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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hygiene)'은 과학 못지않게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사실 우리가 아는 위생 개념은 근대의 발명품이다. 상하수도·소독약·탈취제·실내화장실 등 우리가 '위생'과 관련짓는 대상 대부분이 근대 이후 출현했다.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것 역시 19세기 후반이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사뭇 다른 위생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미래 후손들은 미생물을 박멸하는 것을 '위생'으로 보는 우리를 기괴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이런 변화의 조짐은 '친환경'과 '유기농' 등 자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서 드러나고 있다.

 

어쨌든, 위생의 개념은 시대뿐 아니라 지역과 문화에 따라서도 큰 차이가 있다. 세균과 바이러스를 무찌르는 것을 '과학의 개가'로 선전하는 관행이 보편적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인간 사회를 완전한 무균상태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일정한 '관용'은 불가피하다. 이 때 어느 부분에 눈을 부릅뜨고 눈을 감을 것인지는 지역과 문화권, 그리고 개인에 따라 달라진다.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에 따르면, 미국은 '과학이 문화를 지배하기 시작한 최초의 나라'다. 이 역사 초유의 '테크노폴리(Technopoly)' 사람들은 위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미국인들의 독특한 위생 관념은 그들의 삶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도서관 사서에게 '손 살균제'는 업무필수품

 

사람의 몸은 박테리아·바이러스, 그리고 곰팡이의 온상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외가 없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손이다. 가장 많은 미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따지자면, 손은 사타구니나 겨드랑이, 입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러나 이 부위들은 일상적인 교류에 손만큼 널리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국인들에게 손은 애증의 대상이다. 미국인만큼 악수를 많이 하는 사람들도 드물지만, 손의 위생 상태에 대해 이들만큼 민감한 사람들도 없기 때문이다. 충돌하는 이 두 가지 관습을 평화롭게 공존시키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끊임없이 씻고 소독하는 것이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커피숍에서 겪은 일이다. 종이컵에 담아 뚜껑을 덮어주는 커피를 사서 조금씩 마시다 보니 어느새 바닥이 드러났다. 동전 하나만 내면 다시 채워준다고 해서, 컵을 들고 점원에게 갔다.

 

돈을 내고 계산대에 빈 컵을 밀어놓는데도 점원이 그 컵을 집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잠시 서로 눈을 번갈아 보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눈치를 보던 여자 점원이 뺨을 붉히며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뚜껑을 직접 열어 주시겠어요?"

 

"그러지요" 하고 컵을 끌어당기자, 여자가 미안한 투로 이방인에게 한 마디 보탠다.

 

"웃기지요? 점원들은 손님이 한 번 썼던 마개는 못 만지게 되어 있거든요." 

 

도서관에서 반납 업무처럼 남의 손이 닿았던 물건을 만져야 하는 사람들의 책상 위에는 흔히 살균제가 놓여있다. 남의 손에 '오염된' 물건과 닿은 자신의 손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염려를 덜기 위해 다양한 살균제들이 '최고의 살균력'과 '간편한 용법'을 요란하게 선전한다. '99.99%의 살균력'을 자랑하는 이 손바닥 로션들은 물도 필요 없다. 손바닥에 문질러서 말리기만 하면 된다.

 

'손 위생'에 대한 미국인들의 큰 관심은 살균용품 시장을 거대한 규모로 키워 놓았다. 에이피(AP)의 2008년 3월 9일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팔리고 있는 살균용 세정용품만 해도 1600종류가 넘는다. 기업들은 살균용품을 팔아 매년 수천억의 수익을 내며, 이 시장은 매년 커지고 있다. 

 

재채기는 손이 아니라 팔뚝으로 막아라

 

손에 대한 관리는 예절과 규범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손은 어느 경우든 항상 오염되어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손이 사회적 관용의 대상인 '일상적 오염' 이상의 상황에 노출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손바닥에 재채기를 하거나, 손을 씻지 않고 화장실 밖으로 나가는 행위, 그리고 땀에 젖은 손으로 악수를 청하는 것은 모두 사회적 금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오염 상황이 공적 장소에서 일어난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하거나 취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재채기는 안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불가피한 경우는 입을 막은 채 해야 한다. 손바닥은 곤란하다. 그 손은 언제든지 '교류용'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화폐나 손잡이·컴퓨터 키보드·수도꼭지 등 공적 자산을 광범위하게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재채기를 막는 데 가장 바람직한 부위는 팔뚝이다. 손목 위쪽에서 어깨에 이르는 어느 부위든 상관없지만, 최대한 손목에서 떨어진 어깨 방향을 고르는 것이 좋다. 손에서 가장 먼 곳일수록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고, 어깨에 가까울수록 표면적이 넓어 공중으로 퍼지는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개된 장소에서 코나 귀·입 속에 손가락을 넣는 행위는 피해야 한다. 화장실 문밖으로 나가기 전에는 반드시 수도를 틀어야 한다. 반드시 비누를 쓸 필요도, 오래 씻을 필요도 없다. 주위 사람들은 잠재적 오염 대상이 물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충분히 안도할 것이다.

