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5 KEB하나은행 FA컵 결승 FC서울과 인천유나이티드의 경기. 인천을 3대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서울 선수들이 차두리에게 샴페인을 뿌리고 있다.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5 KEB하나은행 FA컵 결승 FC서울과 인천유나이티드의 경기. 인천을 3대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서울 선수들이 차두리에게 샴페인을 뿌리고 있다. ⓒ 연합뉴스


차두리(35,서울)가 자신도 구단에 모두 잊지 못할 은퇴 선물을 남겼다.

차두리의 소속팀 FC서울은 31일 홈구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5 KEB하나은행 FA컵 결승전에서 인천 유나이티드를 3-1로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서울이 FA컵에서 우승한 것은 지난 1998년 대회 이후 17년 만이다.

2013년부터 K리그에 입성한 차두리도 서울 유니폼을 입고서 처음으로 들어오린 우승 트로피였다. 차두리는 결승전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하여 차두리는 오른쪽 윙백으로 나서 공수에 걸쳐 맹활약하며 녹슬지않은 노장의 힘을 과시했다.

차두리는 이미 올해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날 FA컵 결승전이 차두리가 현역 선수로서는 공식적으로 뛰는 마지막 결승전이었다. 서울은 지난해도 FA컵 결승전에 올랐으나 성남의 벽에 막혀 우승에 실패했던 아쉬움을 깨끗이 털어냈다.

최용수 서울 감독도 2012년 리그 우승, 2013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이하 ACL)에 이어 이번 FA컵 우승으로 자신의 지도자 경력에 또 한번 의미있는 이정표를 추가했다. 다음 시즌 ACL 티켓을 확보하게 된 것도 빼놓을수 없다.

차두리는 한국축구 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으로 꼽히는 '2002 한일월드컵 세대'의 황혼을 장식하는 막내뻘 스타였다. 이천수(인천)나 김병지(전남)처럼 아직 현역에서 뛰는 선수들도 남아있지만 이중 2015년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한 선수는 차두리밖에 없다.

성인축구 입문 시절에는 남들보다 일찍 주목받으며 성장한 것같지만 사실 이후로 차두리의 축구인생은 굴곡이 더 많았다. 2006년과 2014년 월드컵에서는 최종엔트리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독일무대에서 진출해서는 포지션을 여러 번 바꾸는 우여곡절이 있었고, 소속팀들이 여러번 하부리그 강등을 맛보며 '강등 머신'이라는 웃지못할 수식어로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이미 한국축구의 전설로 자리잡은 부친이자 대선배 차범근의 존재는 차두리에게는 넘기 어려운 그림자와 같았다.

하지만 차두리는 또래 활동했던 어떤 축구 스타들보다도 '말년'이 잘 풀린 케이스이기도 하다. 원숙미가 더해진 30대를 넘어가며 수비수로서의 재능에 눈을 떴고, 공격력과 피지컬을 겸비한 풀백으로 진화하며 재평가받았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이외에도 2010 남아공월드컵 원정 최초의 16강, 2015년 호주 아시안컵에서 27년만의 결승진출 등 굵직한 축구사의 중심에는 항상 차두리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20대 시절에는 유난히 우승복도 상복도 없었던 차두리지만 2010년대들어서 진정한 전성기가 도래했다. 기성용(스완지시티)과 함께했던 스코틀랜드 셀틱에서는 2011-12시즌 마침내 꿈에 그리던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 성공했다.

이후 잠시 독일로 복귀했으나 개인사와 여러 가지 문제가 겹쳐 은퇴를 고민하던 시점에 FC 서울의 러브콜을 받고 전격적으로 K리그 진출을 결정했다. 차두리는 서울에서도 단숨에 부동의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며 클래스를 증명했다. 브라질월드컵 직후 새롭게 취임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표팀에도 복귀하며, 베테랑으로서 한동안 침체기에 빠져있던 대표팀을 재건하는데 기여했다.

K리그와 유럽무대를 두루 체험했고 국가대표 경력만 10년이 넘는 차두리의 존재감과 밝고 친근한 리더십은, 국내파-유럽파간의 위화감이 존재하던 대표팀내 분위기를 결속시킬수 있는 든든한 구심점이 되어줬다. 차두리는 3월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은퇴식을 치르고 명예롭게 국가대표 경력을 마무리했다.

아쉽게도 차두리는 서울에서는 3년간 리그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여기에 토너먼트에서도 2013 ACL, 2014년 FA컵, 2015년 호주 아시안컵 결승까지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무려 3연속 준우승에 그치며 말년에 '콩라인'(2인자를 의미하는 속어)을 제대로 탔다는 씁쓸한 평가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이번 FA컵 우승으로 그간의 아쉬움을 조금이나 풀며 유종의 미를 거둘수 있게 됐다. 차두리의 마지막 우승이자 사실상의 현역 고별전이 된 이날 결승전에는, 지난 국가대표 은퇴식때와 마찬가지로 차두리의 친부인 차범근 전 수원 감독도 자리를 함께하며 뜻깊은 순간을 함께하기도 했다.

차두리는 경고누적으로 결장하는 수원 삼성과의 36라운드 경기를 비롯하여 K리그 클래식의 남은 3경기에서는 더이상 뛰지않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번 FA컵 결승전이 '선수 차두리'의 현역으로서의 마지막 무대였던 셈이다.

젊은 시절 부친의 명성과 쟁쟁한 동료들의 틈바구니에서 빛을 발휘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긍정적인 자세를 통하여 그 어떤 슈퍼스타보다 행복한 말년을 보내며 아름다운 마무리에 성공한 차두리의 모습은 훈훈한 감동을 남긴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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