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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북부의 거대한 땅덩어리 스칸디나비아 반도. 이곳은 한때 바다를 지배했던 바이킹의 주무대로써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3대 강국이 번갈아 가며 지배권을 거머쥐었던 영욕의 땅이다. 또한 북위 55∼71°에 있기 때문에 여름에는 해가 길어 백야현상이 나타나고, 겨울에는 해가 뜨지 않는 등 신비한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있어 북유럽 여행은 왠지 낯설기만 하다. 이 지역의 나라들이 세계적인 사회보장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사는 한인들이 적어서일까. 아니면 한국에서 바로 갈 수 있는 비행기 편이 없어서 일까. 거리와 물가에 따른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북유럽만을 여행하지 않는 이상은 쉽사리 다가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신비한 북구의 매력에 정신을 뺏겨 오래도록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북유럽 여행, 그 신비한 북구의 세상속으로 들어가보자.

우리에게 안데르센의 동화와 햄릿의 주무대로 널리 알려진 덴마크는 바다의 제왕 바이킹이 주름잡았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관문이자 유럽 대륙의 중북부에 위치해 있어 '북유럽의 하늘 입구'라 불린다.

덴마크의 역사는 융성과 쇠퇴의 반복이었다. 일찍이 거친 바다를 무대로 눈부신 활약을 펼치던 바이킹의 왕 '크누트'는 영국을 합병하여 거대한 덴마크 왕국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후 13세기 북유럽 일대와 독일 북부, 발트해 연안 전역을 차지하였고, 1381년 노르웨이를 합병, 1502년 스웨덴을 정복하여 북유럽 최강의 국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면적 약 77만 3천㎢, 길이 1850km, 너비 370∼800km의 광활한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지배한 북구의 절대강자 덴마크. 하지만 영광의 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16세기 이후 왕권을 둘러싼 내부분열과 칼마르 전쟁 및 30년 전쟁에서의 거듭된 패전의 결과로 1523년 스웨덴이 분리된다. 또 1814년 나폴레옹 전쟁에서도 패하여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양도하였으며 1864년에는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연합군과 치른 2차례의 전쟁에서 모두 패함으로써 당시 덴마크 영토의 1/3에 해당하던 슬레스비와 홀슈타인 지역을 모두 빼앗겨 역사상 최소판도를 이루게 된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북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현재 덴마크는 독일과 연결된 유틀란트 반도와 코펜하겐이 있는 셀란 섬, 핀 섬, 롤란 섬 등 483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외 캐나다 북동쪽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섬인 그린란드와 북대서양의 페르 제도를 해외영토로 보유하고 있다.

정식명칭 덴마크 왕국(Kingdom of Denmark), '데인 사람들의 경계지대'란 뜻의 이 나라는 그 길목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새로운 경험의 세계로 이끌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올라탄 기차는 길게 뻗은 철로 위를 한없이 내달렸다.

동화 속에서나 본 듯한 집들과 드넓은 초원과 같은 낯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북쪽으로 향할수록 높아지는 위도에 따라 나무의 길이 역시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고 어느덧 창밖의 풍경은 침엽수 지대로 그 옷을 갈아입었다.

새롭게 펼쳐지는 환경에 대한 낯설움에 왠지 모르게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살짝 내려앉은 두 눈은 이내 의식의 건너편으로 나를 인도했고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갔다.

요란한 객실의 분위기에 눈을 떠 사람들을 따라 내려가 보니 기차는 어느덧 짙푸른 바다위를 건너고 있었다. 바다를 건너는 기차? 상상이나 해보았는가. 어릴적 TV에서 우주를 나는 기차는 본적이 있어도 바다를 건너는 기차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말도 안되는 상상속의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잠시 꿈이 아닌가 싶어 볼을 꼬집었다.

하지만 애꿎은 볼살이 붉게 달아오른 뒤에야 정신을 차려보니 배안이었다. 그제서야 독일에서 기차를 이용하여 덴마크로 입·출국할때는 기차가 분리되어 배에 통째로 들어가 바다를 건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배 안에는 놀랍게도 면세점을 비롯하여 레스토랑, 간이식당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소시지로 간단히 요기를 채운 후 갑판으로 올라갔다. 푸른 빛으로 요동치는 북구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여느 바다보다 더 짙어 보였다. 사방이 온통 파란 물결뿐이다.

