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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공중에 떠 있는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나타내는 반원 모양의 일곱 빛깔의 줄. 흔히 비가 그친 뒤 태양의 반대쪽에서 나타난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그 무지개가 두 개 겹쳤을 때는 쌍무지개가 되고, 달무리는 달무지개이며, 햇빛을 받아 무지갯빛으로 물든 구름은 무지개구름이다. 또 ‘아치교’는 무지개다리이고, 북녘에서는 문 윗부분을 둥글게 만든 ‘홍예문’을 무지개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물에 무지개란 이름이 달린 것은 많다. 비 온 뒤 밝은 햇살이 비추는 곳에서 뜨는 무지개, 이 무지개가 일본의 서울 도쿄에 늘 떠 있다. 바로 일본에 사는 우리 동포 여성들이 만든 무지개모임(회장 조영숙)이 그것이다. 그 중심에는 조영숙이란 여성이 있는데, 그녀는 1985년 재일교포 2세와의 결혼으로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1996년 지역의 구청에서 주최하는 행사에서, 한일 두 나라의 우호와 한국을 홍보하고픈 마음에서, 알고 지내던 몇몇 사람들과 함께 한국의 부침개, 잡채, 김치 등을 가지고 참여했다. 고생은 했지만 일본인들에게 불티나게 팔리는 부침개와 구청직원의 적극적이고 친절한 대응은 이후 자연스럽게 모임을 만들게 했다. 이 조영숙씨와 대담을 해본다.

새 희망과 한국·일본 두 나라를 잇는 다리라는 뜻의 '무지개모임'

조영숙 도쿄 무지개모임 조영숙 회장
▲ 조영숙 도쿄 무지개모임 조영숙 회장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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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무지개 모임을 만들었는가.
“1996년 처음 해본 행사에 우리는 한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좀 더 많은 사람을 모이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우리 교포들은 서로 가까이에 살고 있어도 일본인과 겉모습이 비슷하니 같은 동포임을 모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구보에 광고를 내는 것이었는데 이를 보고 15명 정도가 모였다.

이 15명이 모여 아리랑회는 출발했고, 회원들은 해마다 힘을 모아 구청 행사에 참여 한국의 음식을 팔면서 나름대로 민간외교원의 역할을 한다고 자부를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모이면 한국과 일본의 무겁고 거추장스런 옷들일랑 다 벗어 던지고 수다 속에서 꿈틀거렸다. 특히 한국을 한번 갔다 오면 한·일간 비교가 난무하고, 일본이 독도문제나, 역사왜곡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면 누구나 애국자가 되면서도 차츰 일본문화의 이해자가 되어가는 한편, 한류의 성행에 가슴 뿌듯해 하기도 했다.”

- 처음에 ‘아리랑회’로 시작했는데 왜 ‘무지개모임’으로 바뀌었나?
“모임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겨레의 정서, 역사를 가장 잘 나타내는 낱말 '아리랑'을 이름으로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뒤 우리는 역사 속의 이름 ‘아리랑’보다는 새 희망과 한국·일본 두 나라를 잇는 다리라는 뜻의 '무지개'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무지개모임은 우리 문화를 공부하고 알릴 것

- 무지개모임이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인가.
“지난해 우리는 평소에 가진 것을 소개하는 자리를 일본인들과 함께 마련했다. 김치찌개, 부침개, 잡채 따위의 요리교실, 한국문화유산 사진전시회, 대장금 주제가를 중심으로 한 음악회 '국제교류 2007'이라는 행사인데, 그 배경은 한류붐이다.

한·일간 역사왜곡 따위로 진실의 중심은 얼어붙어 있었지만, 대중사회는 <겨울연가> <대장금>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뒤 서서히 얼음이 풀리면서 한국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다가왔고, 이런 것 저런 것 물어왔는데 곤란했다. 사실 우린 한국사람이긴 하지만 한국문화에 정통한 게 아니고, 오히려 열심히 공부한 일본인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류 속의 일본인들 속에서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국제교류 2008'에는 전통오차교실을 예정하고 있고, 겨울철엔 김장교실, 2009년 설날을 앞두고는 한복교실을 열기로 했다. 또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한·일 문화 비교·교류, 어린이 도서'를 낼 예정이다.

