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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편수의 지시에 따라 전통 가옥을 짓고 있는 전수학교 실습생들.
ⓒ 우리한옥
"면하고 못하고 수평으로 못 치면 다 구부러져!"

강원도 화천읍 신읍리 원앙마을. 마을 어귀에 아담한 육모정 하나를 짓는 현장이지만 활력만은 대규모 공사장 못지않다. 많아야 4명이면 충분할 규모건만 30여명의 목수가 북적대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전통황토집전수학교'(아래 전수학교) 수업 현장. 30여명의 예비 목수들이 쩌렁쩌렁 고함치는 도편수(목수 리더)의 지시에 따라 원앙마을에 그럴싸한 정자 하나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삼삼오오 모인 목수들은 주로 구멍을 뚫고 지도리를 따내기 위해 어떤 공구를 사용해야 할지 등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 늠름하게 우뚝 솟은 육모정의 대들보가 무색하리만큼, 목수 일의 기초라 할 수 있는 망치질로 고함치는 도편수의 역할도 이색적이다. 고함을 치는 이나 듣는 이나 진지함을 잃지 않지만 표정만은 환하다. 오늘의 주요 공정은 오량도리를 조립하여 대들보 위 오량장여와 하나로 결속하는 일.

취재 당일은 마침 스승의 날(15일)이었다. 학생들의 작업 하나하나를 챙기시느라 분주한 교수님의 가슴 한편에 빨간 카네이션이 눈에 띈다. 스승만큼이나 나이 든 학생들이지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에 넉넉한 모습이다.

23세 청년에서 60대까지 꿈은 모두 도편수

2004년 개설되어 세 해를 훌쩍 넘긴 전수학교는 강원도 화천군청이 운영하는 기술학교다. 전국엔 이미 대목장(주로 집을 짓는 목수, 소목장은 가구나 조각을 담당하는 목수)을 양성하는 전문기관이 여럿 있지만, 전통 건축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전수학교는 뭔가 특별한 매력을 던져 주고 있나 보다. 지난 3월 모집 때는 30명 모집에 90명이 몰려 2시간 만에 마감되었단다.

수강생들은 크게 두 부류다. 기술을 배워 취업하길 원하는 젊은 층과 자기 집을 손수 지어 보려는 의욕적인 중장년층.

열악한 기숙 환경이지만 군대 이후 처음으로 해보는 집단생활 재미가 쏠쏠하다고. 23세 청년에서 많게는 60세 어르신까지 저마다 사연을 안고 찾아왔지만 멋진 도편수를 꿈꾼다는 점에선 매한가지.

▲ 전통 건축의 새바람을 기대해도 될까. 산뜻한 복장이 현장의 분위기를 한층 밝게 한다.
ⓒ 김형우
전수학교 12기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는 장동욱(23)씨.

"군에 있을 때 건축에 관심 많았던 터라, 삼촌의 제안을 받고 왔는데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어요. 지금 하는 일과 관련해 친한 친구들과도 소통하기 쉽지 않지만 지금은 전통 가옥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선배 기수들이 지어 놓은 집을 둘러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볼 생각입니다. 도편수가 목표죠."

솔직히 전통적인 한옥 모양이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는단다. 현대식으로 바꿔볼 생각이라고. 현대 건축과 전통 가옥의 장점을 섞은 퓨전 건축? 신세대 목수다운 발상이다.

"서울에 있는 집도 손수 지었어요. 한옥이 몸에 좋다고 해서 은퇴 후 지어 보려고 학교에 들어왔죠. 기술을 모르면 도급을 주더라도 기술자의 의지대로만 가게 돼 있지만 경험이 있으면 내 의견을 반영할 수 있잖아요.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수강생 중 가장 고령인 박자영(60)씨는 기숙사 생활이 말도 못하게 힘들단다. 간혹 사정 상 밖에서 지내는 수강생도 있지만 함께 생활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보아 꿋꿋이 기숙사 생활을 버티고 있다고.

"그동안 일본인을 대상으로 관광업을 했어요. 웰빙 바람 덕에 일본 관광객이 한국에 오면 주로 사우나, 마사지 체험에 한정되는 추세인데, 기회가 된다면 소박하게나마 한옥 체험 마을을 지어 한국의 주거 문화를 경험해 보게 하고 싶어요."

▲ 전통 건축에서는 소나무를 백가지 나무 중에 제일로 친다. 좋은 목수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좋은 나무를 구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라 한다.
ⓒ 김형우
기술 배우고 집도 짓고 인구 늘리고 '일석삼조'?

놀랍게도 전수학교의 수강료는 무료다. 무료라는 사실 자체보다도 그것이 가능하도록 만든 전수학교만의 특별한 교과 운영이 이채롭다. 전수학교는 학습을 위해 따로 현장을 갖추거나 수업 내용 골격만 세우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화천군민의 생활 터전을 그들의 현장으로 삼되, 사람이 들어와 바로 살림살이를 풀어놓을 수 있는 수준까지 실습의 수위를 현실화하고 있다.

