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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의사당 야경.
ⓒ 권우성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희미한 옛 추억의 한 구절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조항이다. 민주공화국임을 밝힌 헌법은 곧바로 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천명한다.

현실은 어떤가. 6월대항쟁 20돌을 맞은 오늘, 전국 곳곳에서 성대한 기념식이 열린 오늘, 솔직할 때다. 과연 이 땅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있는가? 전혀 아니다. 되레 우리를 오랫동안 짓눌렀던 세력이 총과 대검·곤봉이 아니라 법과 제도, 절차적 민주성을 앞에 내세워 다시 이 땅의 국민을 덮쳐 오고 있다.

보라. 한여름에 함박눈 쏟아지듯 최루탄을 쏘아대던 바로 그들이 곳곳에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저들이 만발한 곳곳마다 어두운 체념과 절망이 퍼져간다. 개혁 열망에 힘입어 집권한 정치인들까지 이미 저들과 '경제대연정'을 펴고 있다.

한국 정치판 안팎에서 '오래된 격언'이 여전히 나돈다. '그 놈이 그 놈'이란다. '구관이 명관'이란 말로 이어진다. 2007년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는 정확히 그 지점에 서있다.

'그 놈이 그 놈' '구관이 명관'... 그래도 좋은가

과연 그래도 좋은가. 결코 아니다. 바로 그래서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주공화국을 세워갈 '국민주권운동'을 결연히 제안한다.

국민주권운동이 절실한 까닭은 우리가 왜 참담한 상황까지 왔는가를 짚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최루탄 쏟아지는 거리에서 싸운 사람들이 정치를 직업적 정치인들에게만 맡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시 생활현장으로 돌아가면서 정치꾼들에게 정치를 일임한 탓이다. 그 결과다.

우리가 거리에서 온 몸으로 돌 던질 때, 생활전선에서 일하고 있을 때, 자신의 정치적 욕망이나 부의 축적을 목표로 했던 저들이 피투성이 민주투쟁의 결실을, 우리의 노동의 대가를, 저 높은 자리에 앉아 만끽해 왔다.

진정 묻고 싶다. 앞으로도 저들에게 정치를, 경제를 모두 맡겨두고 그저 우리는 그들 가운데 조금 나아보이는 사람에게 4·5년에 한번씩 투표나 하고, 일터에선 평생 시키는 대로 일하며, 꼬박꼬박 세금만 내다가 어느 날 쫓겨날 터인가.

저들이 독점한 정치가, 저들이 독점한 경제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황무지로 만들고 있는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농민이 대낮에 시위 현장에서 공권력이 휘두른 폭력에 맞아죽어도 조용한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 지난 2005년 11월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 청소년광장에서 '고 오추옥 열사 추모 및 우리 농업살리기 전국농민총궐기 대회'를 개최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자

좋다. 우리는 '참을 인' 자 새겨가며 살 수 있다. 모난 돌이 정 맞으니 둥글둥글 살자고 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체념하면, 절망하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어떻게 될까?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어 양극화가 심화되고, 미-중 사이에 갈등이 커지면 전쟁터가 될 위기에 시달려야 할까? 대학 들어가기 더 어렵고, 졸업해도 비정규직 일자리가 대부분인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도 과연 좋은가?

아니다.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고, 모든 게 이윤이 목적이고, 양극화가 심화되어가는 저들의 공화국, 아니, 저들의 왕국으로 걸어 들어가는 게 필연은 결코 아니다.

지금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 저들의 왕국으로 가는 길과 다른 길이 있다. 돈보다 사랑이, 경쟁보다 연대가 중시되는 새로운 사회, 고루 잘사는 사회, 민주공화국으로 가는 길이 그것이다.

그 선택은 누가 하는가? 직업적 정치인들이 아니다. 전경련이나 경총은 더욱 아니다. 바로 우리다. 정치에 침을 뱉어도 좋다. 다만 '제 얼굴에 침뱉기'임을 알고 뱉을 일이다.

단호히 말한다. 우리는 정치에 절망할 자격이 없다. 왜? 절망하기엔 우리가 온전히 한 일이 없다. 우리는 늘 정치를 저들만의 것으로 삼아왔다. 경제적 주요 결정도 저들만의 것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가장 성숙한 모습은 '자기 통치'에 있다.

대통령을 뽑을 권리조차 주지 않았던 군사독재에 맞서 우리는 직선제라는 국민 주권을 스스로 만들었다. 하지만 국민 주권은 투표가 결코 전부는 아니다. 6공화국에서 네 사람의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은 오늘, 다섯 번째 정치인을 뽑아야 할 오늘, 과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오는가?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다.

대답이 부정적이라면 이제 우리 스스로 나서야 옳다. 모든 권력이 우리로부터 나오게 만들어가야 한다. 더는 누군가 해주길 기대하지 말자. 그래서 공연히 지치지 말자. 우리 스스로 할 때다. 그것이 자기 통치라는 민주주의 이념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이다.

이번 대선, 누군가를 기다릴 때가 아니다

▲ 1987년 6월 26일 평화대행진 도중 갑자기 나타난 '아! 나의 조국'. 이 사진은 1999년 AP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진'에 포함됐다.
ⓒ 고명진
그렇다. 2007년 대선에서 또다시 특정 인물에 기댈 수 없다. 국민주권운동이 절실한 까닭이다. 지난 대선에서 썩은 정치를 청산해버리고자 했던 국민들의 의지는 '노사모'로 나타났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특정 인물 중심의 결집이었다. 이제는 달라야 한다. 인물이 아니라 분명한 가치와 정책, 법률과 제도의 개혁이 중심에 서야 한다.

두 가지 갈림길에서 선택권이 분명 우리에게 있는데도, 우리 아이들에게 저들의 왕국을 물려주는 것은 죄악이다. 체념할 때가 아니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도 아니다. 우리 스스로 깨끗한 희망을 만들어가야 옳다.

정치·경제·언론 부문의 모든 권력이 국민에서 나올 수 있도록 법과 제도는 물론, 사람을 바꿔가는 일, 바로 그것이 국민주권운동이다. 누군가 기획하고 누군가 조직하는 엄숙한 운동이 아니다. 그 이름에 걸맞게 우리 모두가 기획자요, 조직자다. 한국 정치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즐거운 운동을 새롭게 펼쳐보자는 제안이다.

국민주권운동으로 우리는 국민소환권을 법제화할 수 있다. 지자체만이 아니라 국회의원과 대통령도 국민이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 한미자유무역협정 따위의 국가 중대사안을 대통령 혼자 정치적 감각으로 결정해 밀어붙여도 속수무책인 현실은 마땅히 바꿔야 한다.

비정규직과 양극화 해소, 은행 공공화를 비롯한 경제 주권의 문제에도 마땅히 국민이 참여해야 옳다. 국민주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법률은 물론, 헌법도 바꿔나가야 한다.

그래서다. 6월항쟁 20돌을 참담하게 보낸 오늘, 옷깃을 여미고 감히 호소한다. 국민주권 찾기에 뜻을 모을 것을, 국민주권을 구현하는 실천에 다함께 나설 것을. 이 땅의 민중, 모든 민주시민에 제안한다.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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