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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남자 화장실에서는 사회적 거리가 인정되지 않는다. '남자 화장실 예절'은 공간 부재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효율성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남자 화장실에서는 사회적 거리가 인정되지 않는다. '남자 화장실 예절'은 공간 부재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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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요도는 여자보다 길다. 여자 요도의 길이가 5㎝ 미만인 반면, 남자는 서너 배인 15~20㎝에 달한다. 긴 요도의 장점은? 소변을 오래 참을 수 있다. 단점은? 참을 필요가 없고 참고 싶지도 않은 때조차 참는 상황이 계속될 수 있다.

남자가 소변을 참는 것은 다양한 요인들이 배뇨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요도협착증과 같은 물리적 질병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사회심리적 원인들이 남자들을 '요도가 길어 슬픈 짐승'으로 만든다.

사회적 요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대인거리에 따른 심리적 강박이다. 문화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사람들이 대인관계에 따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람들은 낯선 이에 대해서는 친숙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잘 모르는 사람이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오면 불편함과 당혹감을 느낀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투명한 사회적 보호막을 지니고 다니는 셈이다. 다른 이에게 침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영역. 사람들은 연인처럼 친밀한 사람에게만 이 투명 보호막의 문을 살짝 열어준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규범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생물학적 욕구의 공간이 있으니, 바로 화장실이다. 이 문제는 남자 화장실에서 특히 심각하게 나타난다.

남자 화장실 : 비사회적 욕구의 공간

남자 화장실을 보자. 여자 화장실은 꽃이나 그림이 걸려 있기도 하고,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권할 수 있는 문화적 교류의 공간이다. 이에 반해 남자화장실은 최소한의 기능적 요소만을 갖춘 '미니멀리스트적' 공간이다.

친밀한 담소의 장소인 여자 화장실과 달리, 남자화장실에서는 침묵이 최고의 미덕으로 간주된다. '화장실'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여자 화장실은 다양한 부가적 기능을 겸하고 있다. 이에 반해 남자 화장실은 쓰레기 투기장에 가깝다. 남자 화장실이 담론의 장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쓰레기 하치장이 적절한 대화의 공간이 아닌 것과 같다.

남자 화장실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냉철한 효율성의 원칙이다. 최대한 빠르고 간편하게 일을 처리하고 나갈 것. 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좋다. 시선 교환은 대화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이런 원치 않는 '교류'는 효율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특히 바지춤을 푼 채 헛되이 힘을 쏟고 있는 이에게 말을 거는 것은 커다란 금기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은 전혀 다른 사회학적 공간이다. 남자 화장실 안에서는 독특한 사회적 규범과 남성적 정체성이 교차한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은 전혀 다른 사회학적 공간이다. 남자 화장실 안에서는 독특한 사회적 규범과 남성적 정체성이 교차한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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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효율성'이 남자 화장실의 제1원칙이라고 말했지만,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소변은 괄약근의 허락을 받은 후 긴 요도를 통과해야 한다. 게다가 괄약근은 심리상태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화장실이 인간 문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이 공간은 지나치게 협소하다. 그로 인해 화장실 안에서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거리두기의 원칙이 간단히 무시된다. 남자 소변기에 서는 것은 낯선 사람과 팔꿈치가 닿을 정도로 인접한 환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지퍼가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기까지 걸리는 1~2분. 짧은 시간이지만, 그 사이 남자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과 느낌이 스쳐지나간다. 별로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는 이 순간은 한 사회의 규범과 남성적 정체성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미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특히 '프라이버시(privacy)'가 대인 관계의 핵심적 요소로 작용하는 북미국가에서는 남자 화장실 내에서 좀 더 미묘한 신경전을 관찰할 수 있다.

