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우거진 숲길 걷다가
바로 눈앞에서
쏜살같이 기어가는 뱀을 본다
저렇게 온몸을 땅에 바짝 붙이고도
꼬리를 제멋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유연성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타고난 유연성을 과시하는
수많은 존재와 맞닥뜨렸다
사방팔달 어디로든지 두루두루
통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삶의 강자다
그러나 그가 튈 방향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대방에겐 아주 치명적이다
그러므로 지나치다 싶을 만큼
부드러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난 생각한다
시방 저 사람이 머릿속에
치사량의 독을 숨긴 채
꼬리만 살짝 움직이고 있구나 라고.