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두산 선수들이 3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5프로야구 시상식에서 김태형을 헹가래치고 있다.

14년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두산 선수들이 3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5프로야구 시상식에서 김태형을 헹가래치고 있다. ⓒ 연합뉴스


두산이 14년의 한을 풀고 'V4'에 성공했다. 두산은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선발 유희관의 호투와 폭발적인 타격의 힘을 앞세워 예상을 깨고 13-2로 대승을 거뒀다. 1패 이후 내리 4연승을 달성한 두산은 2001년 이후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의 감격을 누렸다.

삼성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두산이 차지한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중 1995년(롯데)을 제외한 무려 3번(82, 2001, 2015)이 삼성을 상대로 거둔 것이었다. 두산은 2001년과 2013년에 이어 '준PO부터 출발한 팀이 한국시리즈까지 오른' 경우만 3번이나 되고 이중 두 번이나 우승까지 차지한 것도 모두 KBO 역사상 두산이 유일한 기록이다. (나머지 1회는 92년의 롯데)

하필 이때마다 두산의 한국시리즈 파트너가 모두 삼성이었다는 것도 기묘한 인연이다. 두산은 삼성을 상대로 올해까지 5번의 한국시리즈를 치러서 상대 전적 3승 2패로 다시 한 벌 앞서나가게 됐다.

모든 면에서 이번 시리즈는 2001년의 재림을 연상시켰다. 김인식 감독이 이끌던 두산은 당시에도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여 준PO부터 한화, 플레이오프에서는 현대를 제압하고 결승에 올라 한국시리즈에서는 당시 명장 김응용 감독이 이끌며 호화멤버를 자랑하던 삼성을 예상을 깨고 4승 2패로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1차전을 내주고도 역전 우승을 차지한 것까지 흐름이 거의 동일하다. 2001년 두산의 우승 멤버중 2015년에도 현역으로 활약한 선수는 홍성흔 뿐이다.

경기 외적인 변수가 많았던 것은 2001년과 2015년의 공통점이다. 14년전 두산의 우승에는 '잠실 효과'가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한국시리즈 5~7차전을 무조건 잠실에서 치러야하는 KBO의 중립경기 규정 때문에 1위팀인 삼성이 사실상 홈어드밴티지를 상실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2차전이 우천으로 하루 연기된 것도 상승세가 끊긴 삼성보다 체력적으로 지쳐있던 두산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타선이 살아난 두산은 2~4차전에서 폭발적인 화력으로 삼성 마운드를 맹폭하며 3연승을 달렸다. 5차전을 내줬지만 6차전에서 다시 동점과 역전을 거듭하는 명승부 끝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지금도 한국시리즈 역대 최대의 타격전으로 기억되는 시리즈다. 삼성이 당시만해도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없어서 압도적인 전력차에도 큰 경기만 가면 작아지는 한계를 노출한 승부이기도 했다.

삼성 마운드 핵심 3인방 엔트리 제외, 엄청난 나비효과 불러와

2015년에는 환경적인 변수보다는 전력 균형이 무너진게 결정적이었다. 삼성은 정규시즌에서 두산에 무려 9게임차나 앞섰고 상대전적에서도 11승 5패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도박 파문이 강타하며 임창용, 윤성환, 안지만 등 삼성 마운드의 핵심전력 3인방이 엔트리에서 제외된게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단기전에서 가장 중요한 선발진이 가장 탄탄한데다 가을야구 경험도 풍부한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올라오면서 삼성의 전력상 비교우위가 사실상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더구나 준PO(넥센)와 PO(NC)에서 연이어 짜릿한 역전드라마를 연출하며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온 두산의 상승세는 삼성이 예상한 것보다 더욱 대단했다. 실제로 두산은 '삼성의 전력이 약해진 덕에 어부지리로 우승했다.'고 폄하하기 어려울만큼 압도적인 경기력을 한국시리즈내내 보여줬다.

1차전에서 초반 리드를 지키지못하고 역전패를 당하며 주춤하기는 했지만, 내용상으로는 두산이 이겼어야할 흐름이었다. 사실상 4전 전승으로 끝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두산이 2001년보다 오히려 투타에서 삼성을 더 압도한 시리즈였다고 해야할 것이다.

