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은 '인류멸망 2012'라는 주제로 지난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마야 대예언' '대재앙 시나리오' 등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특별 편성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은 '인류멸망 2012'라는 주제로 지난 1월 말부터 2월 초까지 '마야 대예언' '대재앙 시나리오' 등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특별 편성했다. ⓒ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2012년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해입니다. 총선과 대선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전혀 다른 성격의 '멸망'이라는 키워드가 있죠. 정권이 바뀌어 세상을 변화시킨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요, 그 세상이 끝난다는데. 멸망은 모든 의지를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는 파괴력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이하 NGC)은 '인류멸망 2012'라는 타이틀로 관련 프로그램들을 집중적으로 방송하고 있습니다. <인류멸망 대예언 2012> <네이키드 사이언스3 인류 멸종 시나리오> <인류 재앙 가상 시나리오> <인류멸망을 대비하는 사람들>까지. 이 정도면, '편성표'라고 쓰고 '묵시록'이라고 읽어야 해요.

그도 그럴 것이, 올해는 고대 마야인들이 예언한 인류 멸망의 해입니다. 마야 달력의 주기로는 정확히 2012년 12월 21일이 종말의 날이죠.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론과 일부 기독교적 교리에 따른 휴거, 2000년 이후의 연도를 컴퓨터가 인식하지 못해 대규모 기술 대란이 올 것이라는 Y2K 등 다양한 인류 멸망설이 빗나간 후, 두 번째 위기가 닥쳤습니다.

마야인의 예언대로라면 이제 우리에겐 10달 정도가 남았네요. 10달이라,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동안 도덕 교과서대로 살아온 청교도적인 삶이 억울해서라도, 자유연애가로 살아볼까 생각해보니 능력이 없습니다. 그동안 먹어보지 못한 요리와 정말 사고 싶었던 고가의 물건에 돈을 쓰자니, 당장 그럴 돈이 없어요. 피할 길이 없는 예언 앞에는 대비할 수 있는 일도 없어 보입니다.

'인류멸망'은 2012년 가장 잘 팔리는 상품

그럼, 좀 더 과학적이면서도 시간적 여유가 있는 천재지변과 자원고갈에 의한 인류멸망 시나리오에서는 대비책을 강구할 수 있을까요. NGC <인류 재앙 가상 시나리오>는 '석유가 사라진다면?' '인구수가 두 배가 된다면?' '지구의 자전이 멈춘다면?' '태양이 더 뜨거워진다면?'과 같은 가정 하의 상황을 리얼하게 재연했습니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예로 들면, 한없이 뜨거워진 태양열 아래 지구는 과열되고 정상체온이 3~4도만 올라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인간에게도 위기가 닥칩니다. 강렬한 햇빛 아래 땅 위의 물은 마르고 빨아들인 수증기로 인해 열대성 폭우로 이어지는 등 천재지변이 일어납니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모든 것이 태양열에 불타버리는 비극으로 끝을 맺습니다. 뭐, 이쪽도 살 수 있는 뾰족한 방도는 없는 것 같네요. 

 보람보라는 닉네임을 가진 누리꾼의 블로그(http://blog.naver.com/handina486)에서 NGC <인류 재앙 가상 시나리오> '태양이 더 뜨거워진다면?'편을 보고 그린 재밌는 일러스트를 발견했다.

보람보라는 닉네임을 가진 누리꾼의 블로그(http://blog.naver.com/handina486)에서 NGC <인류 재앙 가상 시나리오> '태양이 더 뜨거워진다면?'편을 보고 그린 재밌는 일러스트를 발견했다. ⓒ 보람보(handina486)


그런데 이 시나리오의 가장 큰 반전은 태양으로 인한 재앙이 수십억 년 후에나 일어날 일이라는 겁니다. 사실은 경고와 대비를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2012년 종말론의 근거로 읽힐 수 있는 것은 그럴듯하게 '인류멸망'의 키워드로만 모아놓은 특별편성 덕분입니다.  

그러니까 '인류멸망' 아이템은 올해가 대목이에요. 2012년 12월 21일에 다가갈수록 가장 잘 팔릴 겁니다.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보다 효과가 좋은 판촉 행사는 없으니까요. 12월 22일까지 우리가 살아있다면, 쇼는 겸연쩍게 막을 내리거나 다음 종말에 대한 담론을 다시 쌓기 시작하겠죠. 1999년 떠들썩했던 종말론 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밀레니엄 새해를 맞은 것처럼.

12월 22일 종말이 결국 오지 않았을 때, 우리가 던져놓은 삶의 의지 그리고 사재기한 쌀과 라면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상품에 현혹되지 말아요. 12월 21일까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마야인의 달력이 아니라, 당장 내일 할 일을 적은 스케줄러입니다. 그때까지 잘 살아봅시다. 모두에게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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