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나이로비 공항의 대형 화재 사고로 모든 운항이 마비

케냐 나이로비 공항의 대형 화재 사고로 모든 운항이 마비 ⓒ 월드휴먼브리지


|오마이스타 ■ 글/가수 자두| "언제 출국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못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NGO 단체 월드휴먼브리지와 함께 의료 봉사 및 지역 사역을 돕기 위해 케냐로 떠나기로 한 42명의 발목이 공항으로 향하기도 전에 붙잡혔다.

공교롭게도 우리 팀이 출국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그 날, 케냐 나이로비 공항의 대형 화재 사고로 모든 운항이 마비된 것이었다. 공항으로 향하던 중 발길을 돌렸고, 항공사의 연락만을 기다리는 '5분 대기조'가 되어 싸 놓은 짐을 그대로 둔 채 하루를 보냈다. 마침내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출국 여부에 대한 연락을 받았고, 하루의 일정이 늦춰진 상태로 우리는 떠날 수 있게 됐다.

쉽지 않은 출발에 좀처럼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내게 있어 모든 것이 낯설었기 때문에 오히려 가는 내내 더욱 팽팽해지는 것만 같았다. 아프리카 대륙을 밟는 것이 처음인 데다, 이 경험 없고 정보 없음의 불안함 가운데, 42명 중 단 한 명의 팀원과도 친밀함이라던가 관계가 없이 혼자 덩그렇게 껴 있는 서먹함과 서름함이 사실 내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물론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문제로, 모든 분들의 좋은 인품과 케냐 땅의 에너지 덕에 나는 이방인이 아닌 것처럼 모든 일정들 가운데 잘 머물 수 있었다.)

13시간의 비행시간에 직항이었던 터라 아프리카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 한 채 어느덧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다. 전날의 화재 사고의 여파로, 터미널이 아닌 활주로 근처에 천막으로 임시 출입국 관리소가 세워져 있었다. 어떻게 절차들을 밟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분주한 심사들을 얼떨결에 다 마치고 커다란 공동의 짐들과 각자의 짐들과 함께 쏟아지듯 나오게 됐다.

그제야, "Kenya다!"

13시간 걸려 아프리카 도착, 다시 16시간 버스로 이동

 가르센 골반티 초등학교에서 봉사를 앞두고

가르센 골반티 초등학교에서 봉사를 앞두고 ⓒ 월드휴먼브리지


 아프리카 케냐 가르센 지역 아이들과 함께

아프리카 케냐 가르센 지역 아이들과 함께 ⓒ 월드휴먼브리지


8월이 건기로 겨울인 케냐답게 이른 새벽 공기는 무척이나 찼다. 아프리카 땅을 밟자마자 '춥다'라고 반응함이 참 생소했다. 아프리카를 참 단면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나는 허를 찔렸다. '엄청나게 더운 땅'이라는 학습된 좁은 인식이 깨지는 시작이었다.

13시간 비행을 마치니 곧장 16시간 달려야 할 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다. 우리의 일정을 시작할 곳은 나이로비에서 한참 떨어진 가르센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포장된 도로 위를 얼마나 달렸을까, 비포장도로가 끊임없이 나오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참 이채로웠다. 극히 건조해 보이는 공기와 환경과는 모순적으로 온 땅을 덮고 있는 넘치는 에너지가 바로 이곳이 아프리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한참을 달려도 흙먼지만 가득한 너른 벌판이 몇 시간씩 펼쳐지기도 하는가 하면, 현대식이라고는 하나 그마저도 우리에게는 오래되어 보이는 사각진 건물들이 실제가 아닌 듯 강렬한 색감의 옷들을 입고 툭툭 서 있기도 하고, 양떼와 소떼 등 가축 떼를 바로 눈앞에서 마주함은 물론 기린, 얼룩말, 당나귀, 원숭이 등의 동물들의 길가 출현은 현실감 없도록 생소했다. 인공 자연에 익숙해진 내 모든 감각들이 비로소 깨어나는 듯 했다.

