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9 19:33최종 업데이트 22.11.2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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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역사물길 ⓒ 연합뉴스


지난 8월 6일 서울 광화문광장이 재개장한 뒤로 불교계가 지속적으로 거론하는 문제점이 있다. 조선이 세워진 1392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의 역사를 연도별로 새긴 212미터짜리 광화문광장 '역사물길'에 관한 문제 제기다. 오세훈 시장 때인 2008년에 첫선을 보이고 지난 8월 업그레이드된 이 역사 연표가 종교 편향성을 시정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불교계에서 나오고 있다.

재개장 1개월 뒤인 9월 14일에는 서울 강남구 봉은사가 역사물길의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진 것은 보우대사에 관한 부분이다.


보우대사는 명종(재위 1545~1567)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지원하에 승과 시험을 실시해 임진왜란 승병장인 서산 휴정대사와 사명당 유정대사 등을 배출함은 물론이고 불교 교단을 선종과 교종으로 정비하는 등의 업적을 세웠다. 그런 가운데, 불교와 유교의 조화도 도모했다. 유교국가 조선에서 종교 다양성을 추구한 인물이다.

성명은 당국의 박해를 받아 제주도로 유배 갔다가 1565년 제주목사에 의해 죽임을 당한 보우대사의 최후가 '보우 처벌'로 표기된 점을 문제 삼았다. 다른 부분의 서술과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광화문광장 역사물길에 새겨진 '문정왕후 사망, 보우 처벌, 윤원형 추방'만 보면 보우대사는 나라를 크게 어지럽힌 요승으로 문정왕후가 사망한 뒤 윤원형 추방과 함께 합당하게 처벌당한 인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가톨릭 김대건 신부는 순교라고 명기한 것과 확연히 대비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대건 신부가 순교했다'라는 서술은 기독교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1846년 당시의 조선 정부나 일반 대중의 시각과 상반되는 서술이다. 공공기관이 만든 역사연표에 기독교 시각을 반영하는 이런 서술을 넣으면서도 불교와 관련해서는 순교가 아닌 처형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래서 위와 같은 비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역사 형평성에도 문제 제기

불교 시각에서는 보우대사 역시 순교자다. 김대건 신부를 순교자로 표기했다면 보우대사 역시 그렇게 표기하는 게 공평하다. 양쪽 다 '처형당했다'라고 쓰든가 양쪽 다 '순교했다'라고 쓰는 게 균형에 맞다. 기독교와 관련해서만 순교자 표현을 쓰는 것은 국교를 부인하는 헌법 제20조 제2항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

성명은 "서울시는 연표석 기록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라며 역사물길이 기독교 관련 서술에 편중돼 있다고 지적한다. 1832년에 기독교 선교사 귀츨라프가 한국에 입국한 일이나 1884년에 황해도 장연에 기독교 교회가 세워진 일까지 기록하면서도 불교와 관련된 굵직한 사건들은 생략했다고 비판한다. "역사 연표석만 보면 조선이 가톨릭 국가인 듯한 착각이 듭니다"라고 성명은 지적했다.

지난 28일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가 주최한 '광화문 역사물길 연표석 상징성에 부합하는 역사물길의 방향' 세미나에서도 이에 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김용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는 "역사물길 조선시대 연표에서 불교 내용이 거의 없고,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놓고 보면 불교는 6개, 기독교는 10개를 차지하고 있다"라며 "불교는 우리 민족과 1700년을 함께해 왔고 기독교는 근대기에 유입됐는데 역사 형평성에도 문제가 제기된다"라고 언급했다.

세미나에서는 역사물길이 역사 연표의 기본적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덕진 광주교육대 교수는 '1696 숙종 22: 안용복, 울릉도에서 일본 어부 축출'이라는 대목의 문제점도 언급했다. '독도' 대신 '울릉도'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안용복이 독도를 지켜낸 사실을 누락시켰다는 지적이다.

안용복이 일본 정부인 도쿠가와 막부를 찾아가 독도·울릉도가 조선 땅이라는 확인을 받아낸 사건은 독도가 한국 땅임을 증명하는 핵심 사례 중 하나다. 그런데 안용복을 '독도·울릉도 수호자'가 아닌 '울릉도 수호자'로만 평가한다면, 한국이 갖고 있는 유력한 무기 중 하나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 된다.

