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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실보고대회 놀이연수에서 충주 이상호 선생님의 놀이에 대한 수업을 듣고 너무나 감명을 받아서, 학교에 돌아와서 친한 사람들한테 막 떠벌리고 다녔다. 그때 배운 놀이로 학생들과 재미있게 놀면서 점점 자신이 붙어서, 결국에는 안동중학교 분회에서 놀이연수를 간단히 해버렸다.

그 후 경북 특수교육 선생님들한테도 놀이수업을 했고, 영주지회에서 참실강연회로 하기도 했다. 물론, 할 때는 어디서 도둑질한 것이라고 말은 꼭 했다. 이번에 학생생활연구회 여름연수에서 칭찬워크숍을 받았다. 한번 한 도둑질이 길이 나서 이번에는 학교로 돌아오자마자, 애들을 마구 칭찬하기 시작했다. 분회선생님들도 칭찬하고. 급기야, 분회 총희를 했는데, 거기서도 30분 정도 했다. 앞으로도 할 것이다.

도둑질한 지식도 나의 것이다. 이상호 선생님의 놀이연수를, 김창오 선생님의 칭찬에 대한 생각을 나는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서 몸에 배게 할 것이다. 이제 놀이와 칭찬은 내 생각이다. 나의 것이다. 우리는 항상 연수를 받고 나서 말한다. ‘참 좋은데 내가 어떻게 하겠어’,
‘애들한텐 한번 해봐야지. 근데 분회에서 연수를 하라고? 나는 그만큼 안 돼.’

우리에게도 전문가주의가 깊이 물들어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도올 김용옥을 사랑한다.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고 준비하는데 도올이 또 사고를 쳤다. 솔직히 랩은 별로 못하더라. 하지만 그렇게 큰 무대에서 일반 시민을 앞두고, 국민가수 전인권에 꿀리지 않고 랩을 하다니. 나는 그의 아마추어리즘을 사랑한다. 도올은 교수가 되더니, 기자가 되고, 영화시나리오를 쓰고, 판소리 대본을 쓴다. 지금은 래퍼다.

“착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뭘 어떻게 할지 전문가들의 지시를 받으려 합니다.” (존 테일러 개토,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중에서)

김용옥은 다시 말한다. 나는 공자보다, 주자보다, 퇴계, 율곡보다 훌륭할 수 있다. 도올의 이런 생각은 결코 불경한 것이 아니다. 우리 교사는 영원히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개토의 말처럼 ‘착해져서’ 전문가의 지시를 받게 되면 배우는 사람도 ‘착해져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 멍청이가 된다.

이 글은 책소개다. 이제 알았지? 흐흐

이제 본격적으로 책이야기를 좀 하겠다. 첫 번째로, 양철북에서 나온 [교사역할훈련]에서는 학생을 가르치고 상담하는 기술보다는 ‘교사·학생의 관계가 어떠한가’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배웠다. 학생의 ‘문제’는 그 학생 자신의 ‘문제’와 그 학생을 바라보는 나의 ‘문제’가 함께 한다는 것을 배웠다.

‘아내나 남편 혹은 친구를 훈육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힘과 권위를 사용하면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 그러면, 마음에 안 들 때는 어떻게 하는가? 상대방이 문제를 소유할 때는 수용의 언어를 사용하고, 나 자신이 문제를 소유할 때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라고 한다.

보다 자세하고 구체적인 상담에 대한 내용은 생략하고 아래 인용구를 마지막으로 [교사역할훈련]에 대한 소개를 마친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스스로가 조금이나마 가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려고 몸부림 치고 있다.’

두 번째로, 보리출판사의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를 읽어보면, 세계 여러 사상가들의 교육과 세상살이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만나게 된다.

‘학교는 가정의 연장이어야 합니다. 따뜻하고 신뢰할 수 있고 친근하고 두려움이 없는 가정 말입니다.’ (사티쉬 쿠마르)

‘억지로 쑤셔놓은 지식은 소화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정신의 설사병이 일어나고, 우리의 지적능력은 마비되고 죽어버린다.’ (비노바 바브)

‘삶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우리 스스로를 깨닫는 것이다. 바로 이 깨달음이 교육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다. 참된 뜻에서 교육은 자기 자신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존재 전체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앞에서 말한 세 명의 사상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윤구병 선생이나, 이오덕 선생의 글도 만날 수 있는 책으로, 꼭 읽어보아야 한다.

