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5 10:27최종 업데이트 22.11.1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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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의 한일정상회담을 알리는 일본 언론들. ⓒ 구글


한국 시각 13일 저녁 한일정상회담이 끝나기 전까지 일본 언론들은 이 회담을 '3년 만의 정상회담'으로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이나 NHK 같은 대부분의 언론이 이 표현을 사용했다.
 
'3년 만의 일한수뇌회담' 또는 '3년 만에 일한수뇌회담' 같은 표현이 13일 저녁 이전까지 도배되다시피 했다는 점은 구글 검색으로도 알 수 있다. 이 만남을 2019년 12월 문재인-아베 회담 이후 처음 열리는 3년 만의 정상회담으로 평가하는 일본 정부의 인식을 반영하는 보도들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3년 전이 아닌 두 달 전에 만났다. 한국 시각 9월 22일 두 정상의 회동이 있었다. 이번에 일본이 '3년 전'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9월 만남은 '회담'이 아니었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9월 만남을 두고 윤석열 정부는 '약식 회담'으로 평가한 반면, 기시다 내각은 '간담'으로 평가절하했다. 일본이 원하는 강제징용(강제동원) 해결책을 윤 대통령이 갖고 가지 못했기에 그렇게 낮춰 평가했던 것이다. 그랬던 기시다 내각이 이번 만남을 두고는 정상회담이란 표현을 썼다. 이 때문에 '3년 만의 수뇌회담'이란 표현이 나올 수 있었다.
 
이 같은 기시다 내각의 태도는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과 관련해 사전 조율이 된 듯한 느낌을 줄 만하다. 그동안 기시다 내각은 '한국이 해결책을 갖고 오지 않으면 정상회담이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해왔기 때문이다.
 
강제징용 해결책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가해자인 전범기업과 일본 정부에 있는데도, 일본은 '해결책을 갖고 오라'는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여왔다. 일본이 말하는 해결책은 한국 내에서 더 이상 사과·배상에 관한 요구가 나오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런 입장을 견지해왔기 때문에 '한일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일본 측의 언급은 윤석열 정부가 '미션'을 이행했음을 표시하는 것이 될 수 있었다. 피해자와 한국 국민들이 더는 사과·배상을 요구하지 않고 한국 법원도 더 이상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도록 만들 묘안을 윤석열 정부가 제시했음을 시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정상회담에 적극성 보인 기시다 내각
 

윤석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손을 잡은 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13일에 열리는 것이 정상회담이라는 이야기는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 국내에 보도된 3일자 <아사히신문> 기사는 기시다 내각이 11월 중순에 정상회담을 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징용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정상회담을 열면 자민당 보수파가 반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만남이 간담 형식이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윤 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면 간담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기시다 내각은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아사히신문> 보도가 나온 날, 한국 정부는 '논의가 시작되지 않았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9월 22일 만남 전에 한국 정부가 '정상회담을 연다'고 발표하고 일본 정부가 '사실무근'이라며 물러섰던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아사히신문> 보도는 기시다 내각이 11월 중순 정상회담에 적극성을 띠고 있다고 느끼게 했다.
 
이 같은 일본 측 움직임은 북한이 군사행동 수준을 높이거나 제7차 북한 핵실험 징후가 속속 포착되는 정황들로 인해 기시다 내각이 한일관계에 적극적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동시에,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로부터 만족할 만한 언질을 받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들게 했다.
 
<아사히신문> 보도가 나온 상태에서 일본 정부가 '3년 만의 일한수뇌회담'에 임했다. 그랬기 때문에 윤 정부가 명확한 약속을 해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다.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포스코 등의 기부금으로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고, 미쓰비시나 일본제철 같은 전범기업에는 일체의 청구를 하지 않겠다'는 언질을 해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런데 정상회담이 끝난 뒤인 13일 저녁부터 다음날인 14일까지 나온 일본 측 움직임을 살펴보면, '성과가 없었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회담 직후에는 '징용 문제에 관한 협의를 가속화시키기로 했다'는 보도들이 나왔지만, 일본 언론의 평가를 대표하는 보도 중 하나는 13일 밤에 나온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사라고 할 수 있다.
 
