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27 06:57최종 업데이트 23.02.2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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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가 움직이고 있다. 지난 20일 독일은 나이지리아에 베닌 브론즈(Benin bronze) 21점을 반환했다. 베닌 브론즈란 19세기 말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넘어간 문화재로 올해 초 독일 정부는 1130여 점을 반환하기로 서명했다. 전부가 되돌아가지 않는다. 소유권은 나이지리아로 변경되지만 일부는 대여 형식으로 독일에 남는다.

박물관은 문화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모아서 전시하는 곳 이상이다. 지난 11월 영국 박물관 이사회 대표 조지 오스본(George Osborne)은 박물관을 "관계의 세트"로 표현했다. 여기서 관계란 문화재를 애초에 만든 자, 과거에 모은 자, 현재 소유한  자 그리고 보러 오는 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관계다.


문화재가 박물관을 떠나 이동한다는 것은 이들의 관계가 바뀌고 있음을 뜻한다. 베닌 브론즈의 경우 만든 자와 모은 자의 관계는 제국과 식민지다. 소유자와의 관계를 첨가하면 문화재가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과정의 합법성 문제가 발생한다. 합법적이었다면 권리보다는 도덕적 호소를 해야 하고 이 지점에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한다.

수십 년 논쟁의 방향을 튼 독일의 결정 뒤에는 국제무대에서 입지 확장을 원하는 외교 정책, 중국 견제, 러시아 에너지 대체제로서의 아프리카 천연가스가 있다.

베닌 브론즈를 둘러싼 논쟁

독일이 반환한 베닌 청동 문화재는 과거 아프리카 서부의 베닌 왕국(현 나이지리아 남부 에도주 베닌시티)에서 13-16세기에 제작되었다. 철을 다루는 아프리카의 수준높은 기술과 예술적 가치를 둘 다 갖추고 있다고 평가된다. 왕실의 휘장, 문패, 동물과 사람 조각이 있고 재료는 청동뿐 아니라 놋쇠, 상아, 산호, 나무까지 다양하다.

베닌 문화재는 식민지 약탈의 성격이 명확하다. 1897년 1월 영국 관리 제임스 필립스(James Philips)는 베닌 왕에게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영국의 무역을 막지 말라고 부탁하려고 접견을 청했다. 하지만 그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왕은 예정된 만남을 연기했다. 접견을 강행하려던 필립스는 궁으로 향하던 중 살해당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영국은 2월 1200여 명의 군인을 보내 베닌 왕국을 무너뜨렸다. 영국군은 군사 작전 과정에서 궁에 있던 물건을 마구잡이로 탈취했다.

약탈당한 문화재 수는 약 5000점으로 추정된다. 몇 개는 빅토리아 영국 여왕에게 갔다. 일부는 개인 소유, 나머지는 경매로 소유주가 계속 바뀌며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전역과 미국으로 퍼져 나갔다. 많은 경우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영국 박물관이 900여 점,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유명한 베닌 아이보리 마스크를 포함해 약 160점을 보유하고 있다. 한 곳은 아니지만 의외로 독일 박물관들이 모두 합쳐 1130여 점을 수집했다. 현재 개인 소유는 집계되지 않고 있다.

1960년대 독립 후 나이지리아 정부는 문화재 반환을 요구했다. 구체적인 진전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2007년 나이지리아 정부와 베닌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각국 대표 박물관들이 만든 베닌 대화 그룹(Benin Dialogue group)이 조직되면서 이루어졌다. 약탈했다는 것에 이의제기는 없었다. 하지만 박물관들은 미술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구입했기 때문에 반환할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했다. 문화재 해외 반출을 금지하는 유네스코 법은 1970년대 제정되어 이 경우에 적용되지 않는다.
 

영국 박물관에 있는 베닌 브론즈 동판 ⓒ Hyeyoung Jess

 
10년 가까이 공회전하던 논의를 깬 건 영국 대학생들이었다. 2016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학생들은 100년 이상 지저스 칼리지 건물에 전시되어 있던 오쿠코(Okukor)를 제국주의의 상징이라며 건물에서 치우고 되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학은 2019년 오쿠코의 반입 과정을 역사적·법적·도덕적 세 방향에서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 뒤 오쿠코가 1897년 약탈된 문화재 중 하나가 분명하고 1905년 한 학생 아버지의 기부로 대학에 들어왔다고 설명하고는 반환을 결정했다. 모든 법적 행정적 절차를 끝낸 2021년 10월 7일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나이지리아 정부 인사를 초청해 오쿠코의 소유권뿐 아니라 대여권까지 포기했다.

최초 문제 제기부터 실제 반환까지 5년간 파급력은 확대되었다. 2021년 3월 런던 호니만 박물관에 이어 스코틀랜드의 애버딘 대학교는 "도덕적 소유권을 가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라며 소유하던 베닌 브론즈 문화재를 반환하기로 했다. 130여 점을 가지고 있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고고학 박물관도 반환 요청이 들어오면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2021년 6월 160점을 소유한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2점을 반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국립 아프리카 미술관은 지난 10월 소장하던 29점의 소유권을 전부 반환하고 그중 20개를 보내기로 했다. 나머지 9점은 대여로 미국에 남는다.

2021년 11월 프랑스도 1892년 다호메이 왕국(현 베냉 남부)에서 훔쳐 온 문화재 26점을 서아프리카 국가 베냉에 돌려줬다. 1960년까지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냉은 1892-1894년 식민지화 과정에서 약 4500개에서 6000개 문화재를 약탈당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약탈량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2017년 11월 부르키나파소를 방문했을 때 문화재 반환 의사를 밝혔던 마크롱 대통령이 약속을 지킨 셈이다.

