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1 05:16최종 업데이트 22.12.01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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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지구 온난화는 인류에 심각한 위협이다'라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국제 여론조사 네트워크 윈(WIN)은 매년 세계 39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 묻는 질문이다. 2021년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인 93%가 이 질문에 '동의한다'고 답해 39개국 중 7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 평균 86%보다 높다. 그만큼 우리 국민은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사실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다.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인 이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지구 온난화는 "생태주의자들의 거대한 사기극"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은 유엔 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했다. 2020년에는 이상 고온 현상으로 캘리포니아에서 거대한 산불이 일어나 30여 명이 사망했는데, 그 현장에서도 그는 "지구는 다시 시원해질 것"이라며 기후변화 부정론을 이어갔다.

최소한 우리나라에는 이런 정치인은 없다.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모두 공개 석상에서 기후위기가 심각한 인류의 문제라고 말한다. 2020년 '기후위기 비상대응 촉구 국회 결의안'은 재적의원 258명 중 252명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결의안은 현 상황을 '기후위기 비상 상황'이라고 분석하고,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2021년에는 17개 광역지자체와 226개 기초지자체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을 0으로 만드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처럼 한 국가의 모든 지자체가 탄소중립 선언 행사를 한 것은 세계 최초의 일이다. 그동안 나온 얘기로만 본다면, 대한민국은 기후위기 대응에 국민, 정치권이 한마음이 되어 전력을 다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석탄과 공항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지난 10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오찬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오히려 정반대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국제 시민사회단체로부터 '기후악당 국가'로 불려왔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10위 국가이다. 총배출량은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많고, 1인당 배출량은 중국보다 많다.

우리나라 온실가스는 주로 석탄발전소에서 배출되고 있다. 작년에만 전국 70여 개 석탄발전소에서 6억 7778만 톤의 석탄을 태웠다. 매일 석탄 18만 5700톤을 태운다. 25톤 덤프트럭 약 7400대 분량이다. '탈석탄'이란 말이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지만, 아직도 삼척에는 신규 석탄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다.

반면 이를 대체할 재생에너지 목표는 후퇴하고 있다. 2021년 문재인 정부 당시 국제사회에 제출했던 2030년 재생에너지 전력 목표 30.2%는 윤석열 정부에 들어와서 21.6%로 대폭 낮아졌다. 2021년 영국과 독일의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은 각각 39.3%와 40.5%였다. 우리나라가 향후 10년간 재생에너지를 목표대로 늘리더라도 이들 나라 현재 수준에도 못 미친다.

참고로 유럽연합(EU)은 얼마 전 '리파워(Repower) EU' 계획을 통해 유럽 전체의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45%로 설정했다. 이는 동유럽을 포함한 EU 전체의 목표다. 재생에너지 선도국인 독일은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80%로 잡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거꾸로 가는 정책은 또 하나의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지적되는 '항공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항공기는 철도나 도로 수송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운송 수단이다. 특히 국내선 같은 단거리 항공기 운행은 철도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거의 10배에 달할 정도로 많다.

따라서 신규 공항 건설을 중단하고 철도수송 분담률을 늘리기 위한 정책이 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프랑스는 철도로 2시간 반 이내 대체 경로가 있는 국내선 항공기 운항을 금지하고 철도수송 분담률 목표를 상향했다. 영국 법원은 시민사회단체가 히스로 공항 제3활주로 증설에 반대해 낸 소송에 대해 "파리협정의 온실가스 감축 약속을 지킬 수 없다"며 "활주로 증설이 적법하지 않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에선 신공항 건설 붐이 일고 있다. 제주도민 절반 이상이 반대했지만 계속 추진 중인 제주 제2공항을 비롯해서, 기존 김해 신공항 건설 계획을 무시하고 거대 양당이 합의해 일사천리로 특별법까지 만든 부산 가덕도 신공항, 지금도 적자 공항 상태임에도 '도민 염원'이라며 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새만금 신공항 등 전국 각지에 10개에 이르는 신공항 건설 사업이 추진 중이다.

좁은 국토임에도 우리나라에는 현재 15개 공항이 운영 중이고, 그중 9개가 국제공항이다. 하지만 지역개발과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마다 공항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기후위기를 언급하는 정치인들만 모여있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또 전체 국민의 90% 이상이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한 위협이라고 느끼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들 '기후악당' 정치인들은 오히려 높은 지지율로 당선된다. 기후악당에 맞설 기후 정치인들은 주변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 거리두기에 갇힌 기후운동
 

9월 24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후정의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 ⓒ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리면 문제에 공감하고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낯설고,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잘 모를 때는 이러한 전략이 필요했다. 다소 과격하거나 선정적으로 보이더라도 많은 기후활동가들이 '위험성'과 '절박성'을 알리는 데 집중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정책은 결국 국가와 지자체 몫이다. 에너지정책과 교통정책을 바꾸지 않고 절전이나 대중교통 타기 캠페인만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

