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6 18:22최종 업데이트 24.05.1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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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현재 전력산업이 당면한 위기는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기후 변화 문제에 직면해 있음에도 너무나 느린 속도로 재생에너지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 위기이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너무 뒤처져 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므로 빨리 투자에 나서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이익이 되는 선택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편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가 느린데 전력망 확충은 더 느린 것도 문제다.

한전의 적자가 누적되어 과다한 부채가 쌓인 것이 두번째 위기이다. 이론적으로는 한전의 적자는 계획된 적자이기 때문에 장차 전기요금을 서서히 올려서 그 적자분을 회수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방법을 사용하려고 해도 누적 적자가 현재와 같이 과도한 수준이면 쉽지 않다.


실제로 최근 한전은 재무구조 개선과 그간의 요금 인상 등에 힘입어 3분기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내고 있다. 그러나 요금 통제로 인해 그 흑자 규모가 크지 않아 부채를 줄일 정도는 안 된다. 올해 이자 비용으로만 4조 원 넘게 지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분쟁이 더 악화되어 버린다면 부채는 다시 늘어날 수도 있다. 천문학적인 부채 때문에 한전은 전력망을 포함한 미래 투자가 쉽지 않다.

셋째, 전기요금을 충분히 올리지 못했음에도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크다. 지불 여력이 있는 계층의 불만이야 큰 문제가 아니라고 칠 수 있지만, 서민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문제다.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이들의 불만을 엄살이라고만 볼 수 없다.

전기요금을 올리면 한전의 위기가 완화돼 한전이 전력망 확충에 나설 수 있게 되고 재생에너지 확대의 여력도 생긴다. 그러나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만만치 않다. 또한 전기요금을 올려서 한전의 위기를 해소해 주면 한전이 원전과 석탄·가스 발전을 더 확대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모두가 불만인 상태인데 정부의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독점체제 깨고 경쟁체제로 가야 한다?
 

서울 마포구의 한 다세대주택 우편함에 전기요금 청구서가 꽂혀 있다. ⓒ 연합뉴스

 
제대로 된 해법을 도출하려면 원인 진단을 잘 해야 하는 법이다. 세 가지로 정리해 본 전력산업 위기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공기업 존재 자체가 문제라고 한다. 한전이 생산, 송전, 판매를 독점하고 있고 원전과 석탄, 가스로 생산한 전력을 싼 가격에 공급하고 있는 게 현 시스템인데, 이 체제는 무조건 낮은 가격을 선호하는 정부 혹은 정치권의 이해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어서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에서는 연료 가격이 올라도 그조차 반영하지 못하고 너무 낮은 수준에서 소매가격을 결정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에너지 절약도 안 될 뿐 아니라 한전의 적자 누적도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시스템이 에너지 전환에도 실패하고 있고 한전의 위기도 방치한다고 본다. 어차피 이 체제는 지속 불가능하니 하루라도 빨리 한전의 독점체제를 깨고 경쟁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와 같은 진단에 대해 일부 수긍할 만한 점이 있다. 즉 현재와 같이 한전의 적자가 지속되는 상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 원인이 한전의 독점체제에 있고, 그 해결을 위해 경쟁체제로 가야 한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이 체제를 한전의 독점체제라고 규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 발전은 이미 한전 이외에 다수의 발전사가 존재하는 경쟁체제가 형성되어 있다. 송전과 판매는 한전 하나만 존재하지만 그것만으로 독점기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독점의 핵심은 독점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한전이 송전과 판매에서 독점력을 발휘했다면 높은 가격을 책정하여 떼돈을 벌고 있을 것인데 현실에서 한전은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면 수금만 하고 있을 뿐이다.

더 나아가 한전을 정상적인 기업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정상 기업이라면 이렇게 거대한 적자와 부채로 인해 미래 투자가 불투명한 상태로 운영할 수 없다. 현재의 전력산업 위기들은 '한전 독점체제' 즉 한전이 독점력을 발휘해서 발생했다기보다, 정부가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공기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즉 거대한 적자를 안기고 그 적자를 감수한 채 투자를 하라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전력산업 체제는 '비상식적 정부 운영 전력산업 체제'라고 규정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정부가 제대로 된 방식으로 전력산업을 운영하지 않아서 발생한 위기인데, 그 책임을 공기업에 떠넘기고, 그 공기업을 전력망 사업자로 축소시켜 버리고 개방체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시장은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정부보다도 더욱 심각한 폐해를 안고 있다. 공기업은 영리를 추구하지 않으며, 독점이더라도 그 독점력을 국민을 위해 쓴다. 하지만 민간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며, 적정 이윤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시장주의자들은 이윤 추구가 민간기업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선전하지만 공기업이 민간기업에 비해서 비효율적이라는 객관적인 증거도 없다.

