처음엔 역겨운 맛

그래서였을까. 일본에 커피하우스를 최초로 개설한 것은 대만사람이었다. 반청복명, 즉 청나라에 반대하고 명나라로의 회귀를 주장한 정성공(鄭成功)의 후손들이 일본으로 이주하였고, 주로 나가사키에서 통역관과 외교관으로 일했다. 그중 정영경(Tei Eikei)이라는 인물은 미국에서 유학한 후 런던과 파리에서 생활하며 현지 문화에 빠졌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가지고 배운 것이 유럽의 카페문화였다.  


테이 에이케이는 1888년에 도쿄 긴자의 우에노에 일본 최초의 커피하우스(깃사텐) 카히차칸을 열었다. 일본에서 유럽식 카페의 재현을 시도했지만 4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자금난이 드러난 배경이었지만, 부드러운 차 문화에 익숙한 일본인들에게 여전히 낯설었던 커피 맛이 더 큰 문제였다. 

커피의 한자 이름이 '可否茶'로 표기된 것이 말해주듯이, 당시 일본인들에게 커피 맛은 괜찮은지(가) 아닌지(부), 뭔지 모를 애매한 차였다. 커피 수입이 시작됐지만 1912년까지 년 수입양이 100톤을 넘지 못했다. 커피 소비 증가가 어려웠던 것은 높은 가격도 배경이었다. 1877년 커피 1킬로그램 가격은 0.326엔이었는데 이것은 쌀 75킬로그램에 해당하는 가격이었다.

일본에서 커피의 유행이 시작된 것은 카히차칸 이후 거의 20년 쯤 지난 시점이었다. 브라질 커피의 대량 유입이 계기였다. 20세기 초에 벌어진 브라질 커피 생산의 폭발적 증가에 따라 가격이 폭락했다. 일본 커피 산업의 개척자 미즈노 류가 등장하였다. 브라질 정부에 일본으로의 커피 수출, 그리고 일본인의 브라질 커피 농장 이민을 제안하였고 이것이 실현됐다. 브라질 정부는 미즈노 류에게 1909년부터 3년간 5백 톤 가량의 커피를 무료로 제공했다. 이것이 일본의 커피 대중화를 가져왔고,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때 시작된 커피의 유행과 깃사텐의 증가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일본 최초의 카페가 등장한 것이 1911년 즈음이었다. 미즈노 류의 카페 빠울리스타가 도쿄 긴자에 개업했고, 브라질로부터의 안정적인 생두 유입으로 몇 개 도시에 분점을 열기까지 하였다. 상하이에도 열었다. 일본인들이 세계 최초의 프랜차이즈 카페라고 자랑하는 역사다. 

20년 만에 커피붐
 

우에시마 커피 ⓒ 위키미디어 공용


1911년에는 여급을 둔 일본식 카페, 카페라이온이 도쿄에 등장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1912~1926)의 낭만적 분위기로 인해 일본의 커피 수입 규모는 10배 성장을 보였다. 일본 커피 산업의 씨앗을 뿌린 키(Key)커피가 등장한 것이 이 즈음인 1920년이었다. 1933년에는 일본 커피의 아버지라 불리는 타다오 우에시마가 고베에 우에시마커피회사(UCC)를 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의 커피 유행은 관동대지진, 경제대공황, 그리고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 앞에서 휘청거렸다. 반영 반미운동 속에 커피 수입은 금지됐다. 전쟁 후에 커피 수입은 재개되었지만 커피는 상류계급 사이에서 소비되는 사치품이었을 뿐이다. 1950년대 말까지 이런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물론 이런 침체 속에서도 40년 숙성 커피를 제공하는 특이한 깃사텐을 창업한 세키쿠치 이치로 같은 인물도 있었다. 1948년에 창업한 람부르 카페(Café de L'Ambre)다. 이후 지속되어온 일본의 커피문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일본의 커피 소비 확대를 가져온 결정적 계기는 1969년 UCC의 캔커피 출품이었다. UCC에 이어 선토리의 보스(Boss), 코카콜라의 조지아(Georgia), 네슬레의 네스카페, 일본담배의 루츠(Roots)가 등장하여 커피붐을 조성했다. 1975년엔 일본인들의 커피 소비가 녹차 소비를 추월했다. 음식 없이 커피만을 취급하는 전문 카페도 이즈음 나타났다. 1980년에 출범한 도토루(Doutor)는 일본 사회 테이크아웃 커피문화 확산에 기여했다. 1996년 스타벅스 해외 1호점이 도쿄에 문을 열었다.