미국인의 블로그나 웹사이트에는 '화장실 예절 준수'를 당부하는 글이 흔히 올라온다. 우스개와 진담을 반씩 섞은 게시물을 살펴보면, 화장실 이용 태도를 시험하는 '자격검정'은 물론, 교육용 단편 영화와 학습용 게임까지 있다. 이 시청각 자료들의 도움을 빌어 미국 남자화장실 예절을 익혀보자.  

[규칙 ①] 옆 사람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라    

소변기가 일렬로 늘어선 구조의 경우, 첫 사람은 양쪽 끝에 있는 변기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그림은 풍자적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화장실 예절>의 한 장면.
 소변기가 일렬로 늘어선 구조의 경우, 첫 사람은 양쪽 끝에 있는 변기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그림은 풍자적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화장실 예절>의 한 장면.
ⓒ Zarathustra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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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람은 첫 사람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선다. 가장 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남자 화장실의 기본적 규칙이다.
 두 번째 사람은 첫 사람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선다. 가장 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남자 화장실의 기본적 규칙이다.
ⓒ Zarathustra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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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양쪽 끝으로 붙는 이유는 세 번째 사람이 수월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사회적 거리를 확보하려는 남자들의 노력으로 인해, 5인용 화장실은 3인용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두 사람이 양쪽 끝으로 붙는 이유는 세 번째 사람이 수월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사회적 거리를 확보하려는 남자들의 노력으로 인해, 5인용 화장실은 3인용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 Zarathustra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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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홀이 제안한 '공간근접학(proxemics)'은 대인거리에 문화적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북미 사람들은 아시아나 중남미 사람들에 비해 좀 더 먼 대인거리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두 문화권 사람이 만나면 거리를 둘러싼 흥미로운 '문화충돌'이 일어난다. 북미인이 편안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뒷걸음질을 치고, 상대방은 이 불편한 거리를 좁히기 위해 한 발 더 다가서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서구 문화에서 강조되는 '프라이버시'는 먼 대인거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인들은 유별나다. 원하지 않는 접촉을 꺼리는 것은 물론, 줄을 설 때에도 앞 사람과 멀찍이 떨어져서 기다린다.

가끔은 이 사람이 줄을 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먼 산을 보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줄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하면 '지금 줄을 서신 건가요(Are you in line)?'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처럼 대인거리를 중시하는 미국인들이니, 화장실이라는 당혹스러운 상황이 더욱 당혹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경제성을 누구보다 중요시하는 미국인들 아닌가. 그 좁은 남자 소변기 사이에 칸막이조차 생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하여 미국 남자들은 이 물질적 부재를 사회적 규범으로 해결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벌인다.

공중 소변기 5개가 일렬로 늘어선 상황을 가정해 보자. 만일 모두 비어 있다면 어디로 가서 서야 할까? 아무 곳이나 써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 상황은 미국 남성들에게 분명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답은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왼쪽이나 오른쪽 구석의 소변기다.   

벽에 인접한 구석 자리를 잡는 것은 두 번째 사람에게 가장 편리한 선택의 길을 열어주기 위한 배려다. 두 번째로 들어온 사람은 그 반대편에서 가장 먼 소변기로 가서 안착할 것이다. 세 번째 사람은 가운데 변기를 고를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세 사람은 변기 한 개를 사회적 거리의 '완충지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규칙 ②] 거리를 유지할 수 없다면 피해를 최소화해라

