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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에서 가끔 정희진의 칼럼을 만날 수 있다. 그저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만날 때마다 어떤 깨우침을 독자에게 선물하기 때문에 스크랩을 해두고 있는 터라, 여성학 강사인 그 이름이 자연스럽게 각인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최근 2년 동안 <당대비평> <인물과 사상> <한겨레> <인권> <황해문화> <여/성이론> <이프(IF)>등 각종 매체에 기고했던 글을 묶은 것이라고 하는데, 책장을 덮는 순간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에 눈을 감아버리고 살아왔나 하는 생각이 몰려와 잠시 마음이 어지러웠다.

저자는 아는 것은 상처받는 일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서두에서 밝혀두고 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며칠 전 문화방송에서 어느 화가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본 일이 생각났다.

나는 미술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어서 더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갤러리와 출판계과 예술가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 그야말로 상처를 받았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화가의 죽음이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슬픔과 분노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여성주의에 대한 이해

...누가 나더러 여성주의를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착한 여자는 천당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라는 말을 소개한다. "착한 여자만이 천당 갈 수 있다"가 기존 남성 중심적인 생각이라면, 여성주의는 "나쁜 여자가 천당 간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주의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유와 거리가 멀다. 여성주의는 남성을 미워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이든 증오든 이제까지 남성에게 쏟았던 기운을 여성 자신에게 돌릴 것을 제안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우리나라 부모나 교사들 중에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리 보수적인 사람이라도, 대부분 부모들은 자기 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천당에 가기 위해 남자들에게 순종하며 '착한 여자'로 살기보다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 있는 '나쁜 여자'로 살면서 어디든 가길 바란다. 페미니즘은 그렇게 거창하거나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잘 들리지 않았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는 것이다. '다른 목소리'는 혼란이 아니라 다양성과 창조력의 원천이다. - 본문 중에서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듯, 페미니즘에 대한 사람들의 몰이해와 오해는 간단명료하게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여성과 인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책은 많지만, 독자들을 흡인하는 능력에 있어서 이 책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책과 비교했을 때, 적어도 내게는 많은 생각을 심어주었다.

말에 담긴 성차별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비판 의식 없이 사용해 온 말에 성차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 이야기해 주기 전에 깨닫기란 참 힘든 일인가 보다. 누구에게나 가치중립적인 말,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말을 쓰는 것이 옳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런 언어를 찾기는 힘들다. 저자는 폐경보다는 완경이라는 말을, 미혼이라는 말보다 비혼이라는 말이 듣기에도 좋고 상호적이지 않은가 하고 독자들에게 동의를 구한다.

제주도 사람의 입장에서는 남해는 틀린 말이다. 그들에게는 북해다. 왜 박완서는 '제3세계' 문학이고, 괴테는 '세계' 문학인가? '유색 인종'은 흰색은 하나의 색이 아니라 색의 기준이 된다는 백인우월주의의 표현이다. … 한국어나 영어에서 만남은 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또 봐요."), 이는 시각 장애인을 배제한 말이다. 남성에게 성교는 삽입이지만 여성에게는 흡입이다. - 본문 중에서

모든 법이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처럼, 이 땅에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찾지 못한 권리가 있다. 사회가 그 사실을 엄연히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 사람에게 부여된 존엄한 가치를 인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행복에 이를 수 있도록 공동체는 소통과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성판매 여성, 성적 소수자, 장애인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약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모두가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의 도전>은 여성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지만, 남성들에게 더 필요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끊임없이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면, 분명 우리 사회는 더 따뜻하고 평화로운 땅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페미니즘의 도전>은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교양인(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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