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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면서 다양한 나라의 갖은 모양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쉽게 잊혀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중 잊혀지지 않는 사람 중에 방글라데시인 라쥴이라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와의 만남은 본격적으로 외국인 이주노동자 운동을 시작한 지 만 2년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라쥴은 당시 석재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일하기 전에 임금을 못 받은 문제로 저희 센터에 상담을 의뢰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장이 190cm가 넘는 거구였지만 그동안 알고 지내던 방글라데시 친구들과는 달리 말수가 아주 적고 눈이 커서 겁이 많아 보였고 숫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귀국을 앞둔 날 저녁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제가 일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센터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센터 사무실과 예배당을 이리 저리 다니면서 줄자를 갖고 여기 저기 재는 듯하더니 곧장 사무실 한편 벽면에 십자가를 거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는 자신이 일하는 석재공장에서 쓰던 자투리 대리석을 갖고 조그맣게 만든 것이었는데, 앙증맞다는 말이 알맞을 만큼 뭉툭하고 작았습니다. 사실 그는 그 지난주에도 센터 실무자 중 한 명에게 대리석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이별 선물을 했습니다.

작업을 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까, 십자가가 작긴 했지만 대리석으로 만들어 무거웠습니다. 또 벽이 함석으로 돼 있어서 못질을 견딜 만큼 튼튼하지 못해, 대리석용 시멘트를 이용하여 벽에 붙이는 작업이 수월치 않아 보였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모두 무슬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알라께서 화내시겠다"고 짐짓 정색을 하며 농담을 했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같이 센터에 와 있던 여러 외국인들과 저녁식사를 같이 할 때도, 그들은 저에게 먼저 식사 기도를 권하더니, 마칠 때는 '아멘'으로 답해 주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던 외국인노동자센터는 외국인교회를 병행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센터나 예배당 어디에도 십자가가 걸려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동안 자신들을 위해 수고해 줬던 부분에 대해 인사를 하고 떠나고자 했던 모양입니다.

'무슬림과 초승달'이 아니라, '무슬림과 십자가'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만남을 보면서, '존중'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그들은 한국에 있을 동안에 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그들을 존중해 주는 사람들을 만났고, 떠나면서 그 아쉬움을 표현하기 위해 십자가를 만드는 힘든 작업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라쥴과 그 친구들로부터 받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모든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문화가 다르고 종교가 달라도 더불어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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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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