순간 북해와 발트해를 주름잡던 바이킹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찍부터 뛰어난 항해술을 가진 바다의 왕자 바이킹들의 모험과 전설이 푸른 바다 위로 펼쳐졌다. 비록 무자비한 침입과 약탈 등으로 해적민족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들의 정복과 탐험, 식민과 교역 등이 중세 유럽에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지금 난 어디에 서있는가. 무자비한 약탈로 수많은 전리품을 배에 가득 실은 체 처자식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바이킹의 모습인가. 아니면 그들의 침략을 일거에 격퇴시킨 카를대제의 후속군단인가. 낯선 바다 위 한복판에 서있는 내게 미지의 대륙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개척해야 할 땅이었다.

기나긴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내게 당도하지 못할 곳이 어디 있으랴. 난 오히려 바이킹의 근거지를 침입하는 새로운 정복자의 입장에서 짙푸른 바다 위를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다.

▲ 북유럽의 관문 '코펜하겐' 중앙역
오랜 항해의 끝에 다시 분리된 기차는 북유럽 땅을 지나기 시작했다. 끝없이 펼쳐진 철로위로 여행객들의 기대와 설렘이 가득하다. 또 하나의 대륙으로 향한다는 경쾌한 기분에 맞춰 기차의 무게 또한 가볍기 그지없다.

코펜하겐 중앙역에 도착했다는 신호와 함께 부픈 가슴을 안고 발을 디뎠다. 미지의 대륙, 북구의 신화가 살아 숨쉬는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이다.

코펜하겐 중앙역은 세계적인 북구 덴마크의 주요 역사답게 세련되고 깔끔했다.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역사 안은 각지로 이동하려는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들 틈에 끼어 노르웨이의 오슬로로 향하는 기차편을 예매하기전 먼저 덴마크 크로네(Dr)로 환전을 해야했다. 영국·스위스와 마찬가지로 물가가 비싸기로 소문난 북유럽이기에 복대 속의 유로화는 금새 줄어들고 말았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상인의 항구'라는 뜻으로 덴마크어로는 쾨벤하운(KØBENHAVN)이라 불린다. 셀란섬의 동쪽에 위치한 이곳은 북유럽의 관문으로 코펜하겐구, 프레데릭스베어구, 겐트프테구의 3개구로 나뉘어져 있다. 과거 청어를 잡아 윤택한 생활을 하던 조그만 어촌에 불과했던 곳이 오늘날 북유럽에서 가장 깔끔하고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난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유럽 대륙을 연결하는 관문도시로서 '북구의 파리'라 불리는 이곳 코펜하겐의 거리는 한산하기 그지없다. 곧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위로 자동차들이 한가로이 지나간다. 위도상 북구의 날씨는 다른 지역보다 추울거라 생각했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높은 하늘위로 하얀 뭉게구름이 덩실덩실 떠있는 쾌청한 날씨여서 오히려 약간의 더위마저 느껴졌다.

▲ 한적한 코펜하겐 거리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도시여서 그런지 한산한 거리 위의 사람들 역시 여유로워 보였다. 덴마크에는 북유럽의 도시들이 그러하듯 특별히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유적은 찾기 힘들다. 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거리와 친절한 시민들의 모습 속에서 여유와 낭만이 흘러 넘친다. 오히려 역사에 얽매이지 않은 체 신선한 도시의 공기를 듬뿍 마시다보면 마음마저 편안해진다.

자동차를 이용해 매연을 쏟아내는 문명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곳 코펜하겐에는 유독 자전거가 많다. 길이 평탄한데다 주요 도로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어서 이용하기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역시 환경을 중시하는 사회복지국가답다. 나 역시 그들과 동참했다. 네덜란드에서 구입한 킥보드로 스피디한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겨우 두 개의 조그만 바퀴에서 뿜어내는 속도는 여느 자전거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화창한 날씨마냥 마음마져 가벼워진 느낌이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처럼 코펜하겐의 깔끔한 거리를 가로지르다보니 어느새 붉은 궁전 앞에 닿았다. 1617년 당시 국왕이었던 크리스티안 4세의 뜻에 따라 세워진 네덜란드 양식의 '로센보르 궁전(Rosenborg Slot)이다. 궁전이라기엔 비록 작고 아담했지만 녹음으로 뒤덮힌 왕립공원안의 붉은 벽돌빛이 함께 어우러져 무척이나 아름답다.

▲ 로센보르 궁전
ⓒ 홍경선
원래 이곳은 크리스티안 4세가 여름에만 거주하던 곳으로 지어졌으나 그가 이곳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평생을 보내다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 이면에는 그의 연인이었던 키아스텐 뭉크와의 사랑이 녹아있었다.

