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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존경스러운 직업이 무엇이냐라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동시통역사'라고 답하겠다. 잠깐 '택시 기사'를 후보에 놓고 고민했지만,(한국의 택시 운전은 예술이다!) 금세 통역사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버릴 것이 분명하다.

@BRI@통역으로 '체험! 삶의 현장' 하게 해준 '2006 한일 시민 친구만들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참가자 중 가장 불성실한 시민 기자였다. 취재는커녕 제대로 찍어온 사진도 없고, 쇼핑이라곤 800엔짜리 '병아리 만쥬' 가 전부였다.

재일조선인 취재원과의 접촉은 실패했고, 일본의 최근 트렌드를 읽겠다는 욕심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기에 하나 둘 잘 정리되어 올라오는 다른 참가자들의 글을 읽으며 '언제 이 사진들을 찍었담?'하며 괜히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다른 시민기자들의 멋진 기사들이 보여주듯, 이번 행사는 교육, 대학생, 사는 이야기 등의 분야로 나누어진 시민 기자들이 일본의 기자들과 함께 취재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만화 분야 교류자로 합류, 아키하바라의 '디지털 할리우드'라는 대학과 최근 일본에서 성업중인 '메이드 킷사(일본어로 하녀 카페를 뜻하는 '메이드 킷사텡'의 약어)'를 방문했다.

동네 구멍 가게의 간판을 시작으로 텔레비전 광고까지 만화 캐릭터로 도배된 나라가 일본이다. 전 세계 아이들이 닌자 만화에 열광하며 캐릭터 용품을 사모은다. 디지털 할리우드에서는 영화 <데스노트>의 제작자를 만나고, 학교 관계자로부터 교육 시스템이나 졸업생들의 활동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만화 강국'으로서의 일본의 힘은 이 같은 체계적인 교육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영화나 방송 등에서 만화의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재생산하여 활용하는 것 역시 만화 산업을 촉진시키는 중요한 힘이라는 사실도.

메이드 킷사는 일본이기에 가능한 문화라고 생각된다. 일단은 '도련님. 아가씨'라는 용어가 거북스러웠다. 메이드 복장을 한 점원들이 일제히 '도련님, 아가씨! 어서오세요'를 외칠 때의 기분이란. 물론 개인차가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진심이 결여된 말뿐인 섬김(serving)을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문화적 다양성, 일본의 국민성 등을 이유로 하녀 카페의 존재를 긍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내 돈 들여 하녀 카페를 다시 찾을 마음은 없다.

'만화'로 교류하기에는 스스로의 내공이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신 작가분들과 함께 잠깐이나마 만화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어설프게나마 통역이라는 신비한 직업의 현장을 체험했고, 평생 친구 하고 싶은 멋진 사람들을 만났다. 그래서 감히 2006년 최고의 2박 3일이었노라 고백하고 싶다. 내년에 기회가 있다면 트렁크에라도 싣고 가달라고 조르고 싶을 만큼.

각 분야의 시민기자들은 일본어가 통하지 않아도 손과 발로 '혼네(진심)'를 강조하며 친구가 되어갔다.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 그러기에 기쁘다.

진심이 통하는 것이 어디 사람과 사람 사이 뿐이랴. 한해가 다 가도록 여전히 갈등과 분쟁으로 소통 불가능 상태인 곳에 '혼네'만한 약이 없다.

2박 3일의 순간 순간을 담은 짧은 영상으로 취재의 미흡함을 대신하고 싶다. 더 많은 분량을 촬영하지 못한 탓에 얼굴이 담기지 않은 분들도 있어 죄송스럽다. 그러나 모두가 주인공이었다는 '애정 고백'이니, 부디 예쁘게 봐주시길.

덧붙이는 글 | 영상의 마지막에 윤형권 기자님이 찍어주신 멋진 단체사진을 삽입했습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아기는 일본 오마이뉴스 박철현 기자님의 예쁜 딸 '미우'입니다.
음악은 저작권 없는 음원을 공유하는 freebgm.net에서 Alice 님의 곡 'Alice goes again'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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