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품절사태, 죄송합니다" 낫토가 사라진 진열대엔 사과문이 걸려있다. '현재, 낫토가 품절되었습니다. 텔레비전 방영의 영향으로 낫토 판매가 급증해 생산자의 공급이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손님들께 폐를 끼친 점 사과드립니다'
ⓒ 장영미
"수퍼마켓에 낫토(일본식 청국장)가 동이 났더라구."
"그게말야, '아루아루 대사전'에 나왔는데 아침저녁으로 낫토 2팩 씩 먹으면 날씬해진다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하루 2팩은 너무 질릴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아루아루' 꽤 보나보네."


불과 며칠 전 일본친구들과 나눈 얘기였다. 수퍼마켓 진열대엔 낫토 대신 '텔레비전 방송과 관련해 낫토가 품절되었습니다'라는 사과문이 걸려있었다. 방송의 영향력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7일 방송 이후 판매가 2~3배 증가하면서 낫토제조회사들은 수요를 충당하지 못하고 11일자 신문에 제때 공급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과광고를 싣기까지 했다. 생산설비를 풀로 가동함은 물론이었다.

그런데 20일 저녁뉴스는 더욱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발굴! 아루아루 대사전 II'의 낫토 다이어트 관련 방송은 날조되었다며, 문제의 방송을 제작해 방송한 <후지TV> 계열의 <간사이 TV> 책임자들이 사과기자회견을 열었던 것이다.

하지도 않은 실험했다고 속여

@BRI@'발굴! 아루아루 대사전II'의 7일치 방송은 '먹어서 날씬해지는 식재 X의 새로운 사실'이란 것이었다. 미국의 최신정보에 의하면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의 일종으로 젊어지는 호르몬이라 불리는 DHEA를 식생활에 활용해 높은 다이어트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전문가 의견을 곁들여 DHEA의 원료인 이소플라본을 다량 함유한 낫토가 DHEA를 증가시켜 다이어트에 유용함을 밝혔다.

여성 2명에게 미니실험을 실시해 한명에겐 아침에 2팩을, 다른 한명에겐 아침과 저녁에 1팩씩을 먹게 했다. 그 결과 낫토로 날씬해지는 '황금의 법칙'으로 ①하루 2팩 ②아침과 저녁에 1팩씩 ③잘 섞어서 20분 정도 두었다가 먹는 것이라고 소개. 20대에서 60대의 남녀 8명에게 이 방법을 2주간 실시했다. 그 결과 한 남성은 3.4㎏, 여성은 2.9㎏ 등 전원의 체중이 줄었으며 중성지방치가 높았던 2명은 완전 정상치가 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0일의 기자회견과 방송 홈페이지에 실린 사과문에 따르면, 적어도 6군데가 날조되었다.

①미국에서 남녀 56명에 대한 실험결과로 제시한 3장의 비교사진은 피험자와 무관하며 ②템플대학의 아서 쇼츠 교수의 인터뷰 내용 중 언급하지도 않은 사실을 한 것처럼 방송했고 ③피험자 8명 중 2명의 중성지방치가 정상이 된 것으로 수치를 보고했으나 실제로는 측정하지도 않았다는 것.

또 ④여성 2명에게 실시한 미니실험에서 혈중 이소플라본을 측정하지 않고 가공의 결과를 제시했으며 ⑤피험자 3명의 DHEA량도 실제로 측정하지 않고 무단으로 그래프를 인용했으며 ⑥미국의 연구 소개부분에서 마치 쇼츠 교수의 연구인 것처럼 구성되었으나 실제로는 다른 교수의 연구였다는 것이다.

"스태프가 취재 난항으로 초조했다"

▲ 낫토 다이어트가 날조됐음이 밝혀진 다음날인 21일, 수퍼마켓의 진열대는 낫토가 정상 진열됐으나, 일부 진열대는 여전히 빈 상태였다. 낫토 붐에 힙입어 생산을 늘린 결과 진열대를 채울 수 있었으나 날조로 판명된 현재 판매여부는 불투명하다.
ⓒ 장영미
회견에서 치구사 소이치로 사장은 '낫토의 다이어트 효과는 학설에 근간을 둔 것이다. 어디까지나 데이터 부분이 잘못된 것일 뿐'이라고 여러차례 주장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추궁에 결국 날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편성국장은 "기대했던 교수에게 이야기를 못 듣는 등 미국에서의 취재가 난항을 겪어 스태프가 초조했던 것 같다"고 답변했다.

