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멍청이, 생각 없는 놈, 닥치고 꺼져, 말하지 마!!!… 이 재수 옴 붙은 놈아!!!"

성인이 된 남자가 여자에게 이런 소리를 듣고 있을 땐 여자에게 뭔가를 심하게 잘 못한 것이다. 여자에게 심하게 당하고 있는 남자의 표정은 엄혹한 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자아낸다.

진짜 미안해하는 표정인지, 아니면 이 상황을 그저 모면하기 위해 뉘우치는 척 하는 표정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은 남자들은 대부분 현실에서 발을 떼고 허공을 디디면서 살고 있다. 자신의 탁월한 능력과 함께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욕설에 가까운 대사는, 현실을 직시하는 여자가 정신 못 차리는 남자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기도 하다.

영화 <인사이드르윈> 포스터 르윈이 내팽개치고 떠난 소극장과 교수, 진을 다시 찾을 때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던 것처럼 다시 찾은 교수님댁의 고양이도 다른 고양이로 바뀌어 있다.

▲ 영화 <인사이드르윈> 포스터 르윈이 내팽개치고 떠난 소극장과 교수, 진을 다시 찾을 때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던 것처럼 다시 찾은 교수님댁의 고양이도 다른 고양이로 바뀌어 있다. ⓒ CBS필름

영화 <인사이드 르윈>은 이렇게 시작한다. 담배연기가 꽉 찬 소극장의 무대에서 연인이었던 여자가 다른 남자와 화음을 넣으면서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관객인 우리에게는 그들의 하모니가 아름답고 가수들의 표정도 깔끔하다. 저들처럼 차려 입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이 노래 저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살면 될 듯도 싶은데, 르윈은 그게 싫다. 자신이 하는 음악에 대한 자부심, 열정이 현실의 고통을 월등히 능가하기 때문이다.

이십 대에서 삼십대로 넘어가는 시기까지는 세상이 만만해 보인다. 세상이 좀 작아 보이고 본인이 손대면 하는 것마다 잘 될 것 같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맞이한 현실은 예상과 전혀 다르다.

뜻대로 되는 일은 정말이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인내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맞닥뜨린 현실의 높이와 무게를 대하면서 감내해야 하는 그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나머지 인생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르윈은 여자와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는다. 아무도 그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다행인 것은 그도 그다지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왼손으론 기타 목의 코드를 쥐고 오른 손가락으로는 쉼 없이 기타 줄을 튕기며 입으론 노래를 부른다. 거칠지만 짙은 호소력이 느껴지는 음색이다. 스스로에게마저 도취될 만하다. 추운 겨울날 쫓겨나듯 나온 바(BAR)에서 시작된 겨울코트도 없는 르윈의 일탈은 외롭고 쓸쓸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게 인생인 것을….

르윈은 원래 듀엣이었다. 같이 노래하던 친구는 왠일인지 자살했고, 르윈은 졸지에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음반제작자는 상품가치 제로의 르윈을 외면하고, 소극장에서도 까탈을 부리는 르윈을 곱게 봐줄 리 없다. 아니 르윈은 그런 작은 무대가 만족스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재되어 있는 스트레스는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분출된다. 무대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신인가수에게 헛소리를 날리고, 나이든 교수님의 아내에게까지 욕설을 퍼붓는다. 죽은 동료와 듀엣으로 부르던 노래가 트라우마가 되어 그를 괴롭혔던 것일까.

 한때 르윈의 연인이었던 진은 새 남자친구 짐을 만나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보인다. 평범한 여자친구의 모습으로 나타난 <위대한 개츠비>의  헤로인 캐리멀리건이 반갑다.

한때 르윈의 연인이었던 진은 새 남자친구 짐을 만나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보인다. 평범한 여자친구의 모습으로 나타난 <위대한 개츠비>의 헤로인 캐리멀리건이 반갑다. ⓒ CBS필름


영화는 지금도 거리를 헤매고 있을 '젊은 르윈'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건넨다. '누구도 자신을 쳐다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지만 당신이 우리의 미래임으로 우리는 절대적으로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젊은 날, 실패로 보이는 현실이 결국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밑거름이 될 거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영화 속 교수 부부와 소극장의 주인, 그리고 그의 연인이었던 '진'이 르윈에게 하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히치하이크로 시카고까지 먼 길을 돌아 온, 르윈이 갈 곳은 다시 욕설을 퍼붓고 떠난 교수의 집과 전 여친의 집뿐이다. 교수의 아내는 무조건 르윈을 끌어안고 다시 찾아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교수의 엄한 표정 속의 온정 어린 눈빛도 아내의 말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헤어진 여친 '진'은 노래할 수 있도록 르윈에게 여러모로 힘을 준다. 따뜻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호함도 있다. 르윈이 조롱했던 소극장의 무대에서 노래하던 신인가수지만 중년의 여인, 그녀의 남편이 르윈을 찾아 극장 뒷골목에서 르윈을 흠씬 두들겨 패준다.

며칠의 고행 뒤에 다시 찾은 무대에서 르윈은 듀엣시절의 노래를 부른다. 세상과 타협이 아닌 화해를 하는 순간이다. 내 탓도 아니지만 네 탓도 아닌 일들에 너그러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다시 현실의 세계를 찾은 르윈을 교수의 아내와 진, 그리고 어느 중년의 주먹이 환영한 것이다.

 르윈이 새 삶을 찾아 떠나는 길은 그의 분신 기타가 늘 함께 한다.

르윈이 새 삶을 찾아 떠나는 길은 그의 분신 기타가 늘 함께 한다. ⓒ CBS필름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스타는 그 '누구'들 틈에서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코엔 형제는 영화 <인사이드르윈>을 통해 우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스포트라이트 없이도 우린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삶이 실패라고 역설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뒷골목서 중년의 사나이에게 얻어터진 르윈은 노래하는 밥 딜런이 있고, 사랑했지만 다른 남자의 연인이 된 '진'이 있으며(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혹 재회의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 깽판을 쳐도 봐주는 주인이 있는, 극장 안으로 다시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인사이드르윈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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