두산은 니퍼트-유희관-장원준으로 이어지는 막강 1-3선발이 건재한 것이 포스트시즌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유희관이 다소 부진하기는 했지만 한국시리즈 마지막 5차전에서 살아났고, 니퍼트는 5경기에서 등판하여 3승 포함 26.이닝 무실점 행진을 펼치며 정규시즌의 부진을 만회하고 '니느님'의 부활을 알렸다.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평가받던 불펜에서는 마무리 이현승이 한국시리즈 1차전 구원 실패를 제외하면 내내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고, 노경은은 시리즈의 최대분수령이던 4차전에서 롱릴리프로 사실상 대체선발 역할을 수행하며 승리의 디딤돌을 놓았다. 투수력 소모가 심한 단기전에서 준PO부터 포스트시즌 14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을 치르면서도 똘똘한 선발 3인+긴 이닝도 소화하는 필승조 2명에 의존하는 '소수정예 투수진'을 바탕으로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쥔 마운드 운용의 성공이었다.

타선에서는 정수빈이 한국시리즈 4경기 나와 타율 5할7푼1리(14타수 8안타) 1홈런 5타점을 기록하면서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투구에 왼손 검지 손가락을 맞는 부상으로 6바늘을 꿰매면서도 2차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상적으로 경기에 출장하는 투혼을 보였고 5차전에서는 우승에 쐐기를 박는 3점홈런까지 터뜨렸다.

두산, 공수 양면에서 고비마다 삼성의 추격 의지 꺾어

두산은 정수빈-허경민으로 이어지는 테이블 세터를 시작으로 중심타선, 하위타선 가릴 것 없이 고르게 활약했다. 수비에서도 선발진의 호투 속에 1차전을 제외하면 야수들이 별다른 실책없이 안정된 호수비로 고비마다 삼성의 추격의지를 꺾었다.

두산은 2000년대 가을야구의 단골손님으로 자리잡았지만 한동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1년 V3 이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좌절한 것만 4번이다. SK와 삼성이라는 두 왕조앞에서 각각 두 번씩 고배를 마셨다. 지난 시즌에는 아예 포스트시즌조차 나가지못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14년의 기다림을 끝내준 김태형 감독은 선동열-류중일 감독에 이어 감독 데뷔 첫해에 우승을 맛보는 영광을 누렸다.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출신인 김 감독은 95년(선수)과 2001년(플레잉코치, 당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들지못했다)에 이어 한 팀에서 선수와 코치, 감독으로 모두 영광을 맛보는 최초의 기록도 남겼다.

반면 삼성은 역사적인 KBO의 통합 5연패의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좌절을 겪었다. 도박파문으로 제외된 투수 3인방의 공백이 마운드 운용과 팀 분위기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의 공백을 감안하더라도 삼성이 근래들어 이렇게 무기력했던 한국시리즈가 있었나 싶을만큼 실망스러웠던 것도 부정할수 없다. 내용을 살펴보면 4전 전패로 끝났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시리즈였다.

우려했던 삼성 마운드는 차우찬을 제외하고는 제몫을 해준 투수가 없었다. 윤성환의 공백과 차우찬의 불펜이동으로 빈 자리를 메워야할 피가로-클로이드-장원삼은 나란히 부진을 면치못했고 삼성은 시리즈내내 한 경기도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하지 못했다. 삼성의 한국시리즈 마운드 운용의 기본 전략이던 '1+1 선발야구'가 불가능해지면서 벤치의 대응도 기민함이 떨어졌다. 사실상 차우찬의 등판 시점을 가늠하는 것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차우찬 카드를 투입하고도 1점차로 석패한 4차전이 시리즈의 마지막 분수령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타선이었다. 투수진과 달리 타선은 전력공백이 전혀 없었음에도 극도로 부진했다. 역전승을 거둔 1차전에서만 9점을 뽑아냈을뿐, 나머지 2~5차전 4경기에서 뽑아낸 모든 점수를 합쳐도 7점이었다. 두산이 자랑하는 1~3선발을 전혀 공략하지 못했고 4번타자 최형우가 21타수 2안타, 타율 9푼 5리에 그치는 등 중심타선이 철저히 침묵했다. 류중일 감독의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대응도 아쉬웠다. 설사 투수 3인방의 공백이 아니었더라도 과연 삼성이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승리할수 있었을까 의구심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삼성은 2010년대들어 프로야구를 장기집권하고 있지만 올시즌에서 보듯 정규리그에서는 NC의 막판 추격에 진땀을 흘렸고, 한국시리즈에서는 두산에 말 그대로 완패를 당했다. 삼성과 타팀간의 전력차가 예전만큼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임창용-안지만-윤성환 등은 한국시리즈가 끝난 이후에도 징계 등의 문제가 남아있다. 이승엽, 최형우, 박한이, 박석민 등 삼성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축 선수들도 이제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올시즌 가능성을 보인 구자욱 등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다시한번 세대교체의 시기가 다가오고있는 삼성의 현 주소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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