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북한에 섬유산업의 기초를 심기 위해' 분단 60년 만에 처음으로 평양에 설립했던 남북합영회사 평양대마방직(이사장 김정태·64)이 심각한 자금난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최초 남북 합영회사 허가 ▲최초 직접 경영참여 ▲최초 남측 주민들의 평양시내 거주 ▲최초 남측 주민들에게 거주인 비자발급 ▲최초 육로 기자재 운송 등을 이뤄낸 평양대마방직의 역사적인 의미가 사라질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평양대마방직은 2005년 6월 평양시 대동강구역 청류2동에 공장영업 허가를 받아 같은 해 10월 창업했던 최초의 남북 합영회사다. 북측 대남경제협력기구인 민경련(민족경제협력연합회) 산하의 새별총회사와 남측의 안동대마방직(회장 김정태)이 각각 500만 달러씩 모두 1000만 달러를 출자해 설립했다.

@BRI@김정태 이사장은 2003년 북한 새별총회사가 공장 건설을 맡는 대신 직기(織機)를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고 지금까지 60여억원을 투자했으나 앞으로도 기계 수리비와 전기, 공기정화시설 마련을 위해 20억원 정도를 더 투자해야 할 처지이다. 그동안 집까지 처분하여 투자에 올인했던 김 이사장은 더 이상 재원 마련이 어려운데다 통일부로부터 지원받은 남북경제협력기금 13억원에 대해서도 회수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을 총괄지원하고 남북경제협력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통일부의 입장은 강건너 불구경이다. 통일부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사업은 정부와 연계된 사업이지만, 기업의 경제협력사업은 개별 회사의 사업이기 때문에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때문에 평양대마방직을 비롯해 평양에 진출한 모든 경제협력기업들이 개별회사라는 이유로 남북경제협력기금을 사용하는데 많은 한계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대북정책 전문가들은 정부와 관료들의 경직성에 대해 자세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통일부는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금강산관광사업, 개성공단사업 등에만 치중하고 있는 남북경제협력사업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실질적이며 효과적으로 남북경제협력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합영회사 지원방안을 조속히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일환 한양대 교수(정치외교)는 "가장 투명하고 이상적인 경협기금운영방식은 바로 합영회사 지원방식"이라며 "합영회사는 남북이 공동경영하고 평양대마방직처럼 경영권이 남측에 있어 북측에 자금이 흘러들어갈 염려가 없는 가장 투명한 운영방식"이라고 밝혔다.

오 교수는 또 "특히 합영회사는 북측 당국자들에게 자본주의의 생산성과 경제적 파급효과를 심어줘 포용정책을 성공시키는 지름길"이라며 "만약 남북의 첫 합영회사가 실패로 끝난다면 북측에 신뢰를 잃게되어 전반적인 남북경협사업에 엄청난 차질이 불가피하게 된다, 차제에 합영회사 등 개인기업의 남북경협사업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도록 남북경제협력기금 운용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태 이사장도 "상환 받을 수 있는 상업 차관을 확대해서 남북경협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고, 북한 내 제조업 투자의 특수성을 고려해 정부가 대출을 확대하고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남측의 유휴 설비를 대북투자 기업과 협력해서 차관 형식으로 북측에 제공하고 상품을 생산하여 남과 북이 상호 공동 이익을 창출해 서로 윈윈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1991년이후 지난해까지 조성된 남북협력기금 4조1253억원 중 민간 경협사업에 지원된 대출금은 기금총액의 4.5%에 불과한 1871억원으로 대부분 최근 개성공단 진출업체에 지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10억 달러에 이르는 남북 교역액의 40%를 담당하는 500여 중소 교역업체 및 위탁가공사업자에 대한 지원은 미미한 실정이다.

또 평양 등 북한에 진출해 위탁가공사업을 하는 중소기업들의 모임인 남북경제협력교류회는 "정부의 남북경제협력기금을 실질적인 경협에 앞장 선 기업들이 사용하기 어렵다면 기금의 설립목적에 어긋나는 것이며 햇볕정책 추진에도 역행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창 사업이 진행 중인데도 수출입은행이 자금회수에 나서는 등 경협에 반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태 이사장은 누구?

김정태 평양대마방직 이사장은 대마사 제조 등의 특허를 소유하고 있는 대마박사다.

2000년 북측과 첫 접촉을 시작해 2001년에는 북한 농업과학원에 종자 및 비료를 지원하여 황해도 해주에 첫 파종을 시작했다. 2002년에는 황해도와 평양시에 파종을 확대하였다. 2003년에는 수의(壽衣), 신발밑창 등 임가공 사업으로 발전시켜 2005년에 합영회사 계약을 체결하였고 창업 당시 330명이었던 직원은 현재 1000명으로 증가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 해 삼베 원단제직을 위한 반수동 직기 88대 등 중요 시설에 필요한 기자재를 평양까지 육로를 통해 두 차례나 운송하여 휴전선을 개방시킴으로서 민간 경협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비즈니스를 잘 모르는 북측을 설득해서 합영회사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김 이사장이 기울인 정성은 남다르다. 우리 남한처럼 사업 여건이 성숙되었다 해도 창업과 운영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은데도 북측과 공동사업을 통해 남북경협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민간단체들의 일회성 물품 전달수준의 교류협력과는 달리 합영회사의 경협은 그 성과를 남북이 함께하면서도 북한 주민을 개방화시키는 엄청난 효과가 있다. 더구나 북한의 중심부인 평양에서 진행되는 경협 사업의 의의와 성과는 최초로 남측 주민들의 평양시내 거주한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개성이나 금강산사업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김 이사장은 지난 10월 26일 2박3일 일정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남북경제협력교류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핵실험 사태 이후 북측의 태도와 현장을 점검하면서 투자지속 여부 등을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김 이사장은 "핵실험 이후 최악의 사태가 올 경우 모든 것을 잃게될 경우도 생각했지만 막상 공사현장을 가보니 활기로 가득찼다면서 스스로 놀라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5월 방북 때만해도 지지부진했던 공사 현장에 이제는 자재가 가득 쌓이고 노동자들이 열심히 공장 외벽을 쌓아올리고 있었다"면서 "북측 경협 실무자들은 핵실험과 경협이 무관하다고 믿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평양대마방직이 문을 닫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물론 모든 국민들의 지혜를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며 평양대마방직의 실질적인 회생방안이 긴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회정의를 위하여/ 정치, 외교, 사회, 문화 등 통일한국의 미래를 위하여/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