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1 15:34최종 업데이트 22.11.1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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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9일 교육부가 교육 방향과 교과서 서술에 영향을 줄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을 입법예고했다. 이달 29일까지 국민 의견 수렴 이후 국가교육위원회 심의·의결과 교육부 장관 확정·고시를 거치게 될 교육과정 개정안을 예고한 것이다.

이번 입법예고에서는 한국 현대사 교육 방침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꿔놓도록 했다.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국민적 우려는 물론이고 교육과정 연구진의 의견마저 묵살한 채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집어넣은 것이다.


입법예고된 '중학교 교육과정 시안'의 역사 과목 부분은 '근·현대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대목에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민주화 양상을 포함하여 다양한 주체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사회 전반에 걸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정착 과정과 과제를 탐구하는 데 초점을 둔다"라는 방침을 제시했다.

함께 입법예고된 '고등학교 교육과정 시안'의 한국사 과목 부분은 '대한민국의 발전'이라는 대목에서 "냉전체제가 한반도 정세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고,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을 탐색한다", "6월 민주항쟁 이후 각 분야에서 전개된 민주화에 기반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정착되고 시민운동이 성장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라는 지침을 내놓았다.

'민주'를 '자유민주'로 수정한 이 조치를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강행했다는 점은 교육과정 연구진의 반발에서도 나타난다. 역사 과목 교육과정 개발에 참여한 연구진은 9일 성명을 통해 "교육부는 연구진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수정한 행정예고안을 철회하라"라고 항의했다. 연구진 동의도 없이 '자유민주'를 끼워넣었던 것이다.

교육부는 연구진뿐 아니라 교육부 기구인 교육과정심의회 내부 이견도 묵살했다. 반대 의견이 제기됐는데도, 심의회 표결 없이 입법예고를 강행한 것이다.

말뜻과 관계없이, 우리 사회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냉전세력·독재세력·재벌세력의 이익을 옹호하고 이들의 사회 지배를 합리화하는 데 악용됐다. 이 세력은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한다는 미명 하에 평화운동·민주화운동·노동운동을 탄압했다.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은 그 같은 현실을 도외시한 채 엉뚱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반대 개념이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라고 말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면 이런 체제가 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엉뚱한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를 거론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세력은 거의 없다. 이런 이념이 사회적 의제가 되지도 못했고, 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세력화를 이루지도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민민주·사회민주에 대항하고자 국가적 역량을 동원하고 학교 교육을 개편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 이는 냉전세력·독재세력·재벌세력을 옹호하는 정치적 구체제를 온존시키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논리적 허술함이 곳곳에 산재

이번에 입법예고된 교육과정 시안을 살펴보면, 윤석열 정권이 '자유민주' 표현을 성급하게 넣다 보니 논리를 매끄럽게 정비하지 못한 대목들이 발견된다. 정치적 의도에 매몰돼 합리적 의견수렴도 없이 강행하다 보니 논리적 허술함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우선, 한국 현대사와 관련해 '민주'를 '자유민주'로 바꾸는 데 신경을 쓰다 보니, 한국 민주주의와 세계 민주주의의 연속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한국 민주주의에는 한국 고유의 독자적 측면도 담겨 있지만,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 같은 세계 민주주의 흐름의 영향을 받은 측면도 적지 않게 반영돼 있다. 그래서 한국 민주주의를 서술할 때는 세계 민주주의의 보편성도 당연히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번 시안은 한국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로 규정하면서도, 미국 민주주의와 프랑스 민주주의는 그냥 '민주주의'로 규정했다. 한국 민주주의와 세계 민주주의가 개념상 서로 다른 것처럼 만들어놓은 것이다.

'중학교 교육과정 시안'은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정치체제의 확립 시도가 이루어졌음을 이해하고, 혁명이 아이티 등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 끼친 영향을 파악한다"라고 서술했다. 또 "서유럽 각국의 민주주의 확대'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이처럼 이번 시안은 현대 세계의 민주주의 모델로 평가되는 미국과 서유럽과 관련해서는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자유'를 뺀 민주주의는 위험하다는 윤 정권 논리에 따르면, 미국·서유럽 민주주의도 위험한 민주주의라는 말이 된다. 사회적 반발을 무릅쓰고 서둘러 수정하다 보니, 한국 민주주의와 세계 민주주의의 연속성 부분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일관성 결여는 한국 현대사에 관한 교육 지침에서도 나타난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시안'에서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데서 나타나듯이, 이번 시안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의 한국 정치체제를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설명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1948년 이후에 발생한 정치적 모순을 '자유민주주의의 모순'으로 규정해야 타당하다. 그런데 이번 시안은 독재정권의 부조리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교육과정 시안'은 '대한민국의 발전'이라는 부분의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해설하는 대목에서 "이 성취 기준은 4·19 혁명에서 6월 민주항쟁에 이르는 과정을 독재정치로 인한 민주주의의 시련과 국민적 저항에 기반한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도록 설정하였다"라고 설명한다.

1960년 4·19혁명부터 1987년 6월항쟁 사이에 발생한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치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시련'이라 하지 않고 그냥 '민주주의의 시련'이라고 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이뤄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와 관련해서는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일관성 결여를 초래한 원인
 

2021년 6월 29일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라면서 문재인 정부가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한다"라고 주장하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 국회사진취재단

 
이승만·박정희·전두환에 맞선 시민혁명이나 반독재 투쟁을 설명할 때도 그 같은 일관성 결여가 나타난다. 이번 시안은 '자유민주주의'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시민혁명이나 민주화 투쟁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이런 표현을 회피했다. 민주주의가 가장 잘 발현된 형태가 시민혁명이나 민주화 투쟁인데도, 정작 이런 것에 대해서는 '자유민주'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중학교 교육과정 시안'은 '민주주의와 시민'이라는 대목에서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의 이념과 원리를 실현하고자 한 사례(예: 4·19 혁명, 6월항쟁)을 찾아보도록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라는 지침을 제시한다. 4·19와 6월항쟁 같은 저항운동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민주주의'를 두 번이나 언급하면서도 그 앞에 '자유'를 붙이지 않은 것이다.

우리 한국이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라면, 한국 민주주의 꽃인 시민혁명이나 민주화투쟁에 대해서도 '자유'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논리적이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교육과정 시안'은 "6월 민주항쟁", "민주화"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중학교 교육과정 시안'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민주화 양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자유민주주의 표현으로 통일하기로 했다면 '6월 자유민주항쟁', '자유민주화' 같은 표현을 사용해야 논리적인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넣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위험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체제의 부조리를 설명할 때와 시민혁명과 민주화투쟁을 설명할 때는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역사 교육과정 개정의 실제 의도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체제를 옹호하는 데 있다는 의심을 자초할 만한 일이다. 또 시민혁명과 민주화투쟁을 자유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로 추천하기를 꺼리는 심리적 경향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만약 시민혁명이나 민주화투쟁을 자유민주주의에 넣게 되면, 그 반대편에 있었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을 자유민주주의 정권에 포함시키기 힘든 난점이 발생한다. 1960년 4·19혁명,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항쟁 등을 자유민주혁명으로 규정하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체제가 반자유민주주의였음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 이것이 이번 시안의 일관성 결여를 초래한 한 가지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고집한 이번 시안은 윤석열 정권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체제를 미화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드러냈다. 동시에, 시민혁명과 민주화투쟁에 대한 거부감도 함께 노출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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