총 두 번 쉬었는데, 처음 멈춘 식당은 마치 영화에서 본 세트 같은 느낌이었다. 군데군데 이가 나가고 손때 묻어 있는 접시들과 찻잔들. 한 무리 지어 나타난 피부색 다른 우리들의 등장에 눈을 못 떼던 아프리칸들. 이들이 즐겨 마신다는 밀크티를 한잔 가득 채워 마시며 연발한 "맛있다!" 탄성들. 차가운 얼음물 한 잔이 그리울 틈도 없이 달리고 달리고 종일을 또 달려 밤이 되자 가르센 지역에 도착했다.

 골반티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모두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나무 구조 위에 이긴 진흙을 발라 만든 장소였다.

골반티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모두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나무 구조 위에 이긴 진흙을 발라 만든 장소였다. ⓒ 월드휴먼브리지


케냐에서의 첫 날 숙박은 매우 너그러웠다. 호텔에서 하룻밤 머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우리가 기본적으로 떠올리는 각진 호텔과는 매우 다른 형태의 '펜션' 느낌이었지만 엄청난 호강이었음은 확실하다.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을 만 이틀 만에 만난 것에 환호를 하고야 말았다.

외관과는 달리 물이 잘 나오지 않는 방도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 방은 비교적 물도 잘 나오고 불도 잘 들어오는 끝내주는 편리함이 있었다. 침대마다 천장으로부터 떨어져 사방을 막는 캐노피 모기장이 로맨틱함까지 느껴질 만큼 참 인상적이었다.

날이 밝아, 채 풀지도 않은 짐들을 다시 꾸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머물 베이스캠프로 이동했다. 버스로 비포장도로를 두어 시간 이상 더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워낙 아프리카 땅이 넓은 이유도 있지만, 도로 개발이 잘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유일한 길로 다니느라 이동 시간이 일정의 반이었음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도착한 게스트 하우스는 방들이 있다고는 하나 굉장히 열악했고,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좁은 화장실과 바로 붙어 있어 냄새는 물론 위생적인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감사함은 마을의 환경들에 비해 이곳이 얼마나 잘 갖추어진 곳인지 이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발전기를 돌려 전기와 물을 공급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주 잘 아껴서 시간 내에 잘 이용하고 사용해야 함에 일사불란했다.

짐들만 던져 놓고 바로 골반티 마을로 향했다. 다음날 일찍부터 마을에서 의료 봉사 일정을 진행해야 했기에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청소 및 세팅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스트 하우스로부터 또 차로 두 시간 정도 이동해야 하는 거리였기 때문에, 또한 해가 떨어지면 이동의 통제를 구역마다 엄격히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젖먹이 아기부터 노인까지…서너 시간 동안 걸어온 사람들

 나는 '샘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간호사 스텝들과 함께 접수실로 배치 받았다.

나는 '샘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간호사 스텝들과 함께 접수실로 배치 받았다. ⓒ 월드휴먼브리지


 1년에 한 번 정도 기회가 찾아오는 이 의료 혜택을 받기 위해 3시간이고 4시간이고 이웃 마을로부터 걷고 걸어서 온 사람들의 기다림

1년에 한 번 정도 기회가 찾아오는 이 의료 혜택을 받기 위해 3시간이고 4시간이고 이웃 마을로부터 걷고 걸어서 온 사람들의 기다림 ⓒ 월드휴먼브리지


NGO 단체 팀앤팀을 통해 지어진 '골반티 초등학교' 건물이 의료 사역이 펼쳐질 장소였다. 우리가 도착할 때에 맟춰 마을 아이들과 몇 가족들이 그 곳에 모여 있었다. 몇 마디 익힌 스와힐리어로 "잠보(Jambo·안녕)"를 수없이 외쳐가며 인사를 나눴다. 세상을 다 담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들의 눈망울이 긴긴 이동의 여독을 한 번에 풀어줬고, 몇 명의 청년들은 교육의 혜택을 받아 영어를 사용할 줄 알았기에 소통에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에는 낯설고 부끄러워하던 아이들이 우리의 최신 휴대폰과 태블릿 기기들에 반응을 보여주는 덕에 함께 사진도 찍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진료실로 사용할 교실들을 쓸고 닦고, 들고 나르고 하는 청소를 마치니 머리 위로 해가 뚜욱 떨어지고 있었다. 다시 몇 시간을 이동해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고, 방마다 씻기 위한 '전략'들이 펼쳐진 밤이 무사히 지나갔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채비를 하고 골반티 초등학교로 바로 움직였다. 아침 일찍부터 각 마을에서 소식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로 그 넓은 땅이 가득 찼다. 젖먹이 아기부터 부축 받아 움직여야 하는 노인들까지 저마다의 통증과 고통과 불편한 곳들을 치료 받기 위해 길고 긴 줄을 만들어, 그보다 더 긴 기다림을 견디고 있음에 마음이 요동을 쳤다.