세 번째로, 윤구병 선생의 ‘조그마한 내 꿈 하나’는 우리나라에, 우리와 같은 시대에 이렇게 대단한 분이 계셔서 감사한 생각이 들게 한다. 너무나 쉬운 민중의 언어로 일의 본질을 훤히 드러낸다.

‘많은 아이들이 지닌 남다른 능력을 수용해서 발전시켜줄 길이 제도교육에 열려있지 않다’ 즉, 아이들은 모두 천재들인데 ‘학교에만 보내놓으면 그 똑똑하던 자식이 갑자기 빛을 잃어버린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시골에서는 아이를 낳아 놓으면 절반은 마을 어른들이 길러주고 절반은 자연이 품에 안아 키워준다. 요즘처럼 애 하나 기르는데도 육아부담에 교육비에 ‘애가 타는’ 현실의 원인과 최종적인 대안까지 제시한다.

선생은 ‘운동’과, ‘운동권’에도 일침을 가한다. ‘운동권 사람들은 백사람의 낯모르는 사람 앞에서 짧은 시간에 자유의 필요성에 대한 감명 깊은 연설을 하여 그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려고 드는 사람이 아니라, 오랫동안 조심스럽게 관찰하여 믿음직하다고 판단된, 스무 해가 넘게 기름밥을 먹어왔고, 성실하게 일했으나 아직도 셋집 살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언년이 아부지를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로 데리고 가서, 우리 헌법에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지만, 당신에게는 여기에 살 자유가 현실적으로 없음을 보여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만의 책을 만들자

그러면 이렇게 좋은 책들을 읽으면서, 읽고 나서는 어떻게 하는가? 또, 새로운 좋은 책을 읽는가? 아니다. 뭔가 빠진 것이 있구나. 누구나 책을 읽으면 수많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거의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생각을 남긴다.

독후감도 쓰고, 인용구도 노트에 베껴 쓰고 한다. 하지만 힘들다. 그래서 내가 하는 방법은,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을 ‘읽고 있는 책에 바로 쓰기’이다. 이러면 책과 펜만 있으면 된다. 책을 더럽힐까봐 걱정이 되는가? 아니다. 더럽혀지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이 덧붙여진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나의 책’이 된다.

지식과 감정을 합쳐서, 알게 되면 행동하자

할 일이 또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읽고 나서 동료와 나누어야 한다. 친구에게 이야기해야하고, 학생들에게 말하고, 메일로 아는 사람들에게 보내고, 메신저로 알리는 일을 해야 한다. 결국 책을 읽어서 내가 새로운 지식을 얻어, 행동해야 한다.

지식과 행동이 통일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책을 읽을 때,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은 자신의 감정과 결합시켜야 한다. 요즘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수업일기를 쓰게 하는데,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알게 되는 사실들을 자신의 감정과 연결시켰을 때 오래 기억하고, 다른 분야에 적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건조한 지식과 풍부한 감정이 결합될 때, 그 지식은 비로소 나의 것이 된다. 그렇게 나의 것이 된 지식이야말로 행동으로 연결된다. 현대사회는 분열의 시대, 전문가의 시대, 분업의 시대이다. 모든 것을 분열시킨다. 일과 놀이와 공부를 분리시키고, ‘아는 것’, 즉 마음을 ‘단순한 지식’과 ‘감정’으로 찢어버렸다.

전문가와 비전문가,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지, 공부만 하는 학자와 죽도록 일만 하는 노동자로 인간을 나누어 버린다.

‘일과 놀이(공부, 글쓴이 추가)가 갈라진 것은 인격이 갈라진 것이요, 인간이 찢어진 것이었다.' (이오덕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중에서)

읽은 후에는 버려야 한다

이렇게 책읽기에 대하여 이것저것 마구 건드려 보았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읽은 후에는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교사들의 버릇이지만, 나도 책을 사서 읽어보고는 고이 모셔둔다. 책장에. 책장에 늘어가는 책을 보면서 흐뭇한 웃음을 짓지 말자. 그것이야말로 지식에 대한 ‘허영’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대학교 이후로 늘어만 가던 책이 요즘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주위 선생님들께 한두 권씩 선물을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가 제일 감명 깊게 봤던 책들 중심으로. 모두 버린 후에도 남는 것이 바로 나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사들이는 재앙이 태우는 재앙보다 더 심하다.'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

'또한 책으로는 정말 중요한 것은 배울 수가 없다. 가장 중요한 교재, 교과서, 책은 인간이다. 친구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다. 나의 아내이다. 나 자신이다.

‘책을 통한 학습은 진정한 세계와 우리를 가로막는 커튼과 같은 것이다.' (비노바 바브,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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