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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어트의 성정치
ⓒ 책세상
아내는 아침마다 체중계에 오른다. "여보 500g 빠졌어요. 오늘은 500g 늘었네" 한다. 빠졌으면 얼굴에 화색이 돌고, 늘었으면 어둠이다. 나는 아내의 뱃살보다 손에 잡히는 면적이 작다. 20년 이상 몸무게가 그대로이니 아내는 항상 불만이다. 밤참을 먹는 나를 보고 부러워 하지만 아내는 저녁 6시 이후에는 거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 왜 '살' 때문에.

한서설아의 <다이어트의 성정치>를 읽어면서 아내 생각을 많이 했다. 한서설아는 남녀 공히 '몸'에 관심을 갖지만 목적하는 바가 전혀 다름을 설파하고 있다. 같은 지방이지만 남성은 운동을 통하여 근육으로 만들어 '건강'에 관심을 두지만, 여성은 '지방'을 빼 날씬한 몸매를 가꾸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왜? 사회가 요구하는 일이기에 자기 주체적인 몸가꾸기보다 남의 눈을 의식한 행동인 것이다. 주객이 바뀐 암울함이다. 지금까지 나 역시 아내를 보는 눈이 별 다를 바가 없었다는 생각을 했다.

여성은 자기 몸을 남성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살아가는 모양이다. 자신의 시각으로 자신의 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 특히 남성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한서설아는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기준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말한다.

"여성의 몸매에 대한 기준은 사회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인위적인 변경 없이 인체 부위가 이루는 비율의 조화가 중요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풍만한 몸'이 각광을 받는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금방 쓰러질 듯한 연약한 몸매가 아니면 여자 취급 받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35쪽 인용.

16세기 서구 사회는통통한 허리와 크고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여성상이 부상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요즘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풍만한 여성이 미의 기준이었지만 그 때도 여성 자신들이 주체가 아니라 사화와 남성이었다.

20세기 접어들면서 날씬한 여성이 되어야 했다. 이상적인 몸매를 가진 여성만이 경제적으로 가치있는 여성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날씬한 여성이 아니라면 돈을 가치있게 버는 자격도 없는 것이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가꾸는 것처럼 보이지만 '날씬한 몸매'의 기준은 자신이 내린 결론이 아니라 사화와 남성이다. 아직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주체성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다.

"날씬한 몸을 가져야 '여자'로 인정받고 '성'에 있어서도 더욱 주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회의 메시지에 둘러 싸인 여성들은 안정된 정체성과 성적 주체성에 대한 적극적 욕망을 무엇보다도 '날씬한 몸' 만들기에 대한 욕구로 전환시키고 있다." 53쪽 인용


재미 있는 것은 여성의 다이어트는 돈을 벌게 해준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다이어트 상품이 나오고 있는가? 시내버스, 택시, 지하철에도 살를 빼지 못한면 가치없는 여성, 건강한 여성, 주체적인 여성이 아니라 위협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공세 앞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의 길을 갈 수 있는 여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마른 몸매=아름다운 몸'라는 논리는 여성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과학적 소비주의가 나은 병폐이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여성은 이런 정치화된 공세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미인대회를 비판한 것은 좋은 성과이다. 하지만 여기서 머물지 말고 자신의 건강과 몸과 정신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고 자신의 존귀함을 항상 인식하면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되면 좋겠다.

나는 아내에게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냥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 말하겠다.

덧붙이는 글 | 아내에게 읽으라 권하고 싶은 책


다이어트의 성정치

한서설아 지음, 책세상(2000)


태그:#여성의 몸,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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