내년엔 청소년들을 위한 한국어교실을 운영해볼까 한다. 한국에서 온 아이들이 일본학교에 다니면서 차츰 우리말을 잊어버리고 있다. 한국어를 가르치려고 일주일에 한번 멀리 민단학교까지 보내는데 엄마들의 불편함이 대단한 것은 물론 형편상 민단학교까지 못 가는 사람도 있다. 우리 엄마들이 힘을 모으면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쳐줄 수 있지 않을까?

또 종요로운 것은 올바른 한·일간의 문화를 알고 서로 문화를 존중하는 정신을 기를 생각이다. 특히 우리 문화 속에는 일제 쓰레기가 많이 남아 있어 일본 것을 우리 것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허다하다. 책 속에서는 그런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지역 구청 주최의 행사장에서 무지개모임이 지역 구청 주최의 행사장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먹거리잔치를 하고 있다.
▲ 지역 구청 주최의 행사장에서 무지개모임이 지역 구청 주최의 행사장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먹거리잔치를 하고 있다.
ⓒ 조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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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숙씨는 그런 말들을 하며 아무리 능력없는 여성이라도 이렇게 한가하게(?) 지낼 때가 아니라는 절박한 심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것은 전문가나 활동가만 하는 일이 아니고 우리 같은 아줌마들도 할 수 있는 일라고 생각했고, 자신들의 공부도 겸해서 일본 도쿄에서 무지개를 띄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교포 여성들은 한국에 한 번씩 갔다 와서 만나면 한국성토장을 만들곤 했다. 길거리 청소문제, 질서문제, 사람들 말투, 예의, 택시 불친절, 교육문제, 집값 문제……. 구구절절이 말해 무엇할까? ‘우리 민족이 얼마나 훌륭한 문화를 창조하여 이어온 민족인데 지금 이 꼴이 뭔가…’라며 나는 정말 분한 마음이 들었다.

이것이 서민들의 목소리이고 이것이 매일 신문 방송에 오르내리는 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우리는 그저 '일본은 잘하는데……'라며 입방아만 찧고 끝났었다.”

그녀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끊임없이 생각을 토해내고 있었다.

“우리 사회의 그 잘못되고 병든 모습들, 우리 전통문화 속의 슬기로움으로 고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일본 무지개가 조국 비판의 사랑을 한숨으로 끝내지 말고 우리 문화 속의 슬기로움으로 고쳐보고 싶다. 또 한국 사회의 모순을 역시 우리 문화 속의 슬기로움으로 고쳐보고 싶은 무지개가 있다면 끈을 잇고 싶다.”

해방 뒤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한국 사회 더럽게 해

무지개모임 회원들 일본 도쿄에서 모이고 있는 무지개 모임 회원들이 활짝 웃고 있다. 뒷줄 오른쪽 맨끝이 조영숙 회장
▲ 무지개모임 회원들 일본 도쿄에서 모이고 있는 무지개 모임 회원들이 활짝 웃고 있다. 뒷줄 오른쪽 맨끝이 조영숙 회장
ⓒ 조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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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10년 전 우리의 자본이 발전하여 우리 민족의 젖줄이 되고 힘이 되길 바랐기에 한국제품을 어떻게든 사려고 ‘아끼하바라’를 몇 시간이나 헤매며 삼성 텔레비전을 샀었단다. 하지만, 일본에 오는 한국 친지들이 '밥통' 사들고 가고, 무작정 일제 물건 좋아하는 것이 정말 보기 싫었다는 쓴소리를 잊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산 텔레비전의 제조사 삼성이 하는 꼴을 보니까 '천민' 중에 ‘상천민’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의 자본이 이렇게 더러워진 뿌리는 무엇일까? 나는 해방 뒤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해 우리 사회엔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까닭이라고 본다. 한 사회의 뿌리부터가 그렇게 더러움과 그릇됨을 숨기면서 흘러온 것이 아닐까?