일본의 커피 역사와 문화는 우리보다 깊은 것이 사실이다. 스타벅스 중심의 제2의 물결 속에서도 커피의 맛과 커피 생산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세계적인 흐름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히데타카 하야시와 켄타로 마루야마를 들 수 있다. 하야시는 최고급 커피를 생산하려는 농민들의 노력을 지원하기 위한 취지로 1999년에 탄생한 컵오브엑설런스(Cup of Excellence, COE)를 기획하고, 심사기준을 만든 원년 멤버 6명 중의 한 명이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일본 특유의 깃사텐 문화와 결합한 일본다운 제3의 물결을 개척하고 있다.

도쿄의 마루야마(Maruyama), 람부르(L'Ambre), 호리구치(Horiguchi), 소조(Shozo), 오니버스(Onibus),  키츠네(Kitsuné), 사이드워크스탠드(Sidewalk Stand), 로스터리 바이 노지(The Roastery by Nozy), 카마쿠라의 단델리온 초콜릿(Dandelion Chocolate), 오사카의 멜 커피 로스터스(Mel Coffee Roasters), 히로시마의 옵스큐라 커피 로스터스(Obscura Coffee Roasters), 쿄토의 쿠라수(Kurasu), 카이카토(Kaikato), 위켄더스(Weekenders), %, 아라비카(Arabica), 클램프 커피 사라사(Clamp Coffee Sarasa)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카페와 로스터들이 자신들만의 맛과 문화를 만들고 있다. 일본 도쿄에는 2015년에 미국의 제3의 물결 리더 중 하나인 블루보틀이, 그리고 최근 교토에는 스텀프타운이 진출했다.

일본 커피의 경쟁력
 

도쿄 진보초에 있는 깃사텐 ⓒ 위키미디어 공용


지금의 일본 커피 문화는 사실 쉽게 규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고 역동적이다. 일본 사회가 최근 20~30년 동안 겪고 있는 침체나 답답함이 적어도 커피 분야에는 스며들지 않은 듯하다. 

첫째, 일본 커피 시장은 매우 크고 복잡하다. 커피 소비 세계 3위 국가인 일본은 개별 카페들이 지닌 특징이 일본 전체의 특징보다 강하다. 일본 커피문화의 발전 배경이다.

둘째, 일본의 커피 전문점에서 제공되는 커피 수준은 세계 최고라고 할 만하다. COE나 베스트 오브 파나마(Best of Panama) 등 세계적인 원두 경쟁 행사에서 최고상을 받은 생두를 거침없이 구입하는 것은 일본의 커피로스터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구입한 커피원두가 지닌 특성을 고스란히 한 잔의 커피에 담기 위해 노력하는 개별 카페들이 즐비하다. 미국 제3의 물결 커피의 선두주자 블루보틀 창업자 프리맨이 일본 깃사텐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셋째, 드립커피를 제공하는 전통적 깃사텐과 에스프레소 중심의 현대적인 커피전문점이 공존한다. 즉, 전통적 커피 제조 방식을 고집하는 업소와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따라가려는 발 빠른 업소들이 함께 성장한다. 여러 해 숙성시킨 생두를 이용하여 커피를 내려주는 깃사텐 람브르가 있는 반면, 라떼가 유명한 교토의 아라비카도 있다.

넷째, 젊은 층은 편리함이나 낮은 가격 때문에 캔커피나 인스턴트커피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중장년층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은 고급커피나 브루잉커피를 선호하는 편이다. 

다섯째, 일본의 많은 커피 전문점에서는 음식 제공이 1차적이고 커피 판매가 2차적인 깃사텐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아침에 간단한 음식과 커피를 세트로 제공하는 나고야식 '모닝그' 메뉴의 유행이 대표적이다.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하는 '커피 온리' 카페가 많지만 일본의 전통은 음식이 먼저인 깃사텐 문화이고 이는 여전히 강하다. 

여섯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홈카페의 성장, 그리고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사용하는 로스터리 카페의 증가도 새로운 문화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카페는 뉴스 보고 공부하는 곳인 반면, 일본의 카페는 먹고 마시는 곳이라는 작은 차이는 있지만, 크게 보면 두 나라 커피 문화는 유사한 측면이 많다. 로스터리카페의 증가, 홈카페문화의 성장, 드립커피와 에스프레소의 공존, 그리고 열정적 바리스타들에 의한 창의적 메뉴의 개발 등이다. 아마도 우리가 배웠을 것이다. 유능한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다. 그 상대가 어린이든 원수이든. 

- 유튜브 채널 '커피히스토리 ' 주인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한국가배사. 푸른역사.
심재범(2019). 교토커피. 디자인이음.
심재범(2017). 동경커피. 디자인이음.
Tasmin Grant(2021). Exploring Japanese Coffee Shop culture. Perpect Daily Grind. Sept. 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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