과정은 이렇다. 한옥이든 흙집이든 전통 가옥을 짓겠다고 화천군민이 신청하면 학교 관계자와 협의를 거쳐 설계안을 만들고, 경험 많은 교수와 실습생들이 투입돼 집을 완성한다. 현재 작업 중인 원앙마을 육모정도 주민들의 신청을 받아 진행하는 경우다.

단가는 신청자가 원하는 수준 내에서 조율되며 자재비는 물론 신청자 부담이다. 하지만 전통 가옥 건축비가 대개 인건비로 나간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신청자에게는 엄청난 혜택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변 여러 곳에서 신청이 쇄도하지만 선정 기준은 분명하다. 접수 영순위는 바로 외지에서 화천군으로 주소지를 옮기는 사람이다.

이는 전수학교가 본디 화천군 인구 늘리기 차원에서 모색됐기 때문이다. 2003년쯤 인구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음이 확인되자, 곳곳에 군대가 있다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인지도가 없는 화천군에 위기감이 팽배했다. 지역의 기관, 사회단체와 머리를 맞댔고 자연, 생명, 건강 등의 가치를 행정 목표로 삼아 이에 걸맞은 사업으로 전수학교라는 아이디어가 제출됐다.

그렇다고 단순히 건축주만 이득을 보는 사업은 아니다. 건축주를 포함,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는 수강생, 그리고 지방 행정의 변화를 모색하는 화천군 3자가 학교를 매개로 저마다 목적을 달성하되, 더 큰 의미도 창출하는 방식이다. 바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확대하고 계승하는 문화운동의 지평이다.

집을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소유의 대상으로 극화시킨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집의 가치를 되살리는 대안 문화의 불씨가 강원도의 어느 한 산골짝에서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 전수학교의 현장은 화천군민 삶의 터전이다. 화천군 신읍리 원앙마을의 요청으로 마을 육모정을 짓고 있는 전수학교 학생들.
ⓒ 김형우
"황토집으로 전통가옥 대중화해야"

이 기가 막힌 기획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교장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 대목장 일을 하다 학교 개설 때부터 지금까지 총괄을 맡고 있는 한진(45) 전수학교 교장.

신청이 들어오면 가옥주의 막연한 요청 사항에서 반영할 것은 반영하고 자를 것은 잘라, 전문적인 설계안을 내놓아야 한다. 적절한 가격대를 조율하는 일에서부터, 작업 일정을 짜고 학교 업무 전반에 걸쳐 군청과 협의하는 일도 교장의 몫이다. 거기다 취업 알선까지. 공공연히 취업을 보장하진 않지만 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취업되었단다.

지난주에는 낙산사 상량식에 다녀왔다. 낙산사 현장에 전수학교 졸업생 6명이 목수로 참여하고 있어서 격려차 방문했던 길이었다고. 참 뿌듯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한다.

"한옥에 대해 최근 관심이 높아졌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가격 면에서 아파트 분양가와 비교해 보면 결코 비싼 건 아닙니다. 시멘트 집 수명이 보통 40~50년이라면, 한옥은 2, 3백년이거든요."

한옥의 장점을 강조하는 한 교장이지만 무조건 전통을 고수하자는 건 아니다.

"결코 비싸다고 볼 수 없지만, 기와를 놓으면 가격이 훌쩍 뛰죠. 한옥 가격이 싸지 않은 것은 표준화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옥을 하나의 모델로 똑같이 지어놓을 순 없기 때문이죠. 한옥의 맛은 주변 형세에 어울리게 고유의 틀을 만드는 데 있어요. 하지만 이제 환경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한옥의 장점을 살리되 자재를 현대식으로 바꿀 때가 된 거죠."

한 교장은 '전통황토집전수학교'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한옥은 황토집의 하위 범주라고 말한다. 최근의 웰빙 바람을 타고 황토를 하나의 브랜드로 내세우긴 했지만, 좀 더 정확히는 흙집을 우리 전통 가옥의 원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비싼 집인 거 맞다"고 말하는 한 교장에게 나무보다는 흙이 더 싼 재료여서 그런 걸까. 한옥이 대중의 마음으로 더 낮게 내려올 계기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어찌됐든 "나무ㆍ흙ㆍ돌 등 천연재료만으로 지은 집에서 사는 것이야말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의 시작"이기에 차세대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고된 일을 즐거운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다 한다.

올해로 세 돌을 맞은 전수학교는 그간 260명이 졸업했고, 수강생들이 지은 집은 정자를 합해 17채나 된다. 애초 화천군이 겨냥한 전수학교의 취지에 맞게, 학업을 마치고 아예 화천군에 눌러앉는 경우도 여섯 가정이나 된다.

전수학교는 앞으로 '시즌2'를 준비 중이다.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고 전문적인 과정을 개설하기 위해 간동면 유촌리 8740평의 부지로 학교를 옮길 예정이다. 물론 신축할 전수학교도 다음 기수 수강생들이 짓게 된다. 버릴 것 하나 없는 효율적인 운영이다.

지방 행정의 창조적 발상으로 전통문화를 새롭게 열어젖힐 멋진 공간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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