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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하무라 동물원 1편에 주신 독자님들의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타성과 관성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질책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글쓴이-

▲ 도회지의 역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하무라 역. 시골역은 조용하다. 언제나.
ⓒ 박철현
동경의 유명 동물원을 들라면 보통 키치죠지 동물원과 우에노 동물원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다. 키치죠지 동물원은 동물원 자체보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유명한 이노가시라 공원 내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우리 부부에게도 이노가시라 공원은 꽤나 의미있는 곳이다. 두번째 데이트를 한 장소니까.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도 자전거로 10분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 우리 부부는 지금도 한달에 한번 정도는 꼬박꼬박 찾는다.

한국의 독자들도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테다. 미야자끼 하야오 감독의 프로덕션인 지브리가 영화박물관 '미타카의 모리'를 세웠다는 이야기를. 그 미타카의 모리도 이노가시라 공원 안에 있으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일본에 온다면 꼭 한번쯤 방문해 보길 권한다.

물론 키치죠지 동물원이 이런 천혜(?)의 환경 덕택만으로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키치죠지 동물원 만의 특징이 있다. 일본에서는 보기드문 열대환경체험관과 동물원 내 조각품 공원이 그것인데 이 두 군데를 가볍게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본전을 뽑을 수 있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이 때문에 키치죠지 동물원을 찾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본으로 건너온 지 가장 오래된 코끼리가 잘 생존해 있나 확인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이젠 서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70살 먹은 코끼리. 그를 위해 준비된 넓은 콘크리트 방목장은 언제나 텅텅 비어 있다. 대형 우리에 갇힌 채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가는 그 코끼리의 커다랗고 퀭한 눈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밀려 온다.

우에노 동물원이 유명한 이유는 아마도 동물의 다양함과 무인열차 때문일테다. 동쪽 동물원과 서쪽 동물원을 이어주는 40인승 무인열차는 어린이들에게 참을 수 없는 흥분을 주나 보다. 지면 위를 붕 떠서 나는 듯한 기분을 주는 우에노 동물원의 무인열차는, 물론 오다이바의 모노레일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꽤나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사자, 호랑이, 기린, 팬더 등 다른 데서는 보기 힘든 맹수류나 대형초식동물, 희귀종이 있는 것도 우에노 동물원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하무라 동물원의 매력은? 음, 뭐가 있을까? 아! 그렇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천천히 돌아봐도 된다는 것. 이게 매력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많은 곳을 천성적으로 싫어하는 나로서는 아마 이 때문이라도 앞으로 하무라 동물원을 종종 찾을지 모른다.

키치죠지와 우에노는 인간적으로 사람이 너무 많다. 한창 벚꽃이 필 때 우에노는 그야말로 악몽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만 봐야지, 다른 데 보면 너무 부담스럽다. 왜 부담스러운지 이유를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 내년 3월말에서 4월초 직접 휴가를 내어 한번 우에노를 찾아가 보시길. 그럼 내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 몽고지역에서 들어왔다는 염소같은 녀석. '물지도 모르니 조심하시오 '라는 간판이 있는데도 미사코는 과감하게 손을 들이밀었다. 아내의 친구는 다들 이렇게 강심장이다.
ⓒ 박철현

▲ 처음엔 햄스터인줄 알았는데, 무슨 다람쥐라고 한다. 사막과 정글지역 동시서식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런게 가능한지 의문이 들기도. 귀여운 녀석이었다.
ⓒ 박철현

▲ 하무라 동물원에서 찍은 멋있는 녀석. 이름은 모르겠다. 넓은 아량으로 용서를...
ⓒ 박철현
미사코와 미와코, 나. 이렇게 3인은 동물원에 들어가자마자 평상에 걸터 앉아 에너지 보충부터 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정성스럽게 싼 주먹밥과 역 근처 슈퍼에서 산 음료수, 과자를 깔끔하게 해치운다.

옆 평상에서 장난치고 있던 귀여운 아이가 걸신들린 듯 먹거리를 먹어치우는 우리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기에 혀를 내밀고 장난을 쳤다. 그러자 금세 아이가 웃으면서 이쪽으로 넘어 온다. 내가 아무 말도 없이 번쩍 안아들자 애가 놀랐는지 비명을 지른다.

미와코는 '또 시작이군'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미사꼬는 깜짝 놀랐는지 눈을 둥그렇게 뜬다. 하긴 전혀 모르는 애를 대화 한번 하지도 않고 갑자기 번쩍 들어올리는 행동은 아마도 처음 보지 않았을까? 보충설명을 했다.

"아! 괜찮아. 괜찮아. 한국에서는 다 이게 정을 표현하는 거니까."
"근데, 여긴 일본이잖아."

아내가 끼어든다. 미사꼬도 동조하는 눈빛이다.

'애 엄마가 아무 소리 안 하는데 둘이 왜 이러는 거야. 칫!'

아내가 옆자리의 애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몇번이고 하면서 애를 건네준다. 그리고 나는 또 일장연설을 들었다.

"애를 좋아하는 오빠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한번 안아봐도 될까요'한 다음에 애를 안아보고 그래야지, 갑자기 안으면 애도, 엄마도 얼마나 놀라겠어. 어쩌구 저쩌구…."

