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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가지수 1600시대. '묻지마 투자'와 '상투 잡기'의 갈림길 속에 투자자들은 설왕설래할 수밖에 없다. 여의도 증권사 로비에서 만난 이종일 차장(왼쪽)과 김혜원 기자
ⓒ 오마이뉴스 김시연

2년 전부터 주식투자에 뛰어들어 200~300% 수익을 내고 있다는 지연이 엄마, 적립식 펀드니 해외 펀드니 간접투자 상품에 투자해 50% 이상 수익이 나고 있다는 동석이 엄마, 이런 아줌마들의 무용담에 힘입어 곱게 부어나가던 적금까지 깨 들고 증권사를 찾아가 계좌를 개설하고 왔다는 보라 엄마…. 최근 아줌마들 사이에 또다시 주식투자 바람이 불 조짐이다.

이런 시대의 움직임을 외면한 채 가만히 앉아있자니 왠지 저들에 비해 뒤처지는 것 같기도 하고 무작정 뛰어들자니 90년대 후반 '묻지마 투자'의 악몽이 떠오른다. 자산운영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한동안 외면하고 살아온 탓에 경제나 투자에 대해 정보도 없고, 증권사나 은행을 찾아 상담받을 용기를 내기엔 자금이 너무 적다.

숨죽이던 개미 아줌마, 다시 객장을 찾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지난 1년간 <오마이뉴스>에 꾸준히 증시 분석 기사를 써온 이종일 시민기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종일(38) 차장은 한국투자증권 e고객부 차장으로 VIP 고객들을 상대로 온라인투자 상담을 하는 한편 증시관련 칼럼을 꾸준히 쓰고 있다.

▲ 수년째 증권사 객장에서 일하다 현재 본사 e고객부에서 일하고 있는 이종일 차장은 은행 적금 위주 자산 운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얘기한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이종일 차장이 일하는 여의도 증권사를 찾은 지난 5월 17일 오후. 주가지수는 1615.58로 전일 대비 14.98포인트 상승하며 사상최고치를 또다시 갈아 치웠다.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비율이 52%나 됩니다. IMF 이후 40%대까지 떨어졌는데 다시 회복되는 추세고요. 오늘(17일)만 해도 개인이 1000억원을 순매수했으니 개인투자자의 힘도 무시하기 어렵지요. 개인투자자가 증가하면 꼭대기가 가깝다는 말이 흘러나오고는 있지만 아직 과열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단기라면 모르겠지만 장기투자를 생각한다면 아직도 투자 메리트가 있다는 것이지요."

'재테크' 못하는 여자는 '신(新) 칠거지악'에 속한다는 말도 있듯 이제 재테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요즘 상승장을 타고 쌈짓돈으로 목돈을 만들었다는 아줌마들의 과장 섞인 무용담을 들으면 나도 한번, 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주식으로 패가망신했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터라 아무리 주식시장이 좋아 보여도 선뜻 직접투자에 나서기가 쉽지만은 않다. 더구나 요즘처럼 높은 지수를 '상투'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상태라면 말이다.

"주식 올인 곤란하지만 은행만 고집해도 안돼"

"지금의 높은 주가지수가 직접투자에 나서기에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투자방식인 제1금융권, 즉 은행만 고집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제는 투자패턴을 바꿀 때입니다. 금리는 더 떨어질 것이고 더 이상 저축으로 돈을 불리기는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미국의 경우 개인자산의 30% 정도를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10% 정도에 불과하거든요. 주식에 '올인'하라는 게 아니고 저축은행, 증권, 펀드 등 다양하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산운용협회(www.amak.or.kr)가 발표한 '전체 펀드 판매 및 적립식 판매 현황'에 따르면, 2007년 2월 말 현재 전체 펀드 계좌 수가 1330만2천개다. 국내 전체 가구 수를 1598만 가구(2005년)로 볼 때 약 83%, 즉 10가구 가운데 8가구가 펀드 계좌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직접투자 역시 지수가 급등한 최근 들어 높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일반인들의 성향 역시 저축보다는 투자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식이다.

▲ '무주식 상팔자 5년' 끝에 증권사 문을 두드린 김혜원 시민기자.
ⓒ 오마이뉴스 김시연
저금리시대 이 같은 추세를 볼 때 개인자산의 규모가 크든 작든 은행만 고집하기보다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운용해야 한다는 점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선뜻 주식시장에 뛰어들 용기도 나지 않는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아줌마들 사이에서 주워들은 정보와 소문만 믿고, 혹은 그럴싸한 말로 포장한 텔레비전 경제프로그램의 내용만 믿고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손해를 안겨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식에 대해 잘 몰라 직접투자에 자신이 없다면 간접투자를 먼저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금융상품이 적금만 있는 줄 알지만 증권사는 물론 금융사 창구에 가 보셔도 아주 다양한 상품이 나와 있거든요. 고수익 고위험 성장형 상품도 있지만 본인의 투자 성향과 패턴에 맞추어 원금보장형 상품도 있습니다. 이전에 적금만 고집했다면 이제는 조금씩이라도 분산해 적금도 넣고, 간접투자 상품인 적립식 펀드에도 가입하고, 좀 더 여유가 되면 직접투자에도 나서보라는 것입니다."

"해외펀드로 갈아타?"-"해지수수료부터 따져보세요"

나 역시 자금규모는 크지 않지만 두 개의 적립식 펀드와 하나의 적금, 그리고 하나의 유니버셜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적금은 3년 만기로, 단기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위한 것이고 적립식 펀드와 유니버셜 보험은 노후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고민이 많다. 높은 지수에서 어느 정도 수익을 낸 펀드를 해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들처럼 수익이 났을 때 중도 해지하고 요즘 한창 유행이라는 해외 펀드나 직접투자로 갈아타고 싶은 유혹이 강하다.

