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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은 23일 밤 10시 청와대에서 한 신년특별연설을 통해 "군사독재가 무너진 이후에는 언론이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하여 시민과 정부 위에 군림하고 있다"며 언론에 다시한번 날을 세웠다.
ⓒ 청와대
이계안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죽어야 한다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흔들려선 안 된다고 했다. 이 의원은 탈당을 선언했고, 노 대통령은 창당정신을 재강조했다.

어제(23일) 뉴스의 중심에 섰던 두 인물의 말과 행동은 이렇게 다르다.

노무현-이계안, 진단은 비슷하나 처방은 다른 두사람

그런데 희한하다. 상황 인식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추구하는 목표와 강령이 옳다면서 "상품 그 자체에 대한 평가는 뒤로 한 채 '열린우리당 표'라는 이유만으로 철저히 외면한 시장"을 탓했다.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국정 전반에 상당한 성과가 있었는데도 언론의 '흔들기' 때문에 이 성과가 묻히고 있다고 했다.

상황 인식은 이처럼 다르지 않은데 처방은 탈당과 사수로 극명히 갈린다. 왜 이렇게 엇갈리는 걸까? 힌트가 있다.

이 의원은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설계, 철저한 품질관리, 완벽한 애프터서비스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도요타라는 이미지 때문에 미국 소비자로부터 외면 당한 아픔을 '렉서스'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창조해 극복한 전략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특권과 반칙의 구조를 해소하는 것이 이 시대의 역사적인 과제라고 했다. 군사독재가 무너진 이후에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한 언론이 특권과 반칙의 구조 한가운데에 있다며 언론이 정확하고 공정한 언론, 책임있게 대안을 말하는 언론, 보도에 책임을 지는 언론이 될 때까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시장관이 다르고 시장정책이 다르다. 이 의원은 순응하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맞서려 한다. 이 의원은 마케팅 저해요소를 시장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교란세력으로 규정하고 척결하려 한다. 이 의원은 빌미를 주지 않으려 하고 노 대통령은 화근을 도려내려 한다.

'이계안표 렉서스'는 보세표인가, 명품인가

▲ 이계안 의원(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자연스럽다. 이 의원은 시장을 정상상태(약육강식도 이에 포함된다)로 본다. 그래서 진인사 대천명의 자세를 가다듬는다. 목욕재계하고 옷을 갈아입으려 한다.

노 대통령은 아니다. 시장에서 특권과 반칙이 판친다고 본다. 진인사 대천명 같은 소극적인 태도로는 마케팅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근육강화훈련을 하는 게 낫다고 여긴다.

갈래를 나누다 보니 너무 단순해졌다. 둘 중 하나에 ○표를 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따로 짚을 점이 있다. 이 의원은 이런 말을 남겼다. "노 대통령과 겹쳐서 보이는 열린우리당"이라고 했다. 국민이 외면하는 이유로 바로 이 점을 암시했다.

이 의원의 이런 암시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이 시장에서 외면 받는 이유를 품평자에서만 찾을 수 없다. 동업자도 문제가 된다. 그의 탈당은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동업자 떼어내기' 차원이다.

이해를 납득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이 의원 스스로 답해야 한다. '동업자의 국정'과 차별화되는 '열린우리당의 상품'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상품'이 어떻게 해서 '동업자 노무현' 때문에 틀어졌는지를 말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가 만들려는 '정치의 렉서스'가 명품인지 보세품인지가 가려진다.

노 대통령은 이 의원만큼 동업자에 대한 문제의식이 크지 않다. 오히려 문제의 근원을 언론에서 찾고 있다. 그렇기에 가부 판단이 쉬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정책이 문제냐, 언론이 문제냐

노 대통령은 언론의 '반칙'을 조목조목 열거했지만 '반칙 언론'은 다시 노 대통령의 '실정'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반칙 보도'가 문제가 아니라 '반품 정책'이 문제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선 결론이 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판단 그대로 '반칙 언론'이 적대적 감정을 갖고 정부 정책을 흔드는 게 사실이라 해도 이들이 궁지에 몰릴 여지는 그리 크지 않다. 이들이 정책의 반품 사유, 리콜 사유를 끊임없이 꺼내 드는 한 대통령과 '반칙 언론'의 주고받기는 사실의 진위관계를 떠나 토론으로 묘사된다.

국민 눈에는 민주사회에서 흔히 보는 정부와 언론의 팽팽한 긴장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이고, 결국 판단 잣대로 언론 행태가 아니라 긴장을 유발하는 요소, 즉 정책의 적합성을 선택하게 된다. 노 대통령이 설정한 길항관계에 국민이 들어와 'OX'를 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따로 짚다 보니 그렇게 된다. 가부 선택기준은 상품 그 자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상품 그 자체에 대한 국민의 체감지수다.

태그:#언론, #반칙 언론, #반칙 보도, #반품 정책, #이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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