'전 징용공 문제 구체적 논의 없어, 3년 만의 일한수뇌회담'이라는 제목의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사는 "전 징용공을 둘러싼 소송문제와 관련해 조속한 해결을 위해 협의를 계속한다는 점을 확실히 하긴 했지만, 구체적 방안에는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가 주류를 이룬다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숙제'를 해가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기시다 내각 역시 성과를 얻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기시다뿐 아니라 윤 대통령 역시 별 성과를 얻었다고 볼 수 없다. 14일 오후에 나온 NHK 인터넷판 뉴스 '마쓰노 관방장관 징용 조기 해결, 한국 측과 긴밀히 의사소통 계속'에도 보도됐듯이,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내각관방장관은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14일 오전 기자회견 때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에 기초해 한국 측과 긴밀히 의사소통을 도모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국민 상대로 처음부터 '연기'
 

지난 8일 <요미우리신문>에 실린 '일한관계, 윤 정권은 현안의 해결책을 보이라' ⓒ 요미우리신문

 
일본의 일관된 입장은 '1965년 청구권 협정에 의해 징용 문제는 해결됐으며, 일본 정부와 기업이 더 이상 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청구권 협정에서 식민지배 문제가 다뤄지지 않았는데도 일본은 이런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관방장관이 '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따라 정상회담을 했다'고 브리핑한 것은 자국 총리가 한국 대통령에게 양보한 게 없음을 알리는 표시다.
 
일본 정부와 마찬가지로 전범기업인 미쓰비시나 일본제철 역시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 점은 정상회담 닷새 전에 나온 8일자 <요미우리신문> '일한관계, 윤 정권은 현안의 해결책을 보이라'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제국주의 침략범죄의 피해자인 한국을 마치 가해자처럼 다루면서 '한국이 해결책을 보이라'고 요구하는 이 기사는 윤 정부가 요청한 '일본의 성의 표시'에 호응할 뜻이 없다는 일본 측 기류를 반영한다.
 
윤 정부 내에서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기금을 마련해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되, 일본 측이 최소한의 성의를 나타내도록 한다'라는 방안이 유력하게 부상해 있다. 윤 정부가 바라는 '최소한의 성의'는 전범기업이 배상금이 아닌 기부금이라도 내면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 보도는 "윤 정권은 한국 정부 산하의 재단이 배상을 대신 떠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면서 "다만, 그 재원의 일부로 일본 기업의 기부금을 상정하고 있다"라고 한 뒤 "그것을 의무화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라고 선을 그었다. 배상금은 물론이고 기부금도 낼 수 없다는 일본 측 입장을 명확히 전달한 것이다. 그런 다음, "한국은 일본이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제대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불가결하다"라는 훈계까지 덧붙였다.
 
지지율 급감과 리더십 추락으로 고심하는 기시다 내각이 이 같은 일본 내 분위기를 거스르면서까지 윤 대통령에게 선물을 주기는 힘들다. 윤 대통령 역시 징용과 관련해서는 빈손으로 회담을 끝낸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내각은 '한일정상회담'을 운운하면서 자국민들에게 잠시나마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을 제공했다. 성과를 낼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이 뭔가 양보한 듯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일본 국민들을 상대로 기시다 내각이 처음부터 '연기'를 했다고 평해도 과하지 않다.
 
기시다 내각이 정상회담을 운운하는 것은 '한국이 강제징용과 관련해 양보를 했다'는 인상을 풍기고도 남는 것이었다. 이를 잘 알면서도 윤석열 정부는 명확히 선을 긋지 않고 정상회담에 임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윤 대통령도 기시다 총리의 대국민 연기에 보조를 맞춘 셈이 된다. '기시다 주연, 윤석열 조연'으로 이뤄진 한 편의 연기였다고 평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시다 총리가 이처럼 '얼렁뚱땅' 방식으로 자국민들에게 잘못된 이미지를 전달하게 된 데는 아무래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고강도 행보가 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징용 문제가 일본 측 의도대로 종결되지 않았는데도 마치 해결된 듯이 정상회담을 개최한 것은 한일 군사협력을 신속히 강화해 북한을 견제해야 한다는 기시다 총리의 절박감을 반영한다. 북한의 연이은 군사적 압박이 기시다 총리의 마음을 바쁘게 만든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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