"응.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쩝"

이럴 땐 지는 게 상책이다. 이길 자신도 없을 뿐더러 맞는 말이니까. 문화 차이란게 이럴 때 드러난다. 일본에서 한국하던 식으로 전철에 서 있는 사람 가방 받아주려고 했다간 대번에 이상한 사람, 혹은 도둑으로 몰리는 문화 차이 같은 것. 어쩔 수 없다. 일본에 사는 내가 일본 문화에 익숙해지는 수 밖에.

식후 약간 휴식을 취한 다음 우리는 동물원 이곳 저곳을 구경했다. 이노가시라나 우에노에 비한다면 초라하게 보일 정도로 작은 규모. 게다가 새 종류가 너무 많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를 본 이후 새에 대해 묘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그다지 환영할 만한 곳이 아닌 셈이다.

그런데도 마음은 평온해진다.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마음이 평온해지지는 않을텐데 무언가 이상하다. 한참 돌아다니다가 다른 평상에 걸터 앉아 휴식을 취한다. 자판기 커피를 마셔가며 주위를 둘러 본다. 한 3초 정도 지났을까?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서늘함. 아! 평온함의 정체가 이것이었구나!

그렇다. 아이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쪽을 봐도 아이, 저쪽을 봐도 아이. 물론 다른 두 동물원에도 아이들이 많았지만 비율적으로 감각적으로 하무라 쪽이 훨씬 애들이 많다는 느낌이다. 특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2~4살 정도의 애들, 이제 아장아장 걸어다니기 시작하는 애들이 눈에 밟힌다. 우에노에서 느꼈던 부담감과는 차원이 다른 평온함.

▲ 동물원 내의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어린 아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 박철현

▲ 한 5분간 줄곧 땅바닥에 앉아 무엇인가 찾고 있는 어린 아이. 무려 20미터나 떨어져 있었지만 이 녀석만의 독특한 향기가 물씬 풍겨왔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려나?
ⓒ 박철현

▲ 후레아이바에서 만난 형제. 오른쪽 녀석이 포획한(?) 검은색 병아리들이 자랑스럽게 진열되어 있다.
ⓒ 박철현
미사꼬와 아내는 동물구경하느라 바쁜데, 나는 애들 구경하느라 정신없었다. '저놈 진짜 귀엽군, 음, 쟤는 뭐가 저리 좋다고 팔팔거리는 거지?' 혼자 상상을 해가면서 동물원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아이들의 천국에 도착했다(나를 변태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주기 바란다. 나는 그냥 애들을 좋아하는 순수한 청년이다).

후레아이바[觸れ合い場](병아리, 햄스터 등 동물을 만질 수 있는 곳)에 모인 아이들의 미소, 웃음, 비명, 울음. 모든 것이 고맙다. 문득 아내가 걱정된다. 아이들을 보고 혹시 유산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

슬며시 곁눈질로 아내를 쳐다보니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다행이다. 나만 과민반응한 셈이다. 아내는 저렇게 강한데 나는 이렇게 약하다. 이래가지고서야 나중에 애가 생겨도 걱정이다. 강한 엄마한테 쥐여 사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우습게 보면 안 되는데.

아내와 미사코는 열심히 병아리와 햄스터를 만지고 풀어준다.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똑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어린이로 돌아간 듯한 그녀들을 보니 하무라 동물원의 매력은 이런 것이었구나하는 과도한 추측까지 하게 된다.

어린이의 향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또 자신도 어린이로 돌아가는 것.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엔 누구나 순수했다. 어른이 되면서 차츰차츰 사회와 타협하거나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억누르거나, 혹은 그 억누름의 대상이 되거나 하면서 변해가는 것이다.

이것을 누구는 어른이 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또 그런 어른이라면 별로 어른이 되고 싶지도 않다.

물론 후레아이바에서 적당히 아이들과 그녀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이런 상념에 빠져있는 나보다는 그녀들이 더 순수하다. 그러니 저렇게 무아지경에 빠져 손위의 병아리와 옆자리의 어린이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겠지.

4시간 여에 걸쳐 하무라 동물원에서 보낸 3인 데이트. 동물들이야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동물들이니 굳이 새로움을 느끼진 않는다. 다만 정신적 안정과 평온함, 행복을 맛보고 싶은 독자들이 있다면, 나는 우에노보다 키치죠지보다 하무라를 추천해드리고 싶다.

아! 물론 정신적 평온함을 느끼는 정도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 평상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쳐다보았다. 살랑살랑거리는 이파리를 표현하고 싶었지만 스틸카메라는 역시 무리. 다음엔 비디오로 찍어서 올려야겠다.
ⓒ 박철현

▲ 왼쪽이 아내인 미와꼬 오른쪽이 아내 친구 미사꼬. 둘다 엄격하다(?). 사진을 촬영한 곳은 동물원 내에 전시되어 있는 증기기관차 기관실 내부.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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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도쿄거주. 소설 <화이트리스트-파국의 날>, 에세이 <이렇게 살아도 돼>, <어른은 어떻게 돼?>,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썼고, <일본제국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번역했다. 최신작은 <쓴다는 것>. 현재 도쿄 테츠야공무점 대표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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