더욱이 1년에 한 번 정도 기회가 찾아오는 이 의료 혜택을 받기 위해 3시간이고, 4시간이고 이웃 마을로부터 걷고 걸어서 온 사람들의 기다림은 가슴 뭉클하다는 표현으로 설명하기엔 너무 모자란 안타까움이 있었다. 내 모든 마음과 힘을 쏟으리라.

각 진료실마다 의사 선생님들과 보조하는 스태프들로 구성되어 배치되었고, 나는 '샘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대학생 간호사 스태프들과 함께 접수실로 배치 받았다. 영어와 스와힐리어에 능한 샘 아프리카 친구들은 사람들의 증상을 체크해서 진료실을 배치해 주는 역할을 맡았고, 내게는 진료를 받는 모든 이들의 체중을 재는 단순 작업이 주어졌다.

쉴 새 없이 한 명 한 명의 체중을 디지털 체중계로 재서 종이에 기록해야 했는데,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체중계의 정체를 몰라 어떻게 올라서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더러는 경험이 있어 체중계의 정확한 발 위치를 알아 척척 잘 올라서고, 다음 사람들에게 스와힐리어로 설명해 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체중계 앞에서와 위에서 내 손을 잡고 스텝을 밟는 춤사위가 벌어지는 즐거운 해프닝이 종일 이어졌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엄마의 품에 안겨 함께 재고, 아이를 받아 내가 잠시 안고 있는 동안에 엄마의 무게를 재고, 그 후에 뺄셈으로 아기의 무게를 계산하고, 덕분에 모든 젖먹이 아기들을 다 품에 안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선물로 누렸다. 얏호! 잠깐 주어진 점심시간에 전투 식량으로 끼니를 채우는 것 이외에 종일 쉴 틈 없이 치료 일정이 진행됐다.

매일 감사함 모르고 사는 나, 한없이 작아졌다

 'Jambo'라는 간단한 케냐의 노래를 50번은 불렀나 보다.

'Jambo'라는 간단한 케냐의 노래를 50번은 불렀나 보다. ⓒ 월드휴먼브리지


 접수처에서의 역할을 마친 나는 아이들과 노래하며 뛰어 다니는 놀이를 맡았다. 기타를 꺼내 들자 순식간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접수처에서의 역할을 마친 나는 아이들과 노래하며 뛰어 다니는 놀이를 맡았다. 기타를 꺼내 들자 순식간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 월드휴먼브리지


각 진료실에서 선생님들이 환자들의 마무리를 하시는 동안, 접수처에서의 역할을 마친 나는 아이들과 노래하며 뛰어 다니는 놀이를 맡았다. 기타를 꺼내 들자 순식간에 아이들이 몰렸다. 흔들어 소리를 낼 수 있는 작은 손악기들을 여러 개 꺼낸 것에 아이들이 서로 먼저 만지겠노라 한바탕 난리법석이 벌어진 통에 하마터면 위험할 뻔도 했으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에스겔이라는 총기 가득한 10대 리더십의 도움으로 질서 정연하게 노래와 놀이를 진행할 수 있었다.

'잠보(Jambo)'라는 간단한 케냐의 노래를 50번은 불렀나 보다. 모든 아이들이 악기를 흔들며 노래할 수 있도록 순서를 정해 마냥 뛰며 돌며 함께 노래했다. 몇 바퀴를 돌고 돌아도 절대 지치는 기색이 없는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 덕에 몸을 사릴 틈도 없이 마냥 신명나게 즐겼다. 더욱이 놀랐던 것은 역시 아프리칸들의 리듬감이었는데, 어린 아이들이 작은 손악기들로 만들어 내는 비트와 맨몸으로 만들어 내는 동작들은 정교한 가공미에 익숙해진 내 귀를 청량감으로 씻어주는 거칠고 강한 생명력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하루의 시작으로 골반티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모두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나무 구조 위에 이긴 진흙을 발라 만든 장소였다. 아무런 장비도, 갖추어진 무엇 하나 없는 곳이었지만 그곳엔 진짜 기쁨이 있었고 진짜 감사가 있었음에, 풍요로움 가운데 많은 감사를 놓치고 사는 내 모습을 돌아보며 한없이 작아짐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기쁨과 감사를 그들로부터 가득 채움 받고 전날과 동일한 일정들을 이어갔다.