 

재채기가 나올 때 무의식 중에 손바닥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만일 손바닥에 재채기를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조용히 주위를 살펴보자. 목격자가 없다면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된다. 그러나 근처에 누군가 있다면 자리를 잠시 떴다가 돌아오는 것이 좋다. 꼭 손을 씻기 위해서가 아니라, 뭔가 조치를 취했다는 느낌을 남들에게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씻지 않은 손으로 화장실을 나가다 목격되거나, 코 속에 손가락을 넣은 채 타인과 눈이 마주치는 상황은 좀 다르다. 이 경우는 상대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빨리 자리를 떠야 한다. 코를 후비는 것은 재채기와 달리 생리적 현상이 아닌 '유희'의 영역이며, 오염된 손으로 화장실을 뜨는 것은 게으름과 허술한 위생관념을 드러낼 뿐이다. 여기에는 어떤 변명의 여지도 있을 수 없다.  

 

사람보다 개에게 키스하는 게 위생적?

 

미국인들은 위생에 엄격하지만 모든 영역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인들은 타인의 신체에 의한 생물학적 오염에 특별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꺼릴 부분에 대해서는 둔감한 경우가 많다. 바닥에 드러눕거나 개와 뽀뽀하는 것을 더럽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그렇다.

 

2005년 10월 14일, 미국의 에이비시(ABC) 방송은 '미국인들이 널리 믿는 그릇된 신념들'을 소개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정말로 개의 입은 사람 입보다 깨끗한가?"였다. 이 방송은 '개가 상처를 핥는 습관 때문에 사람들이 개의 입을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고는 수의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개도 입에 세균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다"고 진단을 내린다. 결론이 인상적이다.

 

"개의 입에도 병균이 있지만, 같은 개들 사이에서만 전파되고 사람에게는 전염되지 않는 질병도 많다. 그런 이유로, 개에게 키스하는 것이 사람에게 키스하는 것보다 심각한 병에 걸릴 확률이 더 낮다. 그러나 개도 균을 옮길 수 있으니만큼 제 때 예방접종을 하고 기생충을 구제해 주는 게 좋다. 그러면 별 걱정 안 해도 된다."

 

미국인들은 또 바닥에 잘 앉거나 드러눕는다. 개똥 널린 잔디에도 잘 드러눕고, 공항이나 미술관 바닥 같은 곳에도 곧잘 엉덩이를 깔고 앉는다.

 

식생활에서 드러나는 위생 관념도 한국인들과는 사뭇 다르다.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태운 고기나 스티로폼컵에 대해 별 반감을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탄수화물에 대해서는 경악한다. 

 

테러의 공포, 마케팅 수단이 되다

 

 

살균용품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과 수요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매년 새로운 살균용품이 소비자를 찾는다. 에이피(AP) 보도에 따르면, 2003년과 2006년의 3년 사이만도 살균용품의 종류가 무려 8배 이상 늘었다.

 

물론 이것은 미국인들의 위생에 대한 관심이 계속 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자발적인 태도 변화는 아니다.

 

살균용품의 종류와 매출이 폭등한 것이 9·11테러 이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국민들에게 '생화학 테러'의 위험을 지속적으로 홍보했다. 탄저병이 테러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학계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흰 가루'는 어느덧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정부가 유포한 생화학 테러의 공포는 미국인들의 위생 관념을 강박으로 바꾸어 놓았다. 뒤 이어 '사스(SARS)'와 조류독감도 이 공포 분위기에 한몫했다.

 

그리고 기업들은 소비자들의 공포심을 한껏 활용했다. '공포에 질린 국민들은 다스리기 쉽다'는 것이야 정치인들에게는 상식이지만, 기업인들 역시 이 진리가 '소비자'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5초 법칙(five-second rule)'

 

몇년 전, 거지 같은 행색으로 긴 여행을 다녔던 적이 있다. 그러다가 비슷한 처지의 일본인 청년을 만났다. 둘 모두 배가 고팠으나, 식당에 갈 돈은 없었다. 

 

둘은 주머니를 털어 빵 한 조각을 샀다. 그리고는 벤치에 앉아 빵을 반으로 나누었다.  그 일본인 친구는 정신없이 빵을 먹다가, 주먹만한 덩어리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당황하던 것도 잠깐, 그 친구는 차분하게 빵을 집어들어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했다.

 

"5초 안에 주워먹으면 괜찮아."

 

한국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어린 시설, 친구 한 명이 떨어뜨린 과자를 주우면서 그 말을 했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에도 똑같은 미신이 있다는 사실이다. '5초 법칙'(가끔 '10초 법칙'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이라는 것으로, 재빨리 움직이면 균이 도착하기 전에 음식을 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을 좋아하는 미국인들, 이 주장을 검증하지 않을 리 없다. 몇몇 과학자들이 이 주장의 과학적 근거를 따져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결론? 5초 이내도 얼마든지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몇초'가 아니라, '어느 바닥'에 떨어지느냐라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버려진 음식을 아까워하는 것은 만국 공통인 것 같다. 궁핍을 경험하지 않은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5초 법칙'은 땅에 떨어진 음식을 집으면서 '과학'의 이름으로 위안을 얻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사람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일까? 문화는 다양하지만, 결국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일까?

 

태그:#위생, #살균, #테러, #사스, #5초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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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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