일본인들은 호기심에서 우리 문화를 알고 싶어하고, 그러다가 진짜 우리 문화를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사랑하는 일본인도 있지만,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우리 문화 속에서 우리 혼을 확인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뭔가를 잃어가는 이 현대에서 옛시대로 무지개를 한번 놓아보고 싶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아나오신 그 길, 그 삶 속에 분명히 선진한국으로 나갈 슬기로움이 숨어 있을 것이다.”

- 회원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회원들은 정말로 평범하여 내세울 게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본으로 온 여성들, 주로 재일동포나 일본인을 상대로 한 결혼으로 일본에 건너왔다는 것이 내세울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인 부부가 일 관계로 온 일 경우도 있다. 어찌 되었건 한국여성들이라는 것인데 일본출생 재일교포 여성도 두 사람이나 있다.

일반동포들은 여기나 저기나 먹고 사는 일이 가장 큰 관심사이다. 정치적으로 얘길 하자면 민단에서는 참정권문제이고, 총련에서는 일본으로부터 탄압받는 것들이다. 동포 3세들은 자신의 뿌리를 잊고 있음은 물론 그게 무슨 문제인지도 모르고, 우리같이 한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한국사회와 일본사회를 양쪽으로 보면서 고민한다.

또 역사문제가 떠들썩할 땐 일단 모두 그쪽으로 눈길이 쏠리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동포들의 가장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무엇보다도 '한국문화'이기도 한데 그것은 한류 덕분일 것이다.”

숭례문 전소에 화난 조영숙씨

조영숙씨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힘을 모아 우리 문화도 알리고 그 수익금을 뜻 있는 곳에 쓸 수 있게 해준 회원들이 정말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성금은 독립유공자단체·일제시대 피해자단체에 전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일본 무지개모임은 한국 안에서 우리 문화 운동을 하는 한국 무지개와도 적극 연대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불탄 숭례문과 소나무 불타버린 숭례문을 조선소나무와 백성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 불탄 숭례문과 소나무 불타버린 숭례문을 조선소나무와 백성은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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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올리기 직전 숭례문이 불타버린 소식을 도쿄에 보냈다. 소식을 들은 그녀는 화를 참을 수 없다며 편지를 보냈다.

“2/11일은 너무 충격적인 날입니다. 친일청산이 안 된 세상에서 끝까지 투쟁하신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님이 가신 날. 우리 자존심의 상징이랄 수 있는 숭례문이 전소해버리고…. 참고로 오늘은 일본건국기념일입니다. (중략)

모든 대형사고가 이렇게 원인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고 있죠. 이번에도 함께 살아나가는 마음이 없는, 그 척박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거지요. 오른 땅값으로 제 배만 불리겠다는……. 억장이 무너집니다. 숭례문 화재의 원인이 이명박의 전시행정, 문화재청의 안이한 관리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이 시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이요, 의식에 있지 않을까요?

조상님이 남겨주신 거 나쁜 마음으로 불태워 먹었으니 그 죄 닦음을 해야 합니다. 조상님들이 남겨주신 좋은 마음 찾아내어 갈고 닦아 가야 합니다. 문화운동도 여러 가지 있겠지만 저는 우리의 의식을 바로잡는 문화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시작은 미약해도 좋습니다. 대한민국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우리가 미래를 위해 올바른 씨앗 하나라도 심어야 하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김종균씨의 <겨울 무지개 보셨나요>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겨울에도 무지개는 뜬다. 여름 소나기 내린 끝에 피어나는 칠색 화려한 무지개를 보며 우리는 놀라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서울 하늘에도 여름이면 가끔 서쪽 인왕산 자락에 걸친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겨울 무지개는 슬프다. 보아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에 뜬 무지개는 한국의 우리가 보아주지 않고, 이어주지 않으면 겨울 무지개처럼 슬퍼할지도 모른다. 그 일본의 무지개를 우리가 나서서 여름날 인왕산 자락에 걸린 아름다운 무지개로 만들고 모두가 놀라 기쁨을 감추지 못하게 하면 좋을 일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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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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