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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한마디로 갈등의 포화상태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지난 수년간 물고가 터지듯 각종 갈등이 쏟아져 나왔고 이젠 정부도 국민들도 해결은 못해도 웬만큼 적응은 한 것 같다.

남북 갈등부터 시작해 자유무역협정 갈등, 남남 갈등, 계층 갈등, 보수 대 진보 갈등, 노사 갈등 등 한국사회가 직면한 갈등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국민들의 피부에 가장 심각하게 와 닿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각종 정부정책과 관련된 이른바 공공갈등이다.

미군기지 건설에 따른 평택 대추리·도두리 이주 갈등, 고속철 건설과 천성산 보호 갈등, 한탄강댐 건설 찬반 갈등 등 중앙정부의 정책과 관련된 굵직한 갈등부터 양천구 목동 소각장 문제, 학부모 급식당번제 폐지 문제 등 지방정부나 관공서의 한 부서가 관련된 것까지 모두 공공갈등의 영역에 속한다.

쏟아지는 공공갈등

▲ 지난해 5월 대추분교 철거 모습. 사회적 논란이 됐던 평택 대추리 ·도두리 문제는 결국 지난 2월에 양측이 합의문에 서명하기는 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힘이 밀려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왜 이렇게 갈등이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이것이 한국사회의 총체적 위기를 나타내는 지표의 하나일까?

답부터 말하자면 공공갈등이 쏟아지는 것은 국민들의 역량이 성장해 정부 정책 감시와 자기 권리 주장이 자연스런 일이 되었기 때문이고, 위기라기보다는 민주주의 사회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느끼는 부담이 큰 이유는 이것이 민주주의가 정착해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새로운 현상이기 때문이고, 한국사회가 여기에 적절히 대응하는 방법을 아직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한국 상황은 1970년대 미국사회에서 공공갈등이 급증하던 상황과 비슷하다. 당시 미국에는 시민사회 단체들이 급격히 증가했고 정부 정책에 대한 감시도 강화됐다. 또한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도 높아 시민들은 당사자들을 배제시킨 채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집행하는 정책에 따르는 것을 거부했다.

당연히 환경과 개발 문제를 둘러싼 정부기관, 공동체, 시민단체들, 기업들 사이의 갈등이 많아졌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사회에서는 이런 공공갈등을 당사자 사이의 직접 대화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이 시기에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80년대 초에는 비공식적으로 행해지던 노력들이 일부 제도화되기에 이르렀다. 어느 나라보다도 시대적으로 앞섰던 이런 노력 때문에 미국의 공공갈등해결은 이 분야의 일반적 모델로 여겨진다.

공공갈등의 발생이 자연스런 것이라곤 하지만 도대체 한국사회에서 공공갈등이 증가만 하고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발생한 모든 공공갈등의 첫 번째 근본 원인은 당사자를 배제한 공공기관들의 일방적 정책 입안과 실행이다.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지만 권리를 주장하는 당사자들이 이에 저항하면 결국 정책을 실행할 수 없고 심각한 갈등만 야기하기 때문에 결국은 사회적 합법성을 의심받게 된다.

당사자들을 배제한 공공기관들

▲ 당사자들을 배제한 정책들은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다. 사진은 지난해 7월 25일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한탄강 유역 주민과 환경단체 회원 1백여명이 '한탄강댐 강행하는 정부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탄강댐 건설계획의 경우 수몰예정지 주민들조차 정부 계획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오히려 해당 기관이 흘린 '후한 보상금' 소문 때문에 주민들 사이의 갈등만 커져 결국 공동체가 파괴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철원군과 환경단체들의 강한 반발로 정책은 표류하게 되었고, 중간에 조정 시도 등 우려곡절을 겪다가 1999년 시작된 일이 결국 작년 8월에야 최종 결정이 났다. 정부가 처음부터 당사자들과 적극적으로 협의했더라면 훨씬 일찍 나은 결론이 났을 것이다.

평택 대추리·도두리의 경우 미군기지 건설 문제는 주민들에게는 오랜 생활의 근거지를 포기해야 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당사자들의 우려와 이해를 배려해 사전 협의하는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강제력을 동원한 밀어붙이기로 일관했다.

정부 입장에서 현실적인 국익과 효과적인 정책 실행이 정말 중요했다면 더욱 당사자들과의 대화에 주력하고 인내해야 했다. 결국 지난 2월에 양측이 합의문에 서명하기는 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힘이 밀려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최종합의 과정에서조차 주민들의 이해를 공유하고 협의하지 못해 갈등의 재발 가능성을 없애지 못한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공공갈등에 대한 공공기관의 '무시하기' 전략 구사다. 많은 공공기관들이 당사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발표한다. 어떤 경우에는 정책 입안이나 수정을 요청하는 당사자 집단들의 요구를 몇 년씩 묵살하기도 한다. 공공기관의 이러한 무시에 당사자들은 결국 조직을 꾸리고 거리로 나서게 되고 그에 따라 갈등이 심화된다.

사실 이 상황은 당사자 집단과 해당기관의 소통이 거의 막힌 상태로 이 시점에서 갈등을 해결하려면 몇 배의 노력이 더 들어간다. 바로 한국사회에 갈등이 증가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취약점이다.

세 번째 문제는 공공갈등을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의 부족을 들 수 있다. 중립적 입장에서 공공갈등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적 역량을 지닌 영역은 시민사회와 학계이다. 공공갈등해결의 일반적 모델을 발전시킨 미국의 상황을 봐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 한국의 시민사회와 학계는 이러한 역량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

사회적 논쟁과 시민운동을 주도하는데 있어서는 상당한 역량을 키웠지만 갈등에 처한 당사자들과 정부기관이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도와주는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가치관이나 신념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양천구 목동 소각장 문제처럼 당사자나 정부기관 모두 난처한 상황에 처한 경우도 있지만 직접 대화에 실패한 당사자들이 도움을 청할 곳이 아무데도 없는 것이다.

앞서 문제를 지적한 것은 사실 어느 특정 영역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참여민주주의 실천과 대화에 미숙한 정부기관, 일단은 조직을 꾸려 거리로 나가 세를 과시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당사자 집단들, 그리고 아직은 갈등의 조정자로서 역량을 갖추지 못한 시민사회나 학계 모두 한국사회의 현재 모습이다.

또한 한국사회 구조상 사회 어떤 영역도 인력, 자원, 심리적 여유 면에서 넉넉한 곳이 없다. 한마디로 모두가 인정해야 할 현실이고 한국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다.

이제 한국사회 전체 시각에서 공공갈등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유감스런 얘기지만 공공갈등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것은 한국사회가 보다 나은 민주사회로 가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 같은 것이다.

공공갈등을 다루는데 있어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갈등에 대한 진지한 접근일 것이다. 환경, 개발, 교육, 복지 정책 등을 둘러싼 모든 공공갈등은 갈등에 처한 공동체와 개인, 그리고 동시대 사회 구성원들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기관, 당사자, 사회 모두 공공갈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태그:#공공갈등, #갈등해결, #대추리, #미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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