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7 07:10최종 업데이트 22.12.07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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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조선인이 징용된 현장인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탄광. 사진은 인근 해상에서 군함도를 바라본 모습. 2016.7.3 ⓒ 연합뉴스

 
미쓰비시 강제징용 문제를 협상하는 윤석열 정부가 역시 미쓰비시 문제인 군함도(하시마) 문제에는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에서 벌어진 한국인 강제노역에 대한 설명을 보완하라고 일본에 요구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조선인 차별은 없었다"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한국인들의 상처를 배려하지 않는 이런 답변서가 제출된 사실이 2일 자 <산케이신문>에 보도되고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지만, 윤 정부는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일본이 군함도 관련해서 약속을 어겼는데 다시 똑같은 주장을 했다'라는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에 대해 "아직 일본이 유네스코에 제출한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라며 "우리 국민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대답했다. 그런 뒤 "유네스코에서 보고서를 공개하면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리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대답은 일본 정부 답변서가 역사수정주의 관점에 입각해 있으리라는 예측을 담고 있다. 전쟁범죄 역사를 왜곡되게 수정하는 극우세력의 관점을 반영하는 보고서가 제출됐으리라는 시각을 반영하는 대답이다.

조현동 차관은 "유네스코에서 보고서를 공개하면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대답했다. 다른 사안이라면 이런 대답은 별 무리가 없다. 하지만, 군함도 노예노동의 가해자가 미쓰비시그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인 강제징용(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미쓰비시·일본제철 등의 불법행위 책임을 제3의 한국 기관이 떠맡도록 하는 대신에 미쓰비시 등이 성의 표시를 하게 하는 쪽으로 기시다 내각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강제징용 문제는 전범기업과 일본 정부의 사과 및 배상으로 마무리돼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위로금 조로 봉합하면, 피해자와 유족들의 한은 언제든 다시 터져나올 수 있다.

1965년에 박정희 정부와 사토 에이사쿠 내각이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 문제를 봉합했지만, 근 60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이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전범기업의 직접 사과 및 직접 배상을 요구하지 않고 성의 표시 정도를 받아내겠다는 윤 정부의 해법은 생명력을 갖기 힘들다.

준비 못했다고 실토한 격

그런데 조현동 차관의 답변은 윤 정부가 그런 성의 표시마저 제대로 요구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번에 제출된 답변서는 미쓰비시는 물론이고 일본 정부 역시 강제징용을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윤 정부가 성의 표시를 받아내고자 열성을 기울였다면, 한국인들의 상처를 자극하는 이런 보고서가 유네스코에 제출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어야 마땅하다. 이는 윤 정부가 미쓰비시 징용 문제를 놓고 일본과 협상하면서도 미쓰비시그룹의 군함도 강제노역에 대해서는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우리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답변서가 제출됐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하면서 '보고서가 공개되면 정부 입장을 밝히겠다'는 답변은 윤 정부가 지금 당장 이 문제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미쓰비시 강제징용 문제를 세심하게 고려했다면, 군함도 문제와 관련된 일본의 움직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랬다면 우리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보고서가 제출된 것으로 보이는 이 시점에는 정부 차원의 대응이 나왔어야 한다. 전 세계가 다 알고 영화로까지 상영된 미쓰비시 군함도 문제에 대해 윤 정부가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군함도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부각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위안부 문제도 그렇지만, 강제징용 문제 역시 1990년 전후의 세계적 탈냉전으로 미국의 권위가 약해지고 한·미·일 협력체제가 느슨해지는 시점에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1992년 2월 9일 자 <조선일보> 19면 우단 기사는 "일제 때 강제징용돼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섬 미쓰비시탄광에서 강제노역을 하다 숨진 피해자 유족 50여 명은 8일 오후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 상아다방에서 '일본 하시마 희생자 유족회'를 결성하고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측에 사망 진상규명과 보상 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라고 한 뒤 유족들의 성명서 내용을 이렇게 요약했다.
 
유족들은 성명에서 '하시마탄광에서 한국인 5백여 명이 강제노동을 하다 1백 22명이 숨진 사실을 지난해 밝혀내고 일본인 인권단체를 통해 사망경위 규명, 유골 반환 등을 수차례 요구했으나, 미쓰비시 측은 오는 6월 말까지 기다리라는 회신을 보내왔을 뿐'이라고 밝히고, 강제연행과 희생자 사망경위에 대한 진상규명, 유골 소재 확인과 고국 봉송, 손해배상과 미지불 임금 지급 등을 요구했다.
 
이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쓰비시나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우리 정부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징용으로 끌려간 삼촌을 찾아 헤매다가 군함도 희생자 명단을 밝혀내는 데 기여한 이복렬 당시 전북산업대 교수는 1994년 8월 9일 자 <동아일보>에 기고한 '일제 징용문제 유엔 제기하자'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9년 동안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의 나가사키 지방 등을 찾아다니면서 삼촌의 생사확인 조사 작업을 하였다. 그동안 국내와 일본에서 찾은 문서와 조사 등을 통해 그분은 일본인 소유인 미쓰비시 회사의 하시마 탄광에서 스물한 살의 꽃다운 청년으로 희생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복렬 교수는 노태우 정부(1988~1993)와 김영삼 정부(1993~1998)를 상대로 도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가 부딪힌 것은 실망감뿐이었다. "정부는 우리 국민의 내면적 슬픔과 분노를 외면하려는 듯한 느낌이 든다"라고 그는 토로했다.

그는 차라리 유엔이 더 낫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1994년 5월 4일 유엔 인권위원회가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를 현대판 노예문제로 다루면서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를 이용하라는 권고안을 내놓은 사실을 언급했다. 한국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묻어나는 언급이다.

군함도 문제는 그 후로도 역대 정부들의 외면을 받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한층 딱한 상황에 처해 있다. 미쓰비시의 사과·배상을 요구하라는 국민적 요구를 외면한 채 미쓰비시의 성의표시만 요구하는 쪽으로 협상해온 윤 정부는 미쓰비시가 저지른 군함도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성의 표시조차 제안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들을 차별한 적 없다'는 뻔뻔한 답변서가 유네스코에 제출된 뒤에 미쓰비시와 일본 정부가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성의 표시를 한다면, 이 성의 표시의 진정성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윤 정부가 성의 표시를 받아내는 데에 열성을 기울였다면, 군함도에 대한 미쓰비시의 태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이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윤 정부의 관심 부족을 드러낸다. 식민지배로 인한 한을 누가 풀어줄 것인가 하는 한탄을 낳는 일이다. 위 이복렬 교수 기고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이 하시마는 시골의 작은 동네만한 크기의 섬인데, 당시 이곳에서 노예 아닌 노예 생활을 하다 희생된 한국인 숫자만도 1백 22명이고, 동남아 각국의 희생자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일제 만행으로 우리 국민 수백만 명이 군인·군속·종군위안부 및 학도병 등으로 강제동원되었으며 그중에서 수십만 명이 희생됐다. 이렇게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과, 당시 생환됐다 하더라도 병고로 이미 죽은 분, 또 현재까지 살아 있는 분의 한을 누가 풀어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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