독도에 관한 일본의 허위 주장을 부추길 여지가 있는 문구를 하필이면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광화문광장에 새겨두는 것은 독도 수호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물길이 불교뿐 아니라 독도 수호와 관련해서도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은 중요하다.

교과서에서도 종교 편향적

1945년 미군정 수립 이후로 한국의 역사 서술에서는 기독교 색채가 강해지면서 여타 종교의 위상이 낮아졌다. 불교계가 지적하는 광화문광장 역사물길뿐 아니라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과서 역시 마찬가지다.

2007년에 <교육연구> 제42집에 수록된 김형중 동대부고 교사의 논문 '초중등학교 도덕·윤리·국사·철학 교과서에 나타난 불교 관련 내용의 오류'는 초등학교 4학년 <생활의 길잡이>에서 '요승 신돈'과 '강직한 이집(이원령)'이 비교·설명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논문은 <생활의 길잡이>가 "이원령은 성품이 곧은 사람이라, 평소에 신돈의 옳지 못한 점을 여러 사람 앞에서 자주 지적했습니다"라고 한 뒤 "신돈은 크게 노하여 이원령과 그의 가족을 해치려고 하였습니다"라며 "이원령은 늙은 아버지를 등에 업고 가족을 이끌고 피난을 갔습니다"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종교 편향적이라고 지적한다.

호가 둔촌인 이집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지명의 기원이 됐다. 고려 말에 이집이 신돈을 피해 이주한 사실을 서술한 <생활의 길잡이>에 관해 논문 저자는 이렇게 평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공부하는 도덕과의 예시 지문에서 고려 역사에서 대표적인 요승으로 일반화되어 있는 신돈을 예화로 들면서 그가 나쁜 행위를 하는 내용을 서술한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스님들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가지게 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신돈을 요승으로 설정한 뒤 '성품이 곧은 이집'과 대비시키는 것은 불교 승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돈이 '정치개혁 와중에 마찰을 빚었다'는 점을 생략한 채 마찰을 빚은 측면만 부각시키면, 승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조장할 여지가 없지 않을 것이다.

종교 관련 편향적 서술 시정 노력 필요

신돈이 공민왕의 위임하에 수행한 개혁은 구세력인 권문세족을 몰아내고 개혁세력인 신진사대부들을 그 자리에 앉히기 위한 것이었다. 공민왕의 왕권 강화와 더불어 유교 선비들의 권력 장악을 돕는 이 과정에서 신돈은 인적 숙청을 대대적으로 단행했다. 무명의 승려가 갑자기 출현해 숙청 작업을 벌였으니 요승이란 비난이 나올 만도 했다.

그런데 신돈 자신은 불교인이지만 그가 수행한 개혁은 유교 사대부들을 돕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불교 승려라는 이유로 바로 그 사대부들로부터도 요승 소리를 들었다. 사대부들에 의한 조선 건국의 발판을 만들어준 그가 그런 취급을 받은 것이다. 이런 맥락을 생략한 채 신돈이 세상과 부딪힌 사실만 가르친다면, 신돈은 물론이고 불교에 대해서도 편견이 생길 여지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군정 이후의 역사서술에서 불교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물론 아니다. 한민족의 고대 문명을 강조할 때는 불교 문화의 우수성이 자주 거론된다. 하지만 그것은 주로 신라 불교와 관련된 것들이다. 고구려·백제·가야가 신라보다 먼저 불교를 수용했는데도 우리 역사교육은 신라 불교를 중심으로 고대 불교를 설명한다. 이 역시 균형이 맞지 않는다.

한국의 역사교육이 보우는 순교자로 가르치지 않으면서도 이차돈 같은 초기 불교인들은 순교자로 가르치는 것에도 불공정한 함의가 들어 있다. 초기 불교인들이 당시의 지배적 신앙이자 무속 신앙의 뿌리인 신선교에 맞서다가 세상을 떠난 사실을 순교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속신앙에 대한 거부감을 반영하는 듯하다. 초기 불교인들의 용감한 희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들의 죽음을 활용해 샤머니즘 신앙을 비판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우리의 역사교육에는 특정 종교에 기울어 있거나 특정 종교에 배타적인 서술들이 한둘이 아니다. 광화문광장 역사물길에 대한 불교계의 지적을 계기로, 불교뿐 아니라 종교 일반과 관련된 각종 편향적 서술을 시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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