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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훈 회계사(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는 12월 4일부터 15일까지 삼성의 변칙증여 실상에 관한 연재기사를 쓸 예정입니다. 이 기사는 그 다섯번째 입니다.>


삼성자동차는 이건희 회장의 평소 숙원사업이었습니다. 89년 7월 자동차산업이 규제대상에서 풀리면서 본격적인 사업준비에 들어간 삼성은 그 후 4년 뒤인 93년에 자동차업계의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승용차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당시 상공부와 경제전문가들은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삼성이 승용차사업을 시작하면 중복·과잉투자 문제로 국내 메이커중 어떤 회사도 세계 일류 자동차회사가 되지 못할 뿐 아니라, 기술자가 모자라는 상황에서 과열 스카우트 마저 일어날 염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삼성자동차가 설립된 이후 기존업계의 자동차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과정에서 분쟁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삼성자동차 직원들로부터 '스카우트 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무책임하게 내버리느냐'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삼성자동차의 진출이 여론에 밀려 벽에 부딪치자, 부산지역 출신 정치인 몇몇이 삼성에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게 됩니다. 이는 당시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강하게 일던 삼성자동차 부산유치 여론에 편승하자는 것입니다.

지역주의에 편승해 자동차 숙원사업 이루다

부산시는 이미 93년말 삼성자동차 부지로 신호공단을 제의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 삼성은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평당 90만원이나 하는 땅값에 지반이 약해 자동차공장으로는 부적격한 이곳보다는 평당 15만~20만원 정도에 인력확보나 물류비용 면에서도 훨씬 유리한 평택 등 서해안 충청권을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숙원사업을 이루기 위해선 부산시민들의 지원이 필요했던 삼성으로선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건희 회장의 참모진이 너무 무리한 사업계획이라고 만류하였으나, 이건희 회장의 자동차사업에 대한 바램이 너무도 커 독단으로 결정했다는 후문입니다. 그 후, 94년 4월26일 삼성은 일본 닛산과 승용차 기술도입 계약을 맺었고, 95년 3월에 드디어 이건희 회장이 꿈에도 그리던 삼성자동차가 설립되었습니다.

이처럼 삼성자동차는 이건희 회장의 개인적인 바램과 정치적 논리에 의해 탄생한 돌연변이였습니다. 그런데, 삼성자동차의 돌연변이적 행태는 삼성자동차의 설립자금 조달과정에서도 보여집니다.

1997년 1월 30일, 삼성자동차와 그의 대주주인 삼성전자, 삼성전관, 삼성전기 등은 아일랜드에 주사무소를 두고 있는 Pan-Pacific Industrial Investment(PP)사 사이에 삼성자동차에 대한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 합작투자계약의 내용은 PP가 삼성자동차에 미화 2억8,820만달러를 신규출자하고 그 대가로 삼성자동차의 지분 31%를 가지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일반적인 합작투자계약과는 다른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Put Option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이는 PP로부터 출자금을 제공받으면서 출자금에 일정한 이자율(8.8325%)을 보장해주고 삼성자동차의 상환능력에 의심이 되는 상황이 초래할 경우에 PP가 상환을 요구하면 출자금 원금에 이자까지 계산하여 삼성자동차와 그 대주주가 돌려주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국민, 소액주주들에게 4조3천억원의 부채를 남기다

또한, PP는 의결권을 비롯하여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주주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기로 약정하였습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이 계약은 말이 합작투자계약이지 사실상 차관도입계약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삼성은 왜 이러한 위장계약을 체결하였을까요? 상업차관에 대한 까다로운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서입니다.

한편, PP는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하고 10일만에 채권을 발행하여 위의 투자금액을 전부 조달하였습니다. 그런데, PP는 96년 11월 21일에 자본금 1,200달러(한화 약일백만원)로 설립된 회사입니다. 자본금 1,200달러의 신생회사가 단기간에 2억8천만달러를 조달하였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로 인해, PP는 삼성이 만든 Paper Company(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가공의 회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에 이릅니다.

결국, 삼성자동차의 투자자금 조달은 '가공회사의 설립 - 가공회사를 통한 차관도입 - 차관을 합작투자로 위장하기 위한 허위계약서의 체결 - 정부당국에 허위신고'등의 일련의 불법적인 행위로 이루어진 것이라는게 참여연대의 주장입니다.

삼성자동차는 이건희 회장의 개인적인 야심과 정치적 논리에 의해 탄생하였으며 불법적으로 그 투자자금이 조달되었다는 오명을 쓴 채, 국민과 소액주주들에게 4조3천억원의 부채만 남기고 2000년 9월 1일 프랑스의 자동차회사 르노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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