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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1년 말 벤쳐업계를 강타했던 소위 '진승현 게이트'의 주인공 진승현씨가 지난 2002년 1월 28일 서울지법에서 열린 신광옥 전 법무차관의 2차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양현택
점입가경이다. 너무 복잡해 줄기 잡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흘려버릴 수도 없다. 순간순간 전해지는 뉴스가 예사롭지 않다. 진승현씨의 경우다.

'진승현 게이트'로 국민의 정부 말기현상을 초래한 진씨가 신문지면에서 퇴장한 건 2002년 7월이었다. 대법원에 의해 징역 5년형이 확정된 뒤 그의 자취는 서울구치소 담장 너머로 사라졌다. 그랬던 그가 다시 신문지면에 등장하고 있다. 거물 브로커 윤상림씨와의 수상한 돈 거래로 '복귀'를 신고한 후 이런저런 뉴스의 핵심 인물로 빈번하게 등장하더니 오늘은 아예 1면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진씨가 2003년 5월 16일 처음으로 형 집행정지를 받은 뒤 모두 9차례에 걸쳐 형 집행정지를 받았는데, 27개월의 형 집행정지 기간 중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기간은 5개월에 불과하다는 내용이다. <국민일보>가 이 뉴스를 1면 머리기사로 올렸고, <경향신문>은 사회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일반 재소자는 꿈꾸기조차 불가능한 9차례 형 집행정지, 뇌종양 때문에 생명이 위독하다던 사람이 병원이 아니라 거리를 버젓이 활보한 사실을 적시하면서 언론이 제기한 의혹은 조직적 비호세력의 존재 여부다.

당연히 품을 만한 의혹이다. 언론만이 아니다. 검찰도 형 집행정지 결정과정과 병원의 암 진단과정에 조직적 비호가 있었을 것이란 의심을 품고 내사를 벌였다고 한다.

일반 재소자는 꿈꾸기조차 힘든 9차례의 형 집행정지

하지만 조직적 비호세력의 실체도, 검찰 내사 결과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선 그간의 언론 보도를 종합해 추론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진씨의 형 집행정지 배경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정보는 이것이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21일자에서 윤상림씨가 "형 집행정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진씨에게서 1억원을 받았으며, 진씨가 검찰에서 "윤씨를 통해 고검장 출신 김모 변호사를 소개받았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이 두 가지 '사실'을 전하면서 "(검찰은)윤씨가 김 변호사를 통해 당시 검찰 간부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는지를 조사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의 이 보도대로라면 윤곽이 잡힌다. 윤씨가 진씨로부터 받은 돈 일부를 김 변호사에게 전하면서 형 집행정지를 부탁했고, 이에 따라 김 변호사가 검찰을 움직였다는 추론이 나온다. 하지만 아니다.

<중앙일보>의 보도 내용 중에는 상치되는 부분이 있다. 진씨가 검찰조사에서 "형 집행정지 처분을 받을 때 윤씨를 통해 김 변호사를 소개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는 내용, 그리고 윤씨가 서울시내 병원에 입원 중이던 진씨를 만나 "엉터리 형 집행정지를 받은 사실을 검찰에 알려 다시 수감되도록 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받았다는 내용이 그것이다(이 내용은 <중앙일보>만이 아니라 대다수 언론이 비슷하게 보도한 것이다).

이 두 내용을 종합하면 윤씨는 최소한 진씨의 첫 번째 형 집행정지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된다. 물론 김 변호사의 등장 시점도 첫 번째 형 집행정지 이후일 것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엉터리 형 집행정지'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것이 포인트다.

'꾀병' 형 집행정지 어떻게 가능했을까?

진씨의 조직적 비호세력이 윤씨와 김 변호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추론이 성립하는 또 다른 정황도 있다.

진씨는 형 징행정지 기간 중 '꾀병' 사실이 들통나 재수감된 일이 있다. 진씨의 병세를 의심한 검사가 서울대병원에 진씨의 진료기록을 넘겼더니 "활동성 암이 아니다"는 진단이 나와 진씨를 재수감했고, 그를 서울구치소에서 여주교도소로 이감하기까지 했다. 재수감 과정이 이러했는데도 당시 여주교도소장은 자신의 직권으로 진씨를 서울 한남동의 한 병원 특실에 장기 입원시키는 특혜를 베풀었다

이 사례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는 게 나온다. 김 변호사의 '약발'이 다했다는 사실이다. 고검장 출신인 김 변호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은 검찰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진씨의 '꾀병' 사실을 알고 그를 재수감했다. 김 변호사가 검찰 연줄을 가동하는 데 한계선을 긋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여주교도소장의 '직권 발동'이 검찰의 영향력 행사에 따른 결과라고 보는 건 무리이며, '다른 힘'이 작용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 점 때문에 김 변호사와는 별도로 윤씨가 정관계 인맥을 동원해 여주교도소장을 움직였을 가능성을 주목할 만도 하지만 그래도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가장 근원적인 문제, 즉 첫 번째 '엉터리 형 집행정지'와 윤씨는 무관하다는 사실이 떡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니 진씨가 윤씨에게 1억원을 건넨 이유도 모호해진다. 중간에 등장해 생색만 낸 윤씨와 김 변호사에게 건넨 돈 치고는 1억원이 너무 커 보인다. 다른 '대가'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이에 대해 검찰도, 언론도 하는 말이 없다.

언론 보도를 종합구성해서 끌어낼 수 있는 추론은 여기까지다. 그래서 답답하다.

도대체 진승현이란 사람은 누구인가? 아니다. 말을 바꾸자. 도대체 진승현이란 사람의 뒤에 누가 있는 것인가?

2002년 7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마지막으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어야 할 '진승현 게이트'의 실체가 시원하게 규명되지 못한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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