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정에서 자녀를 운동선수로 키우기 위해서는 그 부모의 허리가 휘고도 남는다고 한다. 그만큼 운동선수를 뒷바라지 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 힘든 고행(?)의 길을 택한 대단한 부모가 있다.

바로 육남매 중 네 자매를 모두 핸드볼 선수로 키우고 있는 김상준(43), 최은주(36) 부부. 전국 여자 핸드볼의 3대 명문인 정일여중을 찾아 이 부부의 네 자매를 만나봤다.

믿음, 진선, 효선, 민선이는 각각 2년 터울로 현재 전북 정읍에 위치한 정일여중 3학년과 1학년, 동신초등 5학년과 3학년에 재학 중인 핸드볼 선수다. 엄밀히 말하자면 막내인 민선이는 아직 어린 탓에 초등학교 4학년부터 할 수 있는 선수등록이 불가능해 정식 선수는 아니라고 한다.

기자는 너무 궁금했다. 어떻게 딸 넷 모두를 운동 시킬 결심을 하게 됐는지. 혹시 아빠나 엄마가 운동을 했던 경험이 있는 것인지.

"운동을 한 적은 없고 그저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시키게 됐어요."

아버지 김상준씨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최병장 정일여중 핸드볼 팀 감독 역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쌍둥이나 자매 세 명이 운동을 같이 한 경우는 있지만, 네 자매가 운동하는 일은 드물다. 내년에 막내 민선이마저 선수로 등록되면 아마 우리나라 최초이지 싶다"며 흔치않은 일임을 인정했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시키게 됐어요"

▲ 미래의 핸드볼 국가대표 꿈꾸는 네 자매
ⓒ 정읍시민신문
네 자매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날, 아직 동신초등학교에 강당이 마련되지 않은 관계로 정일여중 언니들과 동생들이 함께 훈련을 하고 있었다.

훈련은 매일 오후 3시에 초등부가 먼저 시작되고 한 시간 후에 중등부 훈련이 실시된다. 3시간가량 집중적으로 훈련을 하고 대회가 임박한 경우에는 오전 시간까지 할애한다.

현재 정일여중 핸드볼 팀에서 핵심 멤버로 활약 중인 맏언니 믿음이는 초등학교 때 왼손잡이를 찾던 선생님의 권유로 핸드볼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큰 키와 긴 손가락 덕분에 금방 핸드볼에 소질을 보였다고.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고요, 그냥 핸드볼이 너무 재밌었어요."

천상 핸드볼 선수가 될 운명이었나 보다. 믿음이 뿐만 아니라 동생들 모두 그렇게 핸드볼이 재밌을 수가 없단다. 믿음이가 핸드볼을 시작하자 둘째, 셋째, 막내가 모두 언니를 따라 핸드볼을 구경하며 자연스레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최 감독은 "믿음이는 운동도 잘하고 재치도 있는데 성격이 너무 온순해서 걱정"이라며 "적극적이고 활발할 필요가 있어 성격 개선을 위해 서운할 정도로 모질게 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믿음이 뿐만 아니라 네 자매 모두 너무 부끄러움이 많아 인터뷰 진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그나마 막내 민선이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핸드볼 공을 한 손으로 잡을 수 있다"고 자랑하는 등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연발해 언니들을 웃게 만들었다.

둘째인 진선이는 언니와 같은 팀에서 훈련 중이지만 아직 운동 경력이 짧아 교체 멤버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언니를 보면 동생인 제가 봐도 대단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언니랑 동생들이랑 모두 같이 국가대표가 됐으면 좋겠어요."

수줍어하며 말문을 연 진선이의 눈빛에서 언니와 동생들에 대한 애틋함이 엿보였다.

최 감독은 "사실 주전도 중요하지만 후보 선수들을 빨리 키워야 하는데 해마다 연초에 대회가 몰려있어 전반기에는 주전 선수 위주로 훈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실제 후보 선수들을 제대로 조련할 수 있는 시간은 후반기에나 생긴다"고 말했다.

핸드볼은 운동의 기본인 던지고 달리고 점프하는 것이 모두 포함돼 있어 기초 체력과 기능이 어느 정도 갖춰져야 선수로 활약할 수 있다. 최 감독은 "농구나 배구는 키가 크기만하면 일단 선수로서의 조건이 거의 갖춰진 상태라고 볼 수 있지만 핸드볼은 운동기능요소를 모두 갖춘 사람만이 자격요건이 된다"며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린 선수들이 많이 힘들어 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힘든 운동을 하는 딸들이 아빠는 그저 대견하기만 하다.

"아이들이 수줍음이 많지만 숙소에서 전화할 때 힘드냐고 물으면 하나도 안 힘들다고, 걱정 마시라고 하는 거 보면 벌써 다 커버린 것 같아요."

김상준씨가 흐뭇해하며 말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부모로서 딸을 손에 뭐 하나 묻히지 않고 곱게 키우고 싶을 텐데 왜 걱정이 없겠는가. 더구나 믿음이가 최근에 십자인대가 손상되는 큰 부상을 입어 김씨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루 빨리 수술을 해야 하는데 성장판이 아직 열려있어 섣불리 수술을 못하고 있어요. 어차피 계속 핸드볼을 할 거고 아직 더 자랄 수 있는 나이인 만큼 성장판이 완전히 닫힌 후에나 수술을 할 계획입니다."

김씨는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오가며 통원치료 받고 있는 믿음이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믿음이는 현재 16세 이하 주니어 대표로 선발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최근 잇따라 열린 대회에서 정일여중 핸드볼팀이 1위와 2위를 차지해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것. 오는 25일에 있을 소년체전에서 다시 한 번 좋은 성적을 낸다면 그 꿈이 현실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정읍에도 실업팀이 생겼으면...

현재 정읍 핸드볼은 동신초등학교, 정일여중, 정읍여고가 연계 돼 적어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 우수 선수가 타 지역으로 유출되는 염려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상황이 다르다. 국가대표로 선발 돼 국위선양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성인이 돼서 뛸 수 있는 실업팀이 없기 때문이다.

실업팀은 곧 선수들의 직장이다. 취재 중 만난 관계자들은 핸드볼로 전국에 지명도를 알리고 있는 정읍시에서 핸드볼 팀이 창단 돼 어린 선수들이 더 이상 진로 문제로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자신의 고향에서 마음껏 공을 던질 수 있는 것보다 더한 행복은 없지 않은가.

고등학교까지 훌륭하게 키워놓고 성인이 된 후에 유능한 우리 선수들을 타 지역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어린 친구들이 꾸준히 실력 향상에 매진해서 성인이 된 후에 한국 핸드볼의 위상을 높이고 핸드볼을 통해 삶의 보람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동신 초등학교 핸드볼 팀의 박종문 감독이 말한 이 제자들에 대한 희망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지역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 정읍지역신문 '정읍시민신문'에 실렸습니다.

2007-05-22 18:46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북 정읍지역신문 '정읍시민신문'에 실렸습니다.
핸드볼 정일여중 네 자매 성장판 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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