시장독점 우려스런 재생에너지 우회 민영화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 2023년 11월 8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한 '특단의 자구대책'을 발표했다. ⓒ 남소연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무조건 시장에 맡기자는 주장에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재생에너지 부문에만 한정해서 살펴본다면 이미 시장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구체적인 진행 상황을 들여다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질서있고 신속하며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컨트롤타워로서 적극 역할해야 하고 공기업에 확실한 미션을 줘야 한다.

현재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엉망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알박기'용 풍향계측기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바람 정보 데이터'를 수집하는 사람에게 사업우선권을 주는 방식으로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공유수면 점유사용권을 선점하기 위해 바다에 풍향계측기를 촘촘히 꽂고 있다. 그런데 이 우선권이 수억 원에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상풍력을 확대하면 일부가 막대한 이익을 보고 국민이 그 비용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한다. 국가가 먼저 '계획입지'를 선정하는 방식, 즉 국가가 나서서 제대로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뒤로 빠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단순히 알박기만 문제가 아니다. 향후 어느 단계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관련해서 또 우려스러운 점은 소규모 재생에너지 사업과는 달리 대규모 해상풍력의 경우 대규모 자금, 기술력, 조직이 필요한데 현재 국내에는 이를 감당할 역량이 되는 회사들이 없다시피하다는 점이다. 정부가 공기업의 재무 상태를 악화시켜 놓고 손발을 묶어 놓으니 조만간 다국적기업들이 이 시장을 장악할 것이 눈에 뻔히 보인다.

개방 체제에서 국적은 상관없다고 할 일은 아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향후 대세는 에너지 전환이다. 사회·경제의 모든 영역이 이와 연결되어 있고 이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즉 에너지는 안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생에너지 주도권을 다국적기업에게 내줄 판이다.

에너지 전환에서 공기업이 훨씬 효율적
 

제주 해상풍력시설. ⓒ 윤성효

 
현재의 전력산업이 당면한 가장 큰 위기는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공기업의 역할이 망관리자로 한정돼 있어 재생에너지산업이 시장 장악 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시장은 공정하고 효율적인 경쟁시장이라는 외피를 쓰겠지만 실제로는 다국적기업과 국내 대기업, 다국적 금융자본의 지배가 핵심인 체제일 것이다.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목적은 성스럽지만 그런 결과가 한국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고, 다국적 자본에게 핵심 먹거리 산업을 빼앗기는 것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이렇게 미래가 뻔히 보이는데도 일이 그렇게 진행되는 것은 공정한 시장이라는 추상적인 무엇인가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갖고 한전 독점체제라는 존재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잘못된 생각이 그 배경에 있기 때문이다. 한전이 원전과 석탄, 가스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은 시대적 한계의 결과임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석탄은 스케줄대로 퇴출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과거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의구심은 근거 없다. 민간 석탄발전소는 문을 닫게 하기 어렵지만 공기업은 스스로 문을 닫는 것만 봐도 에너지 전환에서 공기업이 훨씬 효율적인 수단임을 알 수 있다.

한전을 위기에서 구해줄 바람직한 해법은 명확하다. 과거 고도 성장기에 국가가 공기업에 미션을 부여해서 신속하게 에너지 자립을 이루게 했던 방식으로 재생에너지 확대도 해야 한다. 선제적 전력망 확충과 대형 재생에너지 사업에서 성과를 내도록 미션을 부여하라. 이를 위해 한전에 경영 자율성을 주고 그에 따라 책임을 지우는 거버넌스 개혁을 실시하라. 거버넌스 개혁과 더불어 한전의 재무적 고통을 해소해 주어라.

전기요금 인상은 필수이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한 국민의 불만이 두렵다면 위원회를 만들어서 투명하게 결정하게 하고 국민을 설득시켜라. 한편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국가가 복지제도로 지원해서 고통을 완화시켜 주고 속도 조절이 필요하면 자본을 투입해서 채권 발행 용량을 더 늘려주라. 전력망 투자와 대규모 재생에너지에 국한해서 공기업의 투자를 팍팍 밀어줘라.

그러나 미래 전망은 어둡다. 현재는 그러한 바람직한 상황과는 완전 반대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기업을 못살게 굴지 못해 안달이다. 공기업은 재무적 압박으로 인해 전력망 투자나 미래 재생에너지 투자에 나설 수 없을 뿐 아니라, 정부의 공기업 경영평가 때문에 아예 그러한 유인이 꺾이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잘해도 칭찬받기 어렵지만 못하면 큰 고초를 겪어야 한다. 현 정부는 이렇게 한전을 고사시키면서 결국 자발적으로 '민영화시켜 주세요'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기도 하다.
 

정세은 /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 정세은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2.0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구 주제는 크게는 '한국경제 성장과 분배 선순환'이고 이와 관련하여 에너지 공공성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와 관련해서는 <에너지전환과 전력산업 구조개편>, <에너지전환과 한국 가스산업의 현재와 미래>을 다른 연구자들과 공저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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