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6 13:38최종 업데이트 22.11.1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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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SF를 친밀하게 느끼도록, 은밀하게 접근해 진입장벽을 슬그머니 무너뜨립니다. 이를 위해 SF 읽는 모습을 생활밀착형으로 전달합니다. [편집자말]
동물권을 다루는 SF가 무엇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동물권은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도 모종의 권리가 존재하므로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예전에는 동물권 이야기를 하면 사람이나 잘 신경 쓰라는 소리를 들었다. 세상에 불쌍하고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사람부터 챙겨야 하지 않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동물을 외면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어떤 동물은 생명이 있을 뿐 아니라 분명 고통을 느낀다. 부당한 고통이 잘못이라는 윤리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방향으로 확대되어 왔고, 현재는 동물도 포함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기존의 보편인권의 법리는 동물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인권은 인간중심적 개념이다. 국내법에서 동물은 기본적으로 물건으로 취급되었다. 타인이 '소유' 하는 동물을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경우 동물보호법 위반과 함께 형법상 재물손괴죄가 된다. 하지만 자신의 동물에 관해서는 손괴죄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나마 동물보호법에서 규정하는 방법으로 동물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을 경우 동물보호법 위반이 적용된다.

본래 동물보호법은 동물학대에 단순한 관점을 취하다가 차츰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왔다. 생명과 고통이라는 점을 고려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 동물 해부실습의 금지' 규정은 2018년에 생겼다. 개구리 해부실습은 이제 공식적으로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행정적인 부분에 관해서도 조금씩 항목이 늘었다. 그러다 2022년에 이르러 동물보호법은 아예 전부개정되었다. 처벌규정 포함 47조짜리던 규정이 100조로 대폭 늘어났다. 반려동물만이 아니라 유기동물, 봉사동물 등을 정의하고, 동물보호센터나 반려동물 영업에 관해 세세하게 규정했다.

이제는 민사법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민사집행법에 따라 재산을 압류할 때 반려동물을 제외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재산'이 아니라 '반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방향이다.

'동물권 SF' 듣고 떠오른 소설
 

책 <작은 친구들의 행성> 표지 사진 ⓒ 폴라북스

 
동물권을 다루는 SF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소설은 <작은 친구들의 행성>이었다. SF 소설에서 상정하는 동물은 현실보다 조금 다양하다. 혹은 조금 미래적이다. 존 스칼지의 이 소설에는 외계동물에 관한 법과 판례가 등장한다.

주인공인 잭 할로웨이는 어느 개척행성에서 광산 탐사 및 채굴에 종사하던 중, 털이 보송보송하고 마치 고양이 같은 작은 생물을 만난다. 할로웨이는 이들에게 '보송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아빠 보송이, 얼룩이 보송이, 아가 보송이 등이다.

보송이 가족은 할로웨이가 휘말리는 재판의 주요 쟁점이 된다. 재판이 벌어지는 표면적인 이유는 보송이 살해 사건이다. 어느 악당이 할로웨이의 집에 침입해 보송이를 살해하고 불을 질렀다. 먼저 문제되는 죄목은 방화와 손괴다. 그러나 사건의 배경은 할로웨이가 발견한 태양석 광산이다. 어림잡아 보아도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태양석 광산은 할로웨이를 단숨에 요주의 인물로 만든다.

원래대로라면 태양석 광산은 그 개척행성을 독점적으로 개발할 권리를 지닌 대기업 자라투스트라의 소유가 되어야 했다. 할로웨이의 몫은 기껏해야 1%의 수수료였다. 그런데 할로웨이는 광산을 발견하기 직전 계약을 해지당한다.

기막힌 타이밍 덕분에 할로웨이는 일시적으로 독립탐사자가 된 상태였고, 광산은 법률상 기업이 아니라 발견자인 그의 소유가 된다. 그리고 물론 자라투스트라 기업은 다방면으로 그에게 압력을 가한다. 보송이가 죽는 일은 할로웨이에게 결정타가 된다.

다만 소설은 죽음을 다루는 순간을 제외하면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로 흐른다. 할로웨이는 전형적인 트릭스터형 주인공이다. 머리 좋고, 유능하고, 장난을 좋아하고, 질서에서 벗어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이고 내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하고 속이는 사람"이지만, 독자가 매력을 느낄 만큼 흥미로운 일을 한다.

더군다나 주변 인물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들은 예, 아니오로 말을 꺼내는 법이 거의 없다. 대신 재치 있는 답변으로 유창하게 응수한다.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대화는 맞상대가 있어야 이어진다. 등장인물이 현란하게 주고받는 상호작용은 웃긴 정도를 넘어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할로웨이의 언변은 그가 뛰어난 변호사 출신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그는 비록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긴 했지만 그의 항변대로 '법을 몰라서'는 아니었다. 태양석 광산과 보송이 문제는 결국 재판으로 수렴한다. 이 소설은 SF판 법정 드라마다. 증거와 변론으로 반전을 거듭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인간적인 바닥이 드러난다.

인간과 인권을 넘어서서 

이러한 이야기는 크게 보면 미스터리 장르에 속한다. 조금씩 단서가 등장하고, 하나씩 비밀이 풀리고, 이를 모두 설명하는 논리가 나오고 최종적으로 범인을 향한 선고가 내려진다. 탐정의 역할은 주로 변호사가 맡는다. 할로웨이는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할 단서를 모으고 사건의 진상을 추리한다. 다만 그의 무대가 법정이고 도구가 법률이라는 점이 독특할 뿐이다.

더군다나 소설은 SF라는 점에서 변칙적인 규칙을 적용한다. 배경이 되는 개척행성에는 판사가 하나뿐이다. 자라투스트라 기업이 최대한 법의 간섭을 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의 재판에는 당사자가 증거를 미리 제출할 필요가 없다. 이는 서사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가 어디로 흐를지 예측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할로웨이는 자신의 패를 하나하나 공개하며 상대방을 함정으로 유도한다. 그는 "모두가 자기들이 왜 지금 그 일을 하는지 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서 사실은 내가 원하는 일을 하도록 줄을 당길 수 있는 사람"답게 행동한다.

고전 미스터리에서 탐정은 사건을 해설하기 위해 조수 혹은 청중을 필요로 했다면, 변호사는 의뢰인과 상대방과 증인과 판사를 상대로 줄다리기를 한다. 덕분에 <작은 친구들의 행성>의 해결편은 느리고 짜릿하게 진행된다.

소설의 최고 반전은 보송이의 정체다. 아빠 보송이는 고통을 느낄 뿐 아니라 이를 호소할 줄 안다. 덕분에 재판은 크게 뒤집힌다. 사실 동물권 논의에서는 조금 반칙에 해당한다. 직접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더는 '말 못 하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은 결국 인간과 다른 생명체에게까지 윤리와 존중의 범위를 확대한다는 데 중점을 둔다. 인간보다 무력하고 취약한, 인간에게 이용당하거나 사랑받는 생명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대하는 동물들이 말을 하지 않을 뿐 고통을 느낄 줄 안다는 점, 인간과 같은 생명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작은 친구들의 행성

존 스칼지 (지은이), 이수현 (옮긴이), 폴라북스(현대문학)(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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