낮은 이율의 적금 역시 계속 부어 나가야 하는지 고민이다. 두 계단, 세 계단씩 성큼성큼 앞으로 나가는 펀드나 주식에 비해 죽으라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적금이라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해지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으로 갈아타야 하는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 주식투자를 노후 대비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종일 차장.
ⓒ 오마이뉴스 김시연
"이미 수익을 낸 펀드라도 중간에 해지하고 갈아타는 것을 권해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약관을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해지 시 부담하는 수수료도 적지 않거든요. 해지수수료와 운용수수료, 세금 등을 부담하고 나면 실제 수익률은 훨씬 적어지거든요. 다른 펀드로 갈아타는 것도 문제입니다. 새 펀드가 지금의 수익만큼의 수익을 올리려면 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 안에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해외펀드에 대한 맹신 역시 경계했다.

"요즘 해외펀드가 비과세혜택을 받게 되면서 돈이 몰리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익률은 소문만큼 대단하지 않습니다. 잘 따져보면 오히려 국내펀드 수익률이 더 높은 경우가 많거든요. 해외펀드 역시 묻지마투자는 금물입니다. 이름은 베트남 펀드인데 실제로 베트남에 투자되는 건 아주 적은 펀드도 있습니다. 이름만 해외펀드이지 실제 내용은 그게 아닌 펀드도 있으니 가입 전에 잘 살펴보아야 낭패를 보지 않습니다."

'무주식 상팔자 5년'...주식투자로 노후 대비를?

그렇다면 직접투자는 어떨까? 나도 IMF 이전에는 증권사에 개인계좌를 가지고 직접 주식매매를 하던 '개미투자자'였다. 한때는 잘 나가는 개미 아줌마로 배당금이니 매매차익 등을 챙겨 제법 돈 쓰는 재미도 즐겼다. 하지만 몇 년 가지 못해 IMF를 맞았고 가지고 있던 주식의 가치가 10분의 1, 20분의 1로 줄어드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아픈 경험 이후 가지고 있던 주식을 모두 처분하고 '무주식 상팔자'로 살아온 지가 5년도 넘는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아무리 주식시장이 좋아 보여도 절대로 그쪽을 향해서는 시선도 주지 않겠다고 결심했건만 요즘의 주식 시황은 나의 굳은 결심마저 살그머니 녹여 낼 만큼 유혹적인 것이 사실이다. 지지부진한 적금을 깨서 이참에 다시 한번 과거의 영화를 누려봐? 30% 수익이 난 펀드를 하나 정리해 투자에 나서 봐?

"주식투자는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만큼 위험도 따르게 마련입니다. 적금과 펀드를 모두 해약해 직접투자에 뛰어들겠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죠. 적금과 펀드 비율을 조금 줄이고 주식에 직접투자에 보는 것도 권할 만한 방식이지요. 단기수익을 노린다면 위험이 크겠지만 10년 이상 장기 계획으로 목돈을 마련하려면 주식도 아주 유용한 투자 수단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주식투자로 노후를 대비하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주식투자로 노후를 대비한다? 미래가치가 있는 기업을 골라 10년 이상 매달 적금을 넣듯 일정 금액의 주식을 사서 모으다 보면 적어도 적금이나 연금보험보다는 높은 이익을 기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요즘 가치투자 가치 투자하는데, 10년 이상 장기적인 투자를 생각하면 가치투자에 주목해야 합니다. 과거에 워렌 버핏이 코카콜라에 투자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의 미래 가치를 본 것이지요."

하지만 가치투자, 장기투자라고 해서 누구나 워렌 버핏처럼 성공하라는 보장은 없다. 기업에 대한 정보가 한정된 일반인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기업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온라인시대 정보 평준화...많이 아는 게 힘"

▲ 인터넷시대에도 신문 경제면을 통해 꼼꼼히 정보를 챙긴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이종일 차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문 스크랩을 보여주면서 개인들도 일간지 경제면만 꼼꼼히 챙겨본다면 주식거래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증권사나 은행창구에서 고객들을 대상으로 투자 상담을 하는 직원들도 특별한 정보망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처럼 이렇게 신문을 꼼꼼히 읽고 필요하다 싶은 내용은 스크랩도 하고 다른 신문과 매체의 내용을 비교도 하면서 정보를 얻는 것이지요. 신문에 난 기업뉴스나 투자정보들을 열심히 읽고 정리하다 보면 몇몇 눈에 띄는 기업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식투자에서 성공하려면 이 정도의 노력은 필수죠."

이종일 차장은 요즘 8살 난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함께 신문 경제면을 보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저 쉬운 글씨를 읽기만 했던 아이가 요즘 들어서는 "펀드가 뭐예요?", "주식이 뭐예요?"라며 질문을 한다니 자연스럽게 무릎 위 경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펀드의 인기에 힘 입어인지 어린이날 선물이나 생일 등 기념일에 장난감 선물 대신 어린이용 펀드에 가입해주었다는 부모를 심심치 않게 만난다. 어린 시절부터 투자의 개념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아이라면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주가지수는 연일 사상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불안감 속에서도 연일 상승하며 최고치를 갱신하는 주식시장. 전문가의 조언도 들었겠다,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라는 말에도 동감했겠다, 더 망설일 것 없이 증권사를 찾아가 잠자던 계좌를 살리고 주식매매에 나서기만 하면 될 듯 한데, 자꾸만 IMF 시절 악몽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아줌마 개미의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참으로 오래도 간다.

덧붙이는 글 | 기획취재기자단 기사입니다.


태그:#주식투자, #적립식펀드, #적금, #직접투자, #개인투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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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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