미국의 인터넷 웹사이트와 블로그에는 '화장실 예절'에 대한 다양한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위 사진은 <소변기 게임>의 한 장면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최대한 벽 쪽(가급적이면 출구에서 가까운 곳)에 서라고 조언하고 있다. 게임에서는 '일을 치른 후 재빨리, 손도 씻지 말고 나가라'고 농담조로 말하고 있지만, 화장실에서 손을 씻지 않고 나가는 것은 또 다른 금기다.
 미국의 인터넷 웹사이트와 블로그에는 '화장실 예절'에 대한 다양한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위 사진은 <소변기 게임>의 한 장면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최대한 벽 쪽(가급적이면 출구에서 가까운 곳)에 서라고 조언하고 있다. 게임에서는 '일을 치른 후 재빨리, 손도 씻지 말고 나가라'고 농담조로 말하고 있지만, 화장실에서 손을 씻지 않고 나가는 것은 또 다른 금기다.
ⓒ Clever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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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미묘한 상황의 재현. 개인과 '커플'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는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원칙이다.
 좀 더 미묘한 상황의 재현. 개인과 '커플'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는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원칙이다.
ⓒ Clever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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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첫 번째 사람이 엉뚱하게 두 번째나 네 번째 변기를 고른다고 생각해 보자. 이 때 다른 두 사람이 잇따라 화장실로 들어온다면, 상황은 혼란스러워진다. 첫 사람이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은 당연하다. 그의 잘못된 선택이 3명이 사용할 수 있는 5인용 소변기를 2인용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상황이라면 세 번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소변기는 없다. 그는 투덜거리며 좌변기로 가든지, 아니면 나중에 되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사태가 좀 더 긴박하게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공연장이나 공연장처럼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경우나, 촌음이 급한 상황에서는 이런 여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완충지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디에 가서 급한 불을 꺼야 할까? 정답은 양쪽 가장자리다. 이 선택은 한 명의 완충지대만 침해하는 차악의 결과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복잡한 상황도 많다. 한 개인 사용자가 있고, 옆에 두 명의 친밀한 동료가 나란히 서서 소변을 보는 경우가 그렇다. 이 경우 개인과 '커플' 중 누구의 완충지대를 침범해야 할까?

물론 최선의 선택은 이 위기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면? 이 경우에는 '커플' 쪽에 서는 것이 정답이다.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사람을 나와 '커플'로 만드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남자 화장실에서 선택의 문제는 '남성성'과도 결부된다. 이 상황은 두 개의 소변기와 한 개의 좌변기가 있는 소규모 화장실에서 잘 드러난다. 만일 소변기 가운데 하나를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경우, 어떤 선택이 바람직할까?

사실 이 경우에는 어떤 선택을 하든 상대방에게 큰 결례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예절'보다는 '정체성'이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관찰해 본 결과, 좌변기로 가는 사람이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옆에 서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미국인 친구에게 '너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좌변기로 들어간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자기가 '남자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소변기로 가는 것 같다. 난 별로 남성성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우월'과 '열등'이 아닌 '다름'의 문제

서구 문화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서구적 삶과 사고를 '표준'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서구 예절'은 단일한 하나의 기준이 아니며, 심지어 미국이라는 하나의 국가에서조차 예절에 대해 완전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덥석 안지만, 어떤 이들은 안기는 것을 끔찍이 싫어한다. 밥을 먹다가 식당이 떠나가게 코를 푸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를 벌레 보듯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개인적인 취향의 차이는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극장 안의 잡담을 인내하는 사람도 있지만, 팝콘을 씹는 소리까지 거슬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나 지역에서도 도시와 교외에 따라서도 예의범절은 조금씩 달라진다. 보통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일수록 대인거리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여기에 문화적 차이까지 결합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한국과 서구의 예절을 단순비교하면서 한국인들을 '예의없다'고 단정 짓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결코 무례하지 않다. 단지 예절이 다를 뿐이다. 물론 어느 기준으로도 예의 없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한국인'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무례한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무례하다'는 <조선일보> 기사. 북미의 예절을 모든 이가 따라야 하는 '글로벌 표준'으로 간주하고 있다. 외국의 문화와 예절을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차이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외국인들도 한국의 예절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무례하다'는 <조선일보> 기사. 북미의 예절을 모든 이가 따라야 하는 '글로벌 표준'으로 간주하고 있다. 외국의 문화와 예절을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차이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외국인들도 한국의 예절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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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화장실, #대인거리, #프라이버시, #미국,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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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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