독일이 베닌 브론즈 21점을 반환한 것은 이런 흐름 속에 있다. 작년 4월 모니카 그뤼터스(Monika Grutters) 문화부 장관이 "독일은 식민지 과거를 재조명하고 해결해야 할 역사적 도덕적 책임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한 후 올해 7월 독일 정부는약 1130여 점에 달하는 베닌 브론즈 소유권 전체를 나이지리아 정부로 이양했다.

이견을 냈을 개별 박물관들의 동의를 이끌어낸 것은 대단한 성과이고 반환 규모를 감안할 때 획을 긋는 결정이다. 물론 대여권에 대한 협상이 남아있기 때문에 실제로 몇 점이 나이지리아 땅을 밟게 될지는 불확실하다.

나이지리아 문화부 장관 라이 모하메드(Lai Mohammed)는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아무도 베닌 브론즈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반환까지 앞에 놓인 장애물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가장 앞선 움직임은 아니지만 독일이 규모로 보여준 과감성과 단호함이 아프리카에 우호적인 이미지를 남긴 것은 분명하다.

독일의 2022년

문화재 반환은 지난 20일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Abuja)에서 이루어졌다. 문화부 장관이 아닌 외무 장관 아날레나 베어보크(Annalena Baerbock)가 전면에 섰다. 베어보크에 따르면 외무 장관으로 수행한 해외 일정 중 가장 큰 대표단을 이끈 방문이었다.  

들고 간 문화재에는 인간과 표범 이미지를 한 열쇠가 있었다.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독일까지 열쇠의 이동 경로를 언급한 베어보크는 열쇠가 "우리가 펼칠 미래의 우정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독일은 아프리카의 문을 열어야 한다. 에너지 난을 겪고 있는 독일에 아프리카는 천연 가스를 제공할 수 있다.  9월 UN 총회에서 슐츠 총리가 밝힌 독일의 새로운 꿈인 안전보장이사회 상임 이사국이 되기 위해서는 남반구의 지지가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는 중국 견제를 목표로 EU가 내놓은 글로벌 게이트웨이(Global Gateway)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경쟁할 지역이다.   

뒤에서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슐츠 총리다. 일찌감치 지난 6월 G7에 아르헨티나, 세네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남반구 국가를 의장국 자격으로 초대했다. 남반구가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7)에서 기후 변화와 관련해 손실과 보상 문제를 제기했을 때 독일은 미국이나 중국보다 몇 발 앞선 모습을 보였다. 전임자 메르켈이 남긴 자산도 가동 중이다. 아프리카의 중요성을 읽었던 메르켈은 2017년 아프리카형 마셜 플랜(Marshall plan)을 구상해 아프리카 경제 지원을 20% 늘린 바 있다.  

가시적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나이지리아와 모로코를 잇는 가스 파이프 건설안(The Nigeria-Morocco Gas Pipeline Project)이 성사되었다. 5600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규모 공사로 완공되면 파이프가 통과하는 아프리카 13개국과 유럽에 천연 가스를 공급할 수 있다. 특히 나이지리아는 독일의 대 아프리카 정책의 전략적 교두보다. 2억이 넘는 인구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경제권을 가지고 있고 아프리카 내 최대 천연가스 보유국이다.

지난 10월 독일-나이지리아 경제 개발 협력안이 성사되었다. 독일은 2년간 2억 유로를 투자해 나이지리아의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돕는다. 구체적으로는 각 가구가 실질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중소 기업, 농촌, 여성 직업 교육을 돕는다. 그리고  2060년까지 탄소 중립에 도달할 수 있도록 재생 에너지 분야에 투자한다.   
 

제4회 독일-아프리카 경제 회의(the German-African Business Summit 2022)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12월 6~8일 열린 가운데 7일 하베크 독일 연방 경제 및 기후 보호 장관과 에브라힘 파텔 남아프리카공화국 통상산업경쟁부 장관이 회의장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12월 6~8일에는 제4회 독일-아프리카 경제 회의(the German-African Business Summit 2022)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렸다. 2년마다 열리는 회의체로 메르켈이 남긴 외교 자산이다. 경제 장관 하베크(Habeck) 남아프리카의 자동차, 르완다의 백신, 나이지리아의 에너지 산업에 투자할 계획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독일이 식민지 과거 문제에도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하베크는 바통을 외무장관 베어보크에게 넘겼다. 20일 문화재 반환 행사에서 베어보크는 외교적 수사없이 "우리는 잘못을 시정하러 왔다"며 "우리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더 중요하게는 희생자들의 문제를 가깝게 들으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19세기 서구 제국주의는 개방의 이름으로 시작됐다. 아프리카는 자유 무역이 경제적 예속으로 그리고 정치적 주권 박탈로 진행되었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 제재에 대한 무관심과 지난 UN총회에서 재확인된 서구에 대한 남반구의 깊은 불신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독일의 '통 큰' 문화재 반환에 담긴 메시지, 즉 21세기 경제 투자는 과거 제국주의와 다를 것이라는 메시지가 불신을 신뢰로 전환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한편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독일의 문화재 반환으로 압박을 받는 곳은 영국 박물관이다. 위에서 보듯이 영국은 민간 차원에서 가장 빨랐지만 정부 차원에서는 독일에 뒤졌다. 앞장설 수 있었지만 뒤따르라는 압력에 놓인 영국 박물관 이야기는 다음 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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