릿쿄대의 하토리 타카아키 교수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작측에서 충분한 검증노력없이 서둘러 방송한 인상"이라며, "보도, 과학 프로그램이 아니므로 어느 정도 불완전해도 괜찮다는 의식이 작용했다면 큰 문제"라고 지적해 방송제작과정의 철저한 검증을 요구했다.

'발굴! 아루아루 대사전II'는 어떤 방송?

▲ <간사이 TV> 간부들 기자회견 및 날조 사실을 전하는 <아사히 닷컴>의 기사.
'발굴! 아루아루 대사전II'는 지난 96년 10월부터 2004년 3월까지 방송되었던 '발굴! 아루아루 대사전'의 바통을 이어받아 2004년 4월부터 시작됐다. 다이어트, 미용, 건강을 테마로 생활개선을 제안하는 생활정보 프로그램으로 시청률 10%대의 인기방송이다.

문제가 된 1월 7일치 방송은 간토지구 14.5%, 간사이지구 17.4%, 나고야지구 19.0%의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이 방송은 <간사이 TV>의 프로듀서 2명, 외주 제작회사의 프로듀서 4명이 책임자로 참가해 그 밑에 여러 프로덕션의 약 100명이 3개월에 걸쳐 조사, 취재, 실험을 거쳐 방송을 만든다.

문제의 '낫토편'은 프로덕션 스태프 5명이 담당했으며 피험자는 방송협력자를 모집하는 회사에서 인터넷을 통해 뽑았다. 제작회사의 임원 한 명이 컴플라이언스(법령준수)를 담당하는 등 나름대로 위기관리를 해왔으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 간사이TV >는 조사위원회를 발족해 과거방송분에 대해서도 조사함은 물론 이 프로그램의 거취에 대해서도 검토할 방침이다. 또한 21일 치 방송분도 취소돼 사과방송과 함께 다른 방송으로 대체되었다. 관할 부처인 총무성은 방송법 저촉여부를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낫토 광상곡? 오늘은 낫토를 먹을 수 있을까?"

낫토를 즐겨먹는 일본인들에게도 하루 2팩은 좀 부담스런 양이다. 그래도 평소처럼 생활하면서 낫토만 먹으면 날씬해진다니, 그것도 유명방송에서. 이런 멋진 유혹이 없다. 덕분에 지난 2주간 여러사람이 울고 웃었다.

날조사실이 알려진 21일 오전부터 이와 관련한 블로거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블로거들이 내건 제목만 봐도 이번 사건이 얼마나 어이없었는가를 보여준다.

'텔레비전에 놀아나는 사람들', '방송날조, 역시 낫토 다이어트는 거짓이었던가', '이것도 거짓, 저것도 거짓', '낫토 광상곡? 오늘은 낫토 먹을 수 있을까?', '날조, 야라세(거짓보도)는 싫어', '낫토 다이어트에 속아서', '세상엔 날조 아루아루(방송명을 빗대 '있다있어'라는 말로 비아냥)' 등

방송에 걸려든 한 블로거의 한탄, "방송 후 품귀현상으로 하루 2팩의 낫토를 확보할 수 없었는데 21일 한 백화점에 갔더니 산더미처럼 쌓여있길래 잔뜩 사와서 밤중에 먹고있는데… 뉴스에서 날조사실이 보도되고 있었다… 흑흑…."

이밖에도 날조방송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22일 자 <아사히 닷컴>은 20일과 21일 이틀간 < 간사이 TV >에 146건, < 후지TV >에 약 800건의 시청자불만이 쏟아진 것으로 전했다.

태그:#낫토, #일본식 청국장, #낫토 다이어트, #날조 방송, #날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