국민의 인식이 바뀌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기후위기 시대 정책을 바꿀 정치권의 역할이 필요하다. 거대 자본이 움직이고, 다양한 이해관계와 관성이 작동하는 화석연료 중심의 세상에서 정치인들의 선한 행동만을 기대하는 것은 그저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독일을 비롯해 전 세계에 녹색당 같은 기후·환경 문제를 다룰 정당이 만들어지고, 미국의 선라이즈 무브먼트 같은 기후정치 행동을 촉구하는 청년 단체가 만들어진 것은 모두 이러한 맥락이다. 장외에서 심판만 보거나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하는 수준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직접 출마하거나 선거운동을 하면서 선거라는 전쟁터에서 기후위기를 갖고 싸운다. 그리고 그 결과 기후 정치인들이 의회에 진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은 많이 다르다. 오랫동안 기후·환경운동은 순수한 것이고, 정치와 시민사회 운동은 서로 다른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선거 때마다 관행처럼 각 정당의 공약을 평가하지만,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일은 결코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누군가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우려해 매번 복수의 정당, 정치인에 대해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며 평가할 뿐이다.

과거 정보가 부족하던 시절에는 시민단체의 공약 평가가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현재는 그마저 예전 같지 않다. 시민사회운동 내부에서조차 '공약 평가 무용론'이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다급한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회 의제를 주장하는 것을 넘어 '정치 세력화'로까지 연결시키는 일은 사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노동자·민중의 정치 세력화'나 '여성의 정치 세력화'라는 말은 수십 년째 매우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종 혹은 종교계의 국회 진출 또한 매우 자연스럽다. 공개적으로 진행되지 않더라도 토건, 금융, 핵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계도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의제를 관철하기 위해 활동한다. 하지만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 거리두기'가 관행처럼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올해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후 선거', '기후 대통령'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 결과 '기후 대선운동 본부' 등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큰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수의 기후정의 운동 진영은 이와 같은 흐름에 회의적이었다. 3개월 간격으로 2번의 선거가 이어지는 정치 무대에서 기후정의를 부각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는 했지만 대중적인 기후선거 캠페인이나 지역별 출마, 지지선언 등은 각 정당과 후보자 캠프의 몫이었다.

특히 대통령 선거와 달리 지방선거는 지역 차원의 기후공약을 펼치기 좋은 무대였지만 기후 후보도, 기후 공약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국에서 약 1만 명의 후보가 출마한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본인이 '기후 후보'라고 칭했던 후보는 정당 전체를 통틀어 50명도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 후보의 숫자를 세고, 공약을 평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기후 정치인, 혜성같이 나타날까?
 

11월 25일 경남 창원시 용호문화거리에서 열린 “금요기후집회”에 붙은 벽보 ⓒ 창원기후위기비상행동

 
물론 기후정의 운동 진영의 '정치적 거리두기'는 정의당과 녹색당 등 기후정의를 외치는 기존 정당의 부족으로 인한 것이 크다. 충분하고 현실적인 정책 능력, 후보의 자질, 당선 가능성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기후정의 운동과 기후정치는 더욱더 만나야 한다.

기후정의는 누군가 던져주는 선물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이는 기존 정당을 지지하라는 뜻이 아니다. 만약 기존 정당이 부족하다면, 제2, 제3의 정치세력을 만들어서라도 기후정의를 확산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다. 2030 청년 단체 '선라이즈 무브먼트'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미국 오카시오 코르테즈 상원의원이나 기후위기를 매개로 연정에 참여한 독일 녹색당의 사례를 보면 우리 현실과 대비되어 너무나 부러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부러움이 아니다. 현재의 다급한 기후위기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할 정치인을 발굴하고 이들과 함께 기후정치를 일궈갈 이들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기후정의의 정치세력화' 전략이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회 체제를 깨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는 시민사회운동과 정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시민사회운동이 갖고 있는 '정치권과 거리두기' 전략을 깨지 않고 어느 순간 기후 정치인들이 혜성처럼 나타날 일은 결코 없다. 아래로부터 기후정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기후정의는 그저 해외 사례에 불과할 것이다. 이는 기존 진보정당 역시 마찬가지다.

거대 자본은 기후 문제를 단순한 환경문제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를 통해 산업과 노동의 개편, 국제정치 전략을 구상한다. 하지만 아직도 기후 문제를 단순히 기온이 올라간 '환경 문제' 정도로 국한해 보거나 중산층 운동의 일환으로 보는 이들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진보정당이 기후 문제를 그저 다양한 의제 중 하나 정도, 특히 부문 운동적 시각에서 본다면 기후위기 시대에 도태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위기의 시대에 전환의 실마리가 만들어진다. 기후위기 시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기후정의의 정치 세력화'가 그 실마리가 돼야 할 것이다. 
 

이헌석 /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 이헌석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이헌석은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에너지, 기후위기, 탈핵운동을 중심으로 20여 년째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 녹색정의위원장 등을 맡았습니다. 저서로 <그린뉴딜과 신공항으로 본 대한민국 녹색시계>(공저), <기후위기와 탈핵>(공저), <국회는 지붕만 초록이다>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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