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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시 쉬고 있던 중, 1004란 번호로 다음과 같은 문자가 왔습니다.

'너와 함께 대입의 합격을 누릴 친구 20명한테 보내! 그럼 합격! 안보냄 ☆☆래. 돌아오면 대박♥ㅋ'

수능을 앞두고 행운의 편지와 같은 수능문자가 유행이다. 휴대폰이 일상화된 학생들의 신풍속도.
▲ 수능문자 수능을 앞두고 행운의 편지와 같은 수능문자가 유행이다. 휴대폰이 일상화된 학생들의 신풍속도.
ⓒ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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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 누군가가 시작한 이 문자가 건너건너 수능을 본 지 7년이나 지난 저에게까지 온 것인가 봅니다. 저에게 문자를 보낸 수험생도 처음에는 이 문자를 보고 놀랐겠죠? 그렇지만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20명 모두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을 수험생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합니다.

제 동생도 목요일(15일)에 치러지는 수능시험을 봅니다. 직접 등도 두드려 주면서 떨지 말고 잘 보라고 말해주고, 시험이 끝나면 맛있는 음식을 사주며 격려해 주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집과 떨어져 학교를 다니는 상황이라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주말에 집에 가면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주면서 마음 편하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치만 뭐가 그리 바쁜지 계속 미루고 미루다 오늘 아침 다시 학교로 가려고 준비를 하는 찰라, 동생이 이번 주에 수능시험을 본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곤히 자고 있어 따뜻한 격려 한 마디 못하고 그냥 집을 나왔습니다. 오히려 일요일에 "빼빼로데이라는데 빼빼로 하나 못받아왔어? 빼빼로가 먹고싶다"고 어울리지 않는 투정을 부린 것이 생각나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상술이니, 쓸데없는 짓이니 해도 수험생이 무사히 시험을 치르길 바라는 초콜릿이나 엿 같은 선물도 주지 못하고 왔네요.

학교에 도착해 수업을 받은지 1시간이 지났을까, 막내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떨어졌지?"

오늘은 수시원서를 낸 한 대학의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학교라 인터넷을 하지 못하고 저에게 합격여부를 대신 확인해 달라는 뜻으로 보낸 듯했습니다. 그런데 문자 내용이 "어떻게 됐어?"나 "언니, 나 확인 좀 해 줄래?"가 아닌 "떨어졌지?"라고 써 있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꼬맹이 같던 동생이 어느덧 '이런 일에 마음 졸이고 불안해 하는 나이가 되었구나'도 싶고, 자신이 떨어질 거라고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는 것도 속상했습니다.

바로 확인을 해보니 불합격이었습니다. 아직 수시 합격 발표가 안 난 곳도 몇 군데 남아 있고 앞으로 정시모집도 있지만 풀이 죽을 동생의 모습을 생각하면 착잡합니다.

수시모집에 불합격한 결과. 애써 담담하려 하지만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 불합격하다 수시모집에 불합격한 결과. 애써 담담하려 하지만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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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니고 있는 학교도 당장 이번 주 일요일(18일) 교원임용고사가 있어 4학년들의 어깨가 무거워 보입니다. 방금 저녁을 먹다가도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완전무장을 한 복장으로 홀로 밥을 먹는 4학년 한 학생을 보았습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그 찰나에도 깨알같이 쓴 노트를 손에서 놓지 않더군요.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 모두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대학만 가면, 수능만 끝나면 실컷 놀아도 된다'라고 말하기에는 수험생들이 그동안 겪었을 고민과 쏟아부은 노력이 비교할 수 없이 값지고 소중해 보입니다.

하지만 수능이 끝난 뒤에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보는 것 외에도, 문제풀이에 지친 머리를 잠시 식히며 자신을 성찰하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데 몰두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을 가려고 하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사람의 푸념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동안 공들여 쌓은 노력이 알량한 공부 따위가 되지 않고, 부디 좋은 곳에 잘 쓰여 풍요로운 인생을 사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길 기원합니다.


태그:#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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