달콤한 사랑의 밀어를 주고 받을 만큼 궁전의 정원은 아기자기했다. 녹음이 짙게 우거진 정원 입구에는 널따란 연못이 있다. 맑은 물속에서 노니는 하얀 오리떼들이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빵부스러기를 향해 달려든다. 그 옆으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백조 한쌍이 먹이는 거들떠 보지도 않은체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관광객들의 카메라 세례에 이력이 났는지 우아한 자태는 조금도 변함 없다.

왕과 그의 연인도 저기 보이는 한 쌍의 백조와 같았을까. 달콤한 사랑의 보금자리였던 궁전은 현재 왕실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궁전 내에는 무도회장, 홀, 응접실 등이 있지만 웅장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단지 사랑의 열병을 앓아온 왕의 흔적만이 소박하게 비칠 뿐이다.

궁전 뒤로 길게 뻗어있는 왕립공원(Kongenshave)은 공원 벤치와 그늘이 드리워진 산책로들로 둘러싸여 있다. 양옆으로 정원지기 마냥 서있는 거대한 포풀러 나무 사이로 녹음이 짙게 깔려있다. 잘 정돈된 공원 위로 많은 관광객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 사이 어디선가 경쾌한 재즈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북유럽의 재즈 문화를 이끌어간다는 '코펜하겐 재즈페스티발'이 한창 진행중인 것이다. 푸른 잔디위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를 깔고 앉아 경쾌한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든다. 여기저기 노니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마냥 즐거워하는 부모의 얼굴에서 재즈의 정겨움의 묻어난다.

▲ 코펜하겐 째즈페스티발
ⓒ 홍경선
가족에 대한 사랑이 얼굴 가득 넘쳐나는 그들에게 그늘이란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 주위의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들 틈에 끼어 잠시 누워본다. 하늘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스치면 재즈의 노래 가락과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합성이 되어 귓가에 맴돈다.

북유럽의 여유로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순간이었다. 북구의 신비는 그렇게 한가로움과 여유속에서 드러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흥겨운 리듬에 취한체 공원을 빠져나와 코펜하겐의 명물인 '인어공주 동상'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테마로 1913년 조각가 에드바르 에릭센이 제작한 이 청동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킥보드의 속도가 뿜어내는 바람의 강도가 한층 짙어질쯤 도착한 거리는 코펜하겐 북쪽의 린게리니(Langeline)였다. 이 거리를 따라 죽 달리다보면 멀리 코펜하겐 항구가 푸른 물결로 반갑다며 인사를 건넨다. 그때였다. 바다가 건네는 인사에 부드러운 눈길로 답할때쯤 해안가 한복판에 작은 물체가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서둘러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그 유명한 인어공주가 바다를 등지고 요염한 자태로 앉아있었다. 가냘픈 얼굴에 가슴을 훤히 드러낸 육감적인 몸매였다. 한손을 바위에 얹고 다른 한손은 살짝 무릅 위에 걸친체 손수건을 쥐고 있었다. 그 아래로 살며시 포개어 놓은 미끈한 두 다리가 인어의 꼬리지느러미로 이어져 있었다. 전체 길이는 80m에 불과해 생각보다 왜소하고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슬픈 운명의 주인공이 지닌 애절한 이미지는 강렬하게 풍겨났다.

▲ 빼어난 미모의 인어공주 동상
ⓒ 홍경선
벨기에의 오줌싸게 동상,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과 함께 유럽의 3대 '썰렁'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인어공주 동상. 이를 보기 위해 일부러 코펜하겐까지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쓸쓸한 그녀의 모습을 곁에서나마 지켜주고 싶은 어릴적 동심(童心)의 발로라고나 할까. 비록 왕자와의 사랑은 물거품으로 끝나버렸지만 그녀의 주변엔 언제나 많은 남자들로 가득했다. 바위 위에 올라 그녀의 가슴을 만지는가 하면, 어깨동무를 하거나 볼에 살짝 키스를 하며 사진을 찍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슬픈 운명의 장난은 동화 속을 벗어난 현실에서도 끝없이 이어졌다. 1964년 4월 23일, 24일에 누군가에 의해 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다행히 원래의 상태로 복구되었지만 1984년 또다시 왼쪽 팔이 떨어져 나가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자세히 보면 잦은 복원으로 생긴 이음새로 그녀의 몸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90년이란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그녀의 매력은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변치 않는 미모는 그녀를 인간세계와 바다 그 어느 곳에서도 편입될 수 없는 버림받은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가 변치않는한 바다를 등진체 쓸쓸히 인간세계를 향해 앉아있는 그녀의 운명은 반어반인의 모습으로 평생토록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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