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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소민, 김혜원, 나관호, 이명옥, 한미숙(김포공항)
ⓒ 이명옥
요즘은 반나절이면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우스갯소리들을 한다. 사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간에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꽤 많다. 생각의 차이만이 아니라 자녀가 사용하는 언어는 보통 부모들에겐 생소한 외국어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BRI@'한일시민 친구만들기' 행사에 참여하면서 일어를 전혀 모르는 나는 언어 때문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일어라고는 '스미마셍'과 '아리가도'밖에 들어 본 적이 없는 내가 일본에 가서 어떻게 하나? 그런데 조마다 통역을 붙여준다고 했고, 일본 항공기를 이용하는 것도 아닌데다 30여 명이 넘는 단체가 함께 행동을 하기에 어쩌면 별로 걱정할 일이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하네다 공항에서는 방문객 중 한국인들이 많아서인지 공항 직원이 "세관에 신고할 물건이 있습니까?"라는 한국말을 배워서 아예 한국말로 물어보았다. '며칠 있을 것이냐'는 방문 용도 등만 간단한 영어로 물은 뒤 "아리가도"라고 인사를 하면서 간단히 통과시켜 주었다.

'음…, 한국말로 다 하는데 괜히 걱정했네…'라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문제가 생겨난 곳은 음식점이었다. 물수건이 모자라는데 일행 중 아무도 일어를 할 줄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다가 용감한 아줌마인 김혜원 기자, 안소민 기자 등 주부 기자가 나섰다.

▲ 물수건이 필요했던 순간.
ⓒ 이명옥
우리는 무조건 "스미마셍"하며, 무조건 도우미를 부른 뒤, 펼쳐진 물수건을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효과는 그야말로 100%였다. 도우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수건을 한 주먹이나 가져다주었다. 우린 단지 한 사람분이 모자랐을 뿐인데….

▲ 스푼이 필요했던 문제의 찌개
ⓒ 이명옥
또 전골 비슷한 찌개가 나왔는데, 개인 접시와 국자만 있고 개인용 스푼은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한 번의 성공에 용기를 얻어 큰 소리로 "스미마셍"을 외치며 도우미를 부른 뒤 '보디랭귀지'로 스푼을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번엔 우리 보디랭귀지가 신통치 않았는지 도우미는 그저 눈만 끔벅이며 멀뚱멀뚱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용감한 아줌마 세 명이 국자와 앞 접시를 번갈아 가리키며 뭔가를 떠먹는 시늉을 계속했더니, 마침내 뜻을 알아차렸는지 스푼을 가져다주었다.

'오, 수저 하나 구하는데 걸리는 이 멀고도 험난한 길이여…. 이럴 줄 알았으면 필요한 단어 몇 마디라도 외워 둘걸.' 때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다음날이었다. 호텔에서 나오는데 객실을 청소하던 여자분이 "곰방와"라고 인사를 하였다. 무심코 지나치느라 "곰방와"라고 마주 인사를 건네지 못했는데 나중에 한국인은 인사도 안 하는 불친절한 사람들이란 인상을 심어주지 않았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우려면 먼저 인사하는 습관부터 잘 들여야 할 것 같았다.

곤란은 계속 이어졌다. 로비의 식당에서 죽을 푸려고 서 있는데 내 앞에서 죽을 푸던 일본 여자가 내가 일본인처럼 보였던지 빠른 일어로 뭐라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건넸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는 나는 멀뚱멀뚱 그 일본인을 쳐다볼 수밖에. 그제사 그 일본 여인은 서툰 영어로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더니 머쓱한지 다른 음식이 있는 곳으로 옮겨가 버렸다. 얼마나 난감하든지….

드디어 돌아오는 날이었다. 한미숙 기자가 내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기보다 훨씬 먼저 심사대에 간 안소민 기자가 무슨 물건을 잘못 샀는지 공항 직원에게 붙들려 못 나오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말을 못하는 우리는 그저 마음을 졸이며 안소민 기자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안소민 기자가 나왔는데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를 위해 선물용 문구세트를 샀는데 거기에 조그만 공작용 가위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가위를 수하물로 부쳐야 한다고 설명하는데 말을 못 알아들으니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나중에 어찌어찌 그 의미를 파악해 수하물로 부치고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저런 해프닝을 겪으며 다녀온 이틀간의 도쿄 여행에서 서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체험한 것은 내게 큰 유익이 되었다.

겨우 이틀간의 소통 장애로도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띵했는데, 오랜 세월을 소통에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야 하는 이주민이나 농아들의 고통은 얼마나 클까?

▲ 이주 노동자들인 필리핀 형제, 자매들(이제 그들은 쉽게 부딪치는 우리의 이웃이다)
ⓒ 이명옥
이주 노동자나 국제결혼 가족들이 날로 늘어가는 대한민국, 우리가 잠시 겪었던 고통을 우리 땅에서 날마다 겪을 외국인, 그러나 이제 그들은 우리 곁에서 심심찮게 만나지는 우리의 이웃이다.

이제는 낯선 이방인이 아닌, 우리의 이웃인데 우리는 그들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닐지…. 글로벌 시대를 사는 세계인들인 우리 서로 생을 풍요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언어의 장벽을 비롯해 각종 장벽을 허물려는 개인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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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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