체중을 재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긴 것이 즐거웠고, 내가 머무는 교실 창가에 아이들이 달라붙어 "기타~ 기타"를 외치며 어서 노래하며 뛰어 놀자는 신호를 계속 보내옴이 어찌나 귀엽던지. 언어를 뛰어넘어 음악으로 끈끈해진 나름의 친밀함의 싸인들 만으로도 만족감이 가득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악기를 맡기고 직접 연주해 보도록 했는데 그 집중력이 어마어마했다. 에스겔에게는 기타 코드 몇 개를 바로 알려주고 연습하도록 짧은 시간을 줬더니 마치 스펀지처럼 쭉쭉 흡수하는 재능과 가능성에 나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지니고 온 악기가 충분하지 않았음에 아쉬울 따름이었다. 헤어질 때 에스겔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서슴없이 "뮤지션!"이라고 한 대답이 아직도 귓가에 맴맴 돈다. 그 케냐 소년의 꿈을 나도 함께 꾸기로 하며 손을 꼭 잡고 내 믿음을 얘기해 줬다.

"Your dream will come true!(네 꿈이 이루어질 거야)"

 '동아프리카 지구대' (Great Rift Valley) 전망대에 잠시 멈춰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너무나도 드넓었다.

'동아프리카 지구대' (Great Rift Valley) 전망대에 잠시 멈춰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너무나도 드넓었다. ⓒ 월드휴먼브리지


 '동아프리카 지구대' (Great Rift Valley) 전망대

'동아프리카 지구대' (Great Rift Valley) 전망대 ⓒ 월드휴먼브리지


다음날은 나이로비까지 종일 이동하는 하루였다. 16시간 흔들리는 버스를 타는 것도 몸이 적응을 한 듯 멀미 한 번 없이 잠만 잘 잤다. 창밖 풍경 감상은 어찌 그리 해도 해도 질리지 않고 마냥 새로운지, 특별히 케냐의 밤하늘은 별이 심기고 별이 열린 '별밭' 같아 아름다움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나이로비에 올라와 수도의 문명을 채 마주하기도 전에, 이어지는 다음 하루는 자연 속에서 보내는 일정으로 채웠다. '동아프리카 지구대'(Great Rift Valley) 전망대에 잠시 멈춰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너무나도 드넓어서 협곡이라는 용어가 실감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에서 가장 긴 협곡으로 이스라엘에서부터 모잠비크까지 약 7700km에 이른다고 하니 넓고 넓은 초원으로밖에 보일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지금도 지각 변동으로 계속 갈라지고 있다고 하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몇시간을 더 달려 '나쿠루 국립 공원'에 도착했다

ⓒ 월드휴먼브리지


 얼룩말은 'black & white'가 아니라 'brown & white'였다.

몇시간을 더 달려 '나쿠루 국립 공원'에 도착했다. ⓒ 월드휴먼브리지


몇시간을 더 달려 '나쿠루 국립 공원'에 도착했다. 세계 최고의 홍학(플라밍고) 서식지로 유명하나, 최근 나쿠루 지역에 내린 비로 땅이 물에 많이 잠겨 우리는 정작 큰 무리의 홍학들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버팔로, 코뿔소, 기린, 온갖 형형색색의 새들, 원숭이들이 곳곳에서 터를 지키고 있었다.

너무 보고 싶었던 사자와 하이애나는 그날따라 어디 깊이 들어갔는지 끝끝내 만날 수 없었지만, 정말 신선한 충격으로 하나 내게 새로웠던 것이 있는데, 얼룩말은 'black & white'가 아니라 'brown & white'였다는 것! 가까이서 보니 검정색이 아닌 줄무늬에 상당히 놀라서 호들갑을 떨었더랬다. 나만 몰랐던 것인가...

저녁에 나이로비로 돌아와 숙소에서 '냐마초마' 파티를 열었다. '냐마초마'란 아프리카식의 바비큐인데, 우리는 염소 고기로 한껏 배를 채웠다. 염소 고기가 처음이라 냄새가 날까 걱정했더랬는데 웬만한 돼지고기 바비큐보다 훨씬 고소하고 담백해서 몇 접시나 해치웠는지 모른다.

 가르센 지역 아이들과

가르센 지역 아이들과 ⓒ 월드휴먼브리지


다음날부터 이어지는 일정은 대망의 마사이 마을로 향하는 것이었으나,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나는 일행과 함께 떠나지 못하고 나이로비 숙소에 남아 휴식을 취하며 젊은 선교사님 부부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우리의 숙소는 매우 보안이 철저한 타운 안에 있었는데, 나이로비의 치안 상황이 매우 위험하여 사고도 빈번하고 정보 없이 자유 여행은 어렵다고 했다.

낮에 마주한 나이로비 중심부의 모습은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한 나라 안에서 물과 전기 없는 흙먼지 가득한 곳에 있다가 문명의 한복판으로 들어선 것이 어찌나 낯설었는지 모른다. 쇼핑몰의 편의 시설들은 너무 잘 갖춰져 있었고, 물가도 비쌌고, 달라도 너무 다름에 모든 현대식 시스템들이 어색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마치 한국의 청담동을 떠올리게 만드는 인테리어와 가격대의 카페에서 일주일 만에 얼음을 맛볼 수 있게 되었는데 입안에서 얼음이 녹는 것이 아까울 지경으로 반가웠다. (그 덕에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된 지금까지 나는 매일 얼음을 아그작 아그작 깨물어 만끽하는 사치의 버릇을 즐기게 되고 말았다.)

그 유명한 케냐의 자바 하우스에서 봉사자가 아닌 외국인 관광객들 중 한 명으로 진한 커피와 기름진 음식들로 배를 가득 채우는 여유를 맘껏 누리기도 했다. 또, 예상치 못했던 자유 일정 중 감사하게도 금요일이 껴서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만물 재래시장이라 할 수 있는 '프라이데이 마사이 마켓(friday maasai market)'을 체험할 수 있는 행운이 주어졌다.

'빌리지 마켓'이라는 대형 쇼핑몰 안의 주차장 한 귀퉁이에 펼쳐진 장터는 그 색감과 아기자기함과 에너지 때문에 조악함 마저도 매력적인 흥분되는 풍경이었다. 각종 수공예품들을 늘어놓고 파는데, 가격 흥정이 천차만별이다. 돌로 만든 우스꽝스러운 사자 인형과, 나무를 깎아 만든 동물들의 만찬 인형 셋트 등을 선물로 샀는데, 처음 그들이 불렀던 가격에서 자그마치 1/3까지 깎아내린 재미가 솔솔 흥겨웠다.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만물 재래 시장이라 할 수 있는 'friday maasai market'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만물 재래 시장이라 할 수 있는 'friday maasai market' ⓒ 월드휴먼브리지


 각종 수공예품들을 늘어놓고 파는데, 가격 흥정이 천차만별이다

각종 수공예품들을 늘어놓고 파는데, 가격 흥정이 천차만별이다 ⓒ 월드휴먼브리지


극과 극을 경험하니 한국으로 돌아올 때가 다 되었다. 열흘간의 시간 동안 케냐 땅의 끝에서 끝을 밟고, 원시에서 문명까지 끝에서 끝을 맛보고, 맛보았다 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들 가운데 너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여정이었다.

물도 전기도 부족하다 못 해 없이도 지내야 했던 그 짧은 며칠의 어려움 가운데 마음은 두 소리를 냈더랬다.

'없어도 살겠구나'
'불편해 죽겠구나'

우리는 지금
얼마나 풍요로운가.
얼마나 풍족한가.
얼마나 편리함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매일 감사하지 못했던 불편한 나의 현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해 준 케냐.
아이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로 마무리하고 싶다.

Jambo Jambo Bwana
(안녕, 안녕 여러분.)

Habari Gana Mzuri Sana
(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요.)

Wageni Mwakari Bishwa
(여러분 모두 환영해요.)

Kenya Yetu Hakuna Matata
(우리 케냐에서는 걱정이 없어요.)

"하쿠나마타타!!"

▲ 자두 가수 자두, 아프리카 케냐 가르센 지